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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재인폭포

되찾은 재인폭포 2 - 아슬 민망(20130731)

by 길철현 2023. 8. 26.

25일 다시 살아난 재인폭포를 찾았을 때 폭포 아래쪽으로 내려가지 못했고, 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와 호젓하게 폭포를 즐길 수 없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7월의 마지막 날에 다시 재인폭포를 찾았다. 지난번보다 한 시간 정도 빨리 출발했기 때문에 폭포에 도착한 시각은 7시 40분. 폭포 근처에 들어설 무슨 시설인지를 만드는 인부들은 벌써 나와 일을 시작한 상태였지만, 재인폭포 자체는 고즈넉하기 짝이 없었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철문도 활짝 열려 있었다. 며칠 전보다 물이 많이 빠져서 계단 아랫부분도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부분 마음으로 폭포 앞으로 다가갔다(몇 년 전부터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폭포 앞 출입을 금지했었는데, 지금은 안전이 확보된 상태인가? 개인의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공적인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왔다 갔다 한다). 그리고 폭포 정면 용소가 끝나는 곳에 높이 1미터가량의 바위 위에 앉았다. 예전에는 비가 아주 많이 온 상태가 아니면 늘 그 앞에 앉아서 폭포를 바라보았는데, 지금은 물이 차올라서 위에 앉아야만 했다.

새로 설치한 철계단

폭포를 앞에 두고 간단하게 사진을 몇 장 찍고, 가져온 수건을 바위 위에 깐 다음(바위가 많이 젖어 있는 상태였다) 폭포를 바라보면서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수첩에다 몇 자 적었다. 요즈음 내 나름대로의 명상(명상이라기보다는 가만히 떠오르는 생각들을 추적하고, 그것을 또 컴퓨터에다가 적기도 하는 것인데)을 할 때면 언제나 그렇듯, 나에게 상처를 입힌 작은누나에 대한 거친 욕설과 맹렬한 분노가 나를 사로잡았다. 급기야는 폭포를 앞에 두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 안의 파괴적 욕망, 에너지는 <글로 풀어나가는 것>이 하나의 답이 될 듯하다’는 식으로 단락을 지었다.

 

한 시간 이상을 그렇게 폭포 앞에 앉아 있었고, 그 동안에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돌아서 나오는데 들어올 때는 쉽게 건너온 바위들이 물이 차올라 자칫 잘못하면 신발이 젖을 지경이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내가 내려오고 난 다음에 비가 온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계단 쪽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아뿔싸, 새벽에 내린 비가 강물로 유입이 되었는지, 아니면 방류를 중단한 것인지 사정은 알 수 없었으나, 강물이 역류하여 계단으로 이어지는 길이 물에 잠기고 말았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서 있는 곳에서 계단까지는 5,6미터 정도였는데, 물이 완전 흙탕물은 아니어도 희뿌윰했기 때문에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그 알 수 없는 깊이가 나를 두렵게 했다. 119에 고립 신고를 해야 하나? 하지만 이곳은 휴대폰 통화도 안 되는 지역이었다. 수영을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생명이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어도 다른 무엇보다 휴대폰이 물에 젖는다면 못 쓰게 될 것이 염려스러웠다. 당황한 가운데에서도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나는 일단 긴 나뭇가지를 하나 주어 가장자리의 물의 깊이를 재어보았다. 오륙 십 센티미터는 될 듯했다. 가장자리가 이 정도라면 중간이 얼마나 깊을지 모르겠는 걸. 그러면서 또 물 위로 튀어나와 있는 계단 난간의 기둥이 마지막 난간 기둥이기 때문에 내 키는 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가 불분명한 추측도 했다.      

물이 점점 더 차오를 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재빨리 행동을 취해야 했다.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던 것이 수첩, 카메라, 점퍼, 수건 등을 담기 위해서 조그만 배낭을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윗도리와 바지를 벗어서 넣고, 신발과 양말도 넣었다. 마지막 한 장 남은 사각팬티를 두고 잠시 망설이다가 아직은 이른 시각이니까 재빨리 건너간 다음 입어야겠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두 손으로 가방을 높이 치켜들고 서너 걸음 나아갔을까, 뭔가 구령 소리 비슷한 것이 나더니만 젊은 군인들이 수십 명이 계단을 돌아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아마도 이들은 인근부대에서 훈련을 받던 신병들이었던 것 같은데)! 건너는 것에 너무 신경을 쓰느라 군인들이 무리를 내려왔음에도 그 소리를 못 들은 것이었다. 이럴 수가? 당황한 나는 재빨리 철제 계단을 지지하고 있는 굵고 높다란 쇠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물은 배 정도까지 찼던 듯하다. 그러나 계속 그곳에 숨어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면서 이 군인들이 거의 내 아들뻘인 젊은 남자들이고, 목욕탕에서라면 거리낌 없이 서로의 알몸을 보여주었을 것 아닌가 하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마음을 크게 먹고 계단을 향해 몇 걸음을 옮긴 다음 그들 앞에 알몸을 드러내었다. 그다음엔 재빨리 몸을 돌려 몸을 닦는 둥 마는 둥 하고 팬티를 걸쳤다. 팬티를 입고 나자 좀 여유가 생겼다. 나 다음의 첫 번째 방문객인 이 군인들은 물이 차올라서 계단 아래까지는 내려오지 않고 중간쯤에서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진을 찍어주는 담당자가 있고 세 명이 난간을 꽉 채우고는 내 쪽으로는 등을 돌리고 찍고 있어서, 오히려 좋은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창피한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그래도 옷이 젖지 않고 무사히 건너왔다는 것, 또 좋은 글감 내지는 이야기 거리를 하나 얻었다는 생각이 오히려 마음은 흐뭇한 쪽이었다. 당황한 순간에 배낭 밑 부분이 물에 살짝 젖기도 했으나 안쪽까지 물이 스며든 것은 아니어서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신발의 흙이 배낭에 가득했으나 뒤집어서 털어내면 그만이었다. 바지를 입고 윗도리를 걸치고 양말에다 신발을 신고 나니,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던 군인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내가 앉아 있던 바위는 물에  잠긴 상태였다.

 

 

위로 올라오니 한 가족이 전망대에서 폭포를 보고 있었는데, 여섯 일곱 살 된 사내아이 한 명은 유리로 된 전망대가 겁이 나서 가지를 못했고, 또 그보다 어린 사내아이는 계단으로 이어지는 길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라 보지 않았던 새롭게 단장된 “재인폭포 안내판”을 보니까 뜻밖의 내용이 실려 있었다. 

 

  가마골 입구에 있는 18.5m의 폭포, 현재 이 폭포는 고을원의 탐욕으로 인한 재인의 죽음과 그 아내의 강한 정절이 얽힌 전설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문헌에는 전설과 상반된 기록으로도 전해내려 온다.

  옛날 어느 원님이 이 마을에 사는 재인(才人) 아내의 미색을 탐하여 이 폭포 절벽에서 재인으로 하여금 광대줄을 타게 한 뒤 줄을 끊어 죽게 하고 재인의 아내를 빼앗으려 하였으나, 절개 굳은 재인의 아내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거짓으로 수청을 들며 원님의 코를 물어뜯고 자결하였는데, 그 뒤부터 이 마을을 재인의 아내가 원님의 코를 물었다 하여 ‘코문리’라 불리게 되었으나, 차츰 어휘가 변하여 ‘고문리’(古文里)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반면 옛날에 한 재인(才人)이 있었는데, 하루는 마을 사람과 이 폭포 아래에서 즐겁게 놀게 되었으나, 자기 재주를 믿고 흑심을 품은 재인은 그 자리에서 장담하며 약속하기를, ‘이 절벽 양쪽에 외줄을 걸고 내가 능히 지나갈 수 있다!’라고 호언장담하자 마을 사람은 재인의 말을 믿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자기 아내를 내기에 걸게 되었다.

  잠시 후 재인은 벼랑 사이에 놓인 외줄을 타기 시작하는데, 춤과 기교를 부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평지를 걸어가듯 하자, 이에 다급해진 마을 사람은 재인이 줄을 반쯤 지났을 때 줄을 끊었고 재인은 수십 길 아래 구렁으로 떨어져 죽게 되었다. 이러한 일로 이 폭포를 재인폭포로 부르게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상반되는 전설을 담고 있기도 하다.

  현재 재인폭포는 보개산과 한탄강이 어우러지는 주위의 빼어난 경관과 맑은 물로 인하여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연천군의 대표적인 명승지로 알려져 있다.

 

새롭게 소개된 전설에는 원래 전설이 담고 있는 애틋함이나 슬픔도, 또 지배 계층의 핍박에 대한 분노와 서러움도 없는, 두 촌부의 개인적인 자만심과 시기의 차원만 있다. 이 안내문을 세운 사람은 ‘안내판’에서 ‘판’이라는 말이 갖는 억센 어감이나, ‘간판’을 떠올리게 하면서 묘하게 상업성과 결부된다는 점 등은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 생각이 재인폭포의 원래 전설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예전의 안내문이 좀 전형적인 대로 운치가 더 있지 않나 한다.

 

되찾은 재인폭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