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동생 간호를 위해 십 개월 가량 대구에 머물렀다. 그러다 서울로 올라올 때,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곧바로 오지 않고, 동해안을 따라 양양까지 가서는 한계령을 넘었다. 그때 처음으로 대승폭포를 보았는데 그 높은 높이에 비해 수량이 적은 것이 매우 아쉬웠다. 내년에 다시 이곳을 찾으리라. 그래서, 내 안의 풀리지 않는 슬픔을 울리라. 내심 이렇게 작정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장마가 들기를, 폭우가 쏟아지기만을 기다렸다. 올 유월, 집중호우가 쏟아지리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설악산을 향해 출발했으나, 성급한 시도였다. 대승폭포는 기운찬 물줄기를 허공에 내뿜고 까마득한 벼랑을 따라 떨어져 내리고 있었으나,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올 여름 내내 폭포를 찾아다니는 일은 미진함으로 끝나고 말았다. 특히 재인폭포는 찾을 때마다 번번이 실망감만 안겨 주었다. 서울 쪽에 비가 많이 와도 재인폭포가 있는 연천 쪽은 그저 그랬다. 게다가 낙석의 위험을 이유로, 예전에 사람들이 폭포 앞까지 걸어가던 길을 쇠줄로 된 울타리로 막고서는 출입금지 팻말을 붙여 놓은 뒤, 폭포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전망대를 따로 설치해 놓아 버렸다. 올 여름에는 딱 한 번 폭포가 큰 소리로 우는 것을 보았으나, 그 날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
그리고 어제 8월 25일. 대만에 엄청난 피해를 남긴 초특급 태풍 빌리스가 열대성 저기압으로 변해 우리나라 전역에 밤사이 호우를 몰고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는데, 아침 뉴스를 보니까 정말 밤새 비가 엄청나게 온 모양이었다. 재인폭포로 가보기로 했다. 중랑천이 엄청나게 불어있는 것으로도 비가 많이 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때에도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의정부의 자동차 전용도로는 예상대로 통행이 금지된 상태였다.
봉암리 저수지에서는 누군가가 외로이 우의를 입고 낚시를 하고 있었고, 왜가리인지 새 몇 마리가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날고 있었다. 길은 곳곳이 침수되어 있었다. 이날의 여정에서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날따라 약간 우회해서 지나게 된 전곡에 들어서기 직전에 있는 도로변의 벼랑에 전날 내린 비로 폭포가 세 개나 형성되어 있던 일이었다. 몇 번 그곳을 지났지만, 물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상당한 양의 물이 떨어져 내리는 높이 20미터 가량의 폭포가 형성되다니.
재인폭포 주차장에는 무소 한 대만 주차되어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표를 받는 할아버지마저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니까 물이 흘러내려가는 소리가 내 귀청을 두드렸으며, 싯누런 흙탕물이 마구 몸부림치며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에는 처음으로 재인폭포 앞, 정자 옆 벼랑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폭포를 이룬 채 떨어지고 있었다. 지난 4년 동안 보아온 중에 그 물의 양이나 힘이 가장 으뜸이었다. 그런데, 개울물이 흙탕물인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 떨어지는 물은 흰빛이었다. 그 세찬 물소리 가운데에서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고개를 돌려 보니, 그 폭포 근처에서 어린 아이처럼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20대로 보이는 청년을, 매표소의 할아버지가 불러내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신나게 놀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낙석 위험을 이유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했다. 그게 아니라면 폭우로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실지로 위험했기 때문일까? 할아버지와 청년이 올라가고 나자, 폭포는 오롯이 내 것이었다. 나는 ‘낙석의 위험이 있으니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푯말이 붙어있는 쇠줄을 무시하고 넘어갔다. 오늘만은, 낙석에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폭포 가까이에서 폭포를 보고, 폭포 소리를 듣고 싶었다. 쇠줄이 쳐지기 전 늘 앉아서 폭포를 감상하던 바위는 물에 거의 잠길 정도였고, 그곳까지 가는 길에 놓여 있던 크고 작은 바위들은 모두 물에 잠겨 있었다. 약간 비스듬한 위치에서 폭포를 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나는 재인폭포가 그토록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재인폭포가 갖고 있는 힘을, 분노와 슬픔과, 울음과, 꺾인 욕망과, 그런 모든 것을 최대한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용소는 물이 넘쳐흘러 어디까지가 용소이고, 어디서부터 개울이 시작되는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고, 물결이 일어나 내가 서있는 바위를 넘쳐흐르기도 해서 신발도 물에 흠뻑 젖어 버렸다. 물에 이어서 물이, 흙탕물이라, 약간은 희뿌윰하게 부서지면서, 떨어져 내리면서 내는 그 천둥소리, 그리고, 용소를 넘쳐흐르는 물이 돌멩이며 바위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 오로지 물과, 물소리의 천지였다. 거기다 폭포를 감싸고 있는 벼랑은 살아서 나에게로 넘어오기도 하고 꿈틀대기도 했다. 물이 엄청난 양으로 떨어져 내리자 이 착시현상은 더욱 더 심하게 일어났다. 폭포는 떨어지면서 용암처럼 끓어올랐고, 또 물방울들은 비말을 이루며 몇 미터식이나 위로 솟구쳤다. 그렇게 얼마를 나는 폭포를 보고, 폭포 소리에 귀 기울였을까? 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시를 쓰려는 마음마저 버리려고 했다. 아무리 해도 풀 수 없는 내 안의 깊은 슬픔. 존재의 슬픔. 인이 박혀버려 아무리 해도 지울 수 없는 상처. 울음은 이제 말라버렸다. 한 줄 시라도 떠올라 준다면. 그러나, 버려라, 마음을. 그냥 폭포를 보아라. 재인폭포로 가는 길에 내 마음 속에는 몇 줄의 시가 떠올랐었다. 초라한 시니피앙이여/하나 자살 외에 달리 또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곤두선 슬픔이여라는 행도 떠올랐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수첩에다 이렇게 썼다.
곤두선 슬픔이여
내 심장을 내리 꽂아라
빠개진 피를
내 달게 빨아마실테니
초라한 시니피앙,
자살 외에 달리 어떤 방도가 있겠는가?
그리고는 아쉬움을 뒤에 남기고 폭포에서 나왔다. 그러나 쇠줄을 넘어 얼마를 걸어가던 나는 다시 뭔가가 못내 아쉬워 전망대로 걸어갔다. 또 거기서 얼마를 폭포를 바라 보았던가? 이번에는 끝의 두 행마저 지워버리고 말았다.
곤두선 슬픔이여
내 심장을 내리 꽂아라
빠개진 피를
내 달게 들이킬 터이니
이 시가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만 무의식이 내 마음의 핵심에까지 다가가 거기에서 건져낸 것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쨌거나 나를 막고 있던 뭔가가 한 꺼풀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이 시가 시로서 별 볼일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 내가 글을 써나가는데 하나의 전환점은 될 것 같다는, 그러니까 앞으로 더 진지하게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계기는 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 아니었든가 한다. 내가 재인폭포에 도착한 후로 비는 거의 오지 않다시피 했지만, 계단을 올라오니까, 날이 거짓말처럼 개여서 북쪽 하늘은 새파란 빛을 띠고 있었고, 그리고 커다란 햇무리가 해를 무지갯빛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거기다 쓰르라미와 참매미가 나무마다에서 요란스럽게 합창을 하고, 햇살은 또다시 따가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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