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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재인폭포

되찾은 재인폭포 1 - 재회(20130725)

by 길철현 2023. 8. 24.

에필로그까지 적은 글이고, 이제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처럼, 그래서 내 마음속에 오롯이 간직해야 할 곳이라고 이야기했던 재인폭포. 그 재인폭포를 다시 찾은 이야기를 하려니까, 전편에서 죽었던 주인공이 어떤 초자연적인 힘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 그래서 다소 억지스러운 속편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내 생각과 다를 땐 세상에 나를 맞춰야지, 내가 무슨 독불장군이라고 세상을 내 생각에 맞추려 하겠는가? 더군다나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 한 자락이 가닿았던 곳을 되찾게 되었으니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어야 할 경사로운 일이 아닌가? 

 

이 글을 쓰면서 좀 더 조사를 해보았더니, 한탄강댐이 원래 계획했던 "다목적댐"에서 화천의 평화의 댐처럼 순수 "홍수조절용댐"으로 변경되어 평소에는 물을 가둬두지 않기 때문에, 재인폭포가 완전히 수몰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도 그렇듯 물에 잠긴 곳이 물이 빠져나간 뒤에는 흙이나 기타 부유물들이 특히 나뭇가지를 중심으로 흉하게 남아 있게 되니까 예전의 모습이 어느 정도 훼손되는 것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댐이 2014년에 완공될 예정이므로 시간이 좀 더 지나야 재인폭포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분명히 알게 되리라.

 

지난 글에서 나는 이 한탄강댐을 연천댐이라고 잘못 명명했다. 왜 잘못 알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연천댐이라는 말이 굉장히 귀에 익다는 생각이 동시에 교차하는 가운데,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현재 신답리의 궁신교가 있는 자리가 연천댐이 있던 자리이고, 이 연천댐이 99년 홍수에 8월 1일 왼편 둑이 40미터가량 무너져 댐 하류 지역에 상당한 피해를 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현재 건설 중인 한탄강댐은 이 연천댐보다 대략 2킬로미터 정도 상류에 있다). 이 기사를 보니까 아득히 묻혀 있던 기억들이 하나둘 씩 떠올랐다.

1999년 홍수로 붕괴된 연천댐(인터넷)

처음 재인폭포를 찾았을 때도 그랬지만 나는 재인폭포에 갈 때 3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가 통현리 쪽으로 해서 들어가는 78번 국지도를 주로 이용했는데, 나중에는 전곡에서 3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좌회전해서 들어가는 신답리 쪽, 그러니까 연천댐이 있었던 쪽으로 해서 들어가기도 했다. 이 연천댐을 지날 때는 물이 가득 차 제법 큰 호수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그런대로 볼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글을 쓰면서 당시 일기를 살펴보니까, 연천댐이 붕괴되기 직전인 7월 30일에 그곳을 지났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당시 동생을 간호하느라 대구에 내려와 있다가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왔는데, 서울에 올라온 김에 이 재인폭포를 찾았던 것이다. 내 괴로운 심사를 재인폭포 앞에서 아침 일찍 홀로 달래고 싶어 이 연천댐 바로 옆에 있던 영빈각이라는 모텔에서 일박을 했다. 당시 일기에는 이 연천댐 붕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고 “우연의 일치로, 내가 요번에 여행을 다녀온 동두천, 전곡, 연천, 백학, 적성 등이 어제 하루 종일 물난리가 나서 텔레비전이 야단법석을 떨었다”라고 되어 있다. 이 연천댐이 무너져 통행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보다 좀 상류 아우라지길에 있는 낮은 다리를 이용한 기억도 난다. 원래 군용인 이 다리는 비가 많이 올 때면 물에 잠겨 지날 수가 없고, 또 그렇지 않을 때에도 차로 지나가려면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로 폭이 좁은 데다 좌우에 난간조차 없어 항문이 간질간질했다. 언젠가 한번 비가 많이 왔을 때는 떠내려간 적도 있었다. 

 

올해 초에 다시 한 번 재인폭포를 찾았으나, 그 때에도 재인폭포의 출입은 여전히 통제되고 있었고, 그래서 재인폭포는 정말로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각인이 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21일 폭포가 보고 싶어 신철원 삼부연폭포로 향하다가, 운천 교차로에서 비둘기낭폭포 안내판을 보고는 그쪽으로 향했다. 이 비둘기낭폭포의 존재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으나, 나는 예전에 이 폭포가 “상수원 보호구역 내에 있어서 들어갈 수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몇 년 전에 보호가 해제되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위치도 나는 관인면의 중리저수지 부근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날의 만남은 전혀 뜻밖이었다. 재인폭포와 마찬가지로 한탄강에 위치하고 있는 비둘기낭폭포(재인폭포보다 대략 십 킬로미터 상류)는 평지에서 내려간 협곡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나, 바위를 정으로 쪼아 작은 기둥들을 붙여 놓은 듯한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다는 점이나, 침식 작용(플럭킹 현상)으로 동굴이 발달해 있다는 점 등 여러 모로 재인폭포와 흡사한 점이 많았고, 이 날은 특히 비가 많이 온 다음이어서 그랬겠지만 그 사이로 거센 물결이 흘러가는 폭포 아래쪽의 협곡, 그 높이가 15미터는 족히 될 협곡이 특히나 환상적이라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는 재인폭포를 찾을 수 없게 되었으니 이 폭포를 재인폭포 대신으로 삼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한 치 앞을 제대로 내다보기가 힘든 것이 세상일이었다.                                                 

비둘기낭 폭포, 20130725

며칠 뒤 점심을 먹으면서 신문을 보다가 이 비둘기낭폭포를 소개하는 글을 읽게 되었다. 그 글에서는 흥미롭게도 인근의 재인폭포도 함께 찾으면 좋을 명승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재인폭포는 들어갈 수 없는데 기자가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쓴 것이라고 속으로 혀를 찼다. 집으로 와서 “뜻밖에 찾은 비둘기낭폭포”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재인폭포는 진입로를 새롭게 정비해서 두 달 전부터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재인폭포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이미 시간이 저녁을 향하고 있어서, 아침 일찍 나는 떠지지 않는 눈을 비벼가면서 재인폭포를 향해 차를 몰았다. 전날 자기 전에 나는 오랜만에 내 소니 카메라를 충전시켰다. 캠코더는 배터리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전원을 꽂으면 작동이 되는데, 배터리만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의 일 년 만에 다시 찾게 된 재인폭포. 재인폭포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도 자못 궁금했다. 인터넷으로 보니 진입로도 새로 내고 폭포 바로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높다란 계단도 새로 만들었던데. 7시에 출발하여 3번 국도를 타고 내처 북쪽으로 달렸다. 덕계, 덕정 등 시 외곽에도 생각보다 차가 많아 마음만 앞섰다. 재인폭포에 도착한 시각은 8시 40분. 새로운 진입로는 이전에 주차장이 있던 곳보다 3,4백 미터 위쪽에 있었고, 부근을 소공원식으로 깔끔하게 단장해 놓았다.

 

공원의 오른편에는 고동색으로 된 재인폭포 안내판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재인폭포로 내려가는 철제 계단이 있었지만, 철문이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어 아래로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계단 왼쪽편에는 따로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요즈음 유행을 따르려고 그랬는지, 바닥을 강화 유리로 만들어 놓아서 사람의 가슴을 다소 졸이게 했다. 바닥이 강화 유리이므로 덧신을 신고 들어가라는 안내문에 따라 덧신을 신고 들어갔는데 내 뒤로 온 사람 중에서 덧신을 신고 들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망대에 들어서자, 짐작했던 대로, 유난히 길고 수량도 많았던 장마 탓에 계곡으로 물이 많이 차올라 계단 하단부는 물에 잠긴 상태였다. 폭포 아래로 내려가서 폭포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27미터 높이라는 전망대에서 폭포를 내려다보았다. 폭포의 약간 왼쪽 편에서 폭포를 내려다보는 이 위치는 예전에는 누릴 수 없던 것이기에 나름대로 흥취가 있었다. 폭포는 흰빛으로 우렁차게 떨어져 내리고, 용소는 옅은 옥빛의 물을 가득 담고 있었는데 용소가 끝나는 곳에서는 역류해 온 흙탕물과 묘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얼마쯤 그렇게 폭포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일찍 나들이를 나선 30대 정도의 부부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들의 포토존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리를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폭포를 바라보던 여자분이 뜻밖에 말을 했다. 폭포를 둘러싼 절벽의 상단부 끝에 자리한 나무들의 나뭇잎에 남아 있는 흙탕물이 마른 흔적이 무얼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남자의 대답처럼 물이 거기까지 차오른 흔적이라고 한다면 물이 최대로 가득 차올랐을 때는 재인폭포가 거의 수몰 상태에까지 갔다는 말이었다. 이 높은 계곡 전체에 18미터가 넘는 재인폭포 높이까지 물이 차오른다는 것은 아무래도 눈으로 보지 않은 다음에야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았던 나는 약간의 위반을 했다. 계단이 있는 철문 아래와 바닥 사이가 많이 떨어져 있어서 몸을 잔뜩 숙인 다음 그리로 들어갔던 것이다. 실제 계단이 시작되기 전 5미터 정도는 지면과 평행하게 되어 있어서, 그곳에서는 폭포를 정면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래 쪽에서는 볼 수 없었던 폭포 윗부분의 개울과 폭포가 떨어지기 직전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계단 입구는 산업용 테이프를 대각선 방향으로 마구 감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놓았다). 한두 명씩 오는 사람들과 상관없이 그냥 폭포를 바라보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수첩에 담으려 했으나,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고, 햇살도 점점 더 따가워져 앉았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몸을 돌려 하류 쪽을 보니 연두빛을 약간 띤 누르스름한 물이 계곡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 

 

2013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