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라시 애청자 여러분!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서울 하고도 노원구에 살고 있는 사십 대 후반의 노총각입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펜을 들게 된 것은 한탄강의 명승지라고 할 수 있는 재인폭포를 지라시 애청자분들에게 널리 알리고, 또 그곳에서 며칠 전에 생긴 작은 해프닝을 이야기할까 해서입니다. 물론 그 해프닝의 주인공은 바로 접니다.
한탄강 상류인 연천 고문리 깊은 계곡에 자리하고 있는 재인폭포는 주위 풍광이 아름답고 특이한데요. 거기에 덧붙여 이 마을에 살던 줄타기의 명수, 재인과 그의 아름다운 아내에 관한 슬프고도 애절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서,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지요. 저 역시도 첫눈에 이 재인폭포의 아름다움에 반해 벌써 이십 년 가까이 이곳을 즐겨 찾고 있었는데요. 몇 년 전 하류에 한탄강댐 공사가 시작된 뒤로는, 비가 많이 올 때는 계곡에 물이 차올라 들어갈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이전의 진입로보다 훨씬 위쪽에 새로 진입로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지요. 바로 그 다음 날 저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떠지지 않는 눈을 연신 비벼대며 재인폭포로 향했습니다. 혼자서 오롯이 폭포를 감상하려고요. 새로 단장한 곳에는 바닥이 유리로 된 높다란 전망대와, 또 계곡으로 내려가는 엄청나게 긴 철제 계단이 절벽 옆 공중에 설치되어 있었는데요. 여기서 잠깐 설명을 덧붙이자면 대부분의 폭포와 다르게 재인폭포는 평지가 움푹 꺼지면서 생긴 협곡에 위치해 있어서 폭포를 정면에서 보려면 오히려 계곡으로 내려가야 하지요. 거기다 계곡의 양옆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고요. 요즈음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진 비둘기낭폭포와 흡사한 지형이라고 할까요.
저는 이 길고 아찔한 계단을 따라 내려간 뒤 폭포 정면에 놓인 바위 위에 앉아 폭포를 바라보기 시작했답니다. 긴 장마에 폭포는 우렁찬 목소리를 내며 힘차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저는 그 우렁찬 폭포를 바라보면서 오십이 다 되도록 장가도 못 간 신세한탄을 속으로 털어놓았답니다. 아는 사람들이 저더러 “이상해졌다”라고, “노총각 히스테리가 심하다”고 하던데요. 애청자 여러분! 이 나이가 되도록 장가를 못 갔으면 이상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요? 그렇게 한 시간 이상을 반쯤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답니다. 아침 이른 시각이라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요.
너무 오래 있은 것은 아닌가 하고 몸을 돌려 나오는데, 뭔가가 이상했습니다. 들어올 때는 쉽게 건너온 바위들이 물이 차올라 자칫 잘못하면 신발이 젖을 지경이었던 거지요.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예감과 함께 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니나 다를까, 강물이 역류하여 계단으로 이어지는 길이 물에 잠기고 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혼자 생각에 너무 빠져 있느라 물이 차오르는 것도 몰랐던 겁니다.
어떡하지?
112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
아니, 여긴 휴대폰도 안 되잖아?
어떡하지?
당황한 제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아니야,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서 있는 곳에서 계단까지의 거리를 눈으로 어림짐작해 보았습니다. 대략 7,8미터는 될 듯했습니다. 물빛이 탁해서 그 깊이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었고요. 바로 얼마 전에 지나온 길인데도 바닥이 어쨌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데요. 일단 긴 나뭇가지를 주워 가장자리의 물 깊이를 재어보았더니 5,6십 센티는 되는 듯했습니다.
물이 점점 더 차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재빨리 행동을 취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조그만 배낭을 가져온 것인데요. 저는 먼저 윗도리와 바지를 벗어서 배낭에 넣고, 그 다음 신발과 양말도 넣었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한 장 남은 사각팬티를 두고 잠시 고민에 빠졌지요.
팬티는 입고 건널까?
혹시 누가 내려오면 어떻게?
아직은 이른 시간이니까 아무도 안 올 거야.
팬티가 젖으면 얼마나 찜찜한데.
그래, 재빨리 건너가서 후다닥 입으면 되지 뭘.
그렇습니다. 저는 코앞에 닥칠 일은 상상도 못한 채, 과감히 팬티를 벗어 배낭에 넣고는 물로 들어갔습니다. 혹시라도 배낭에 물이 들어갈까 배낭을 든 두 손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들고요. 그렇게 서너 걸음 나아갔을까요? 갑자기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듯하더니만, 거짓말처럼 젊은 군인들이 계단의 꺾어진 부분을 돌아 떼를 지어 제 쪽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엎친 데 덮친다는 말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엉겁결에 저는 바로 옆에 있는 계단 지지용 굵은 쇠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는 곰곰이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떡하지?
군인들이 이 시간에 왜 여기에?
그러기에, 팬티는 왜 벗었단 말이야, 이 미친놈아!
하지만 때늦은 후회이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보니까,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 인근 부대의 군인들이 무슨 기념촬영이라도 나온 듯했습니다. 그들은 계단 아래까지는 내려오지 않고 중간쯤에서 폭포를 배경으로 세 명이 한 조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요. 쉽게 떠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것, 당당하게 행동하자.
여학생들이 단체로 온 것도 아닌데, 뭐.
사실, 뭐, 이 군인들은 내 아들뻘 아닌가?
또 목욕탕에서 수도 없이 서로의 알몸을 보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마냥 그렇게 몸을 숨기고만 있을 수 없었던 저는 아무 일도 아닌 양 태연하 게 계단을 향해 물을 헤치고 나아갔지요. 사실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다행히도 물은 깊은 곳에서도 내 배 이상으로 올라오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군인들 앞에 내 보잘것없는 알몸을 드러내야만 했지요. 뭐, 생각보다는 그렇게 창피하지도 않더군요. 그다음에는 재빨리 몸을 반대로 돌려 수건으로 몸을 닦는 둥 마는 둥 하고는 팬티를 걸쳤습니다. 팬티를 입고 나니까 그제야 마음의 여유가 생기더군요.
저는 다시 한 번 수건으로 몸을 꼼꼼히 닦은 다음 천천히 바지를 입고 윗도리를 걸쳤지요. 그 와중에 군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가면서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고요. 어차피 그 많은 군인들 사이를 뚫고 지나갈 수도 없고 해서, 저는 신발에 묻은 모래며, 배낭 안에 들어간 모래까지 최대한 시간을 들여 천천히 털어내었지요. 그러고 나니까 군인들은 모두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없더군요. 나는 빈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애청자 여러분! 이것이 제가 며칠 전 겪은 재인폭포에서의 작은 해프닝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두어 마디만 덧붙일까 합니다. 재인폭포 관리 담당자분! 저처럼 정신없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안전관리에 좀 더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날 재인폭포에서 못 볼 걸 보고만 군인들! 그날 본 아저씨, 변태 아저씨 아니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랬다는 걸 양해해 주기 바라며, 이만 펜을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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