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나이에 --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그러니까 2010년도이니까, 내 나이가 마흔다섯 살 때(7년이 지난 지금에는 그 때도 젊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이 자살을 기도하고 부서진 몸으로 병원에서 신음을 하고 있을 때, 그 때는 언제였던가, 1999년이었지. 그 때는 내 나이가 서른네 살이었다. 내 삶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과 마주하고 나는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석사 논문을 기한 내에 마치지 못해 마음이 바닥을 기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쉰이 넘은 지금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무엇이라도 가능할 것'같은 젊은 나이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언제나 크든 작든 간극이 있다 -- 대학원 박사 과정에 들어오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나는 논문의 주제로 석사 논문에서 다뤘던 에밀리 브론테를 다시 한 번, 이번에는 그녀의 시와 함께 다뤄볼 심산이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 드는 생각이지만 브론테 3자매를 통째로 다루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그렇지만, 구제를 받아 다시 석사 논문을 마치고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지도교수님의 정년퇴임이 얼마 남지 않아, 나는 부득불 박사 과정에서는 다른 분을 지도교수님으로 선택해야 했다. 석사 과정의 지도교수님이 근대영문학을 전공하신 분인데 반해, 박사 과정의 지도교수님은 현대영문학을 전공하신 분이라 아무래도 중점적인 관심의 시기가 영국의 19세기가 아니라 20세기일 것인데,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을 잘 생각하지도 못했고, 또 입학할 당시에는 석사 과정 지도교수님 외에 19세기 영국 소설을 전공하신 분이 따로 없기도 했다.
지도교수님 신청을 하러 갔을 때인가, 교수님은 박사 논문으로 누구를 쓸 것인가를 물었는데, 내가 석사 논문에서 쓴 에밀리 브론테를 좀 더 심화해서 연구해보고 싶다고 하자, "이미 한 번 다룬 작가니까, 다른 작가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렇다면, 콘래드를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했던 듯하다. 당시에는 콘래드에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 그의 작품을 수업 시간에 직접 배운 적은 없었다(보충- 왜 이렇게 썼는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쓸 당시에는 머리가 그렇게 돌아갔던 듯하다. 대학 시절에 정종화 선생님의 [20세기 영국 소설] 시간에 [서구인의 눈으로]를 - 번역본이긴 하지만 - 흥미롭게 읽었고, 나름대로 감상문도 썼다). 다만 대학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급하게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을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기가 힘들었고, 또 석사 과정 대학원 종합 시험(논문 자격 시험)을 준비하면서 [로드 짐](Lord Jim)이라는 작품,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고뇌하다 결국에는 죽고 마는 한 인물 --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세월호 사건'으로 더욱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이지만 --을 그린 작품을 다소 흥미롭게 읽었을 따름이었다. 그 밖에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여 보트를 몰고 항구로 들어오기까지의 역경을 그린 [청춘](Youth)이라는 단편 소설도 읽었는데, 영어 실력의 부족에다 마지막 부분은 급하게 읽느라 도대체 무슨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1년 전에 이 작품을 다시 읽었는데 배와 관련된 전문용어들이 많아서 읽기가 수월치만은 않았다). 또 언제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비밀 동승자](Secret Sharer)라는 단편도 당시에는 어렵게 다가왔었다. 이렇게 네 작품과 정종화 교수와 나영균 교수의 작가와 작품 설명 정도가 콘래드에 대한 나의 지식의 전부이고, [로드 짐]을 제외하고는 큰 흥미를 느낀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대답을 했을까?
물론 당시의 대답이 나의 계획이 어긋난, 그래서 다소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나온 막연한 것이긴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볼 때, 두어 가지 정도의 이유는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힘겨운 일임에 틀림없다. 대학 과정과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글쓰기 훈련을 하기는 하지만, 논문이라는 꽤 긴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수 있고, 나의 경우 여러 사정이 겹치는 바람에 커다란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그러다가 십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다시 기회를 얻어 석사 논문을 마칠 수 있었기 때문에 에밀리 브론테와 그녀의 작품인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에 대한 애정은 남다른 데가 있다(작년 1월말에 영국에 갔을 때 그녀가 살았던 호어스(Haworth)를 찾아가 소설의 배경이 되는 버덩을 아침 일찍 거닐 때, 빗물에 젖은 땅을 조심스럽게 밟아나가는데, 드센 바람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불어오고, 그러다가 예기치 않게 마주한 일출. 멀리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의 능선 위로 붉게 떠오르는 해는 마치 나를 향한 환영 인사인 듯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글이 너무 멀리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디서 읽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콘래드가 에밀리 브론테의 이 작품을 상당히 좋아했고, 자신의 창작 기법의 핵심 중 하나인 '독자로 하여금 보고 느끼게 만드는 것'(make you see. 이 기법은 사실 그가 플로베르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하는데)의 구체적인 예로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을 들었다는 것에서 나는 콘래드와 어떤 연결 고리를 느꼈던 듯하다. 그 다음으로는 석사 과정 내내 내가 중점적으로 공부한 시기가 영국의 19세기, 그 중에서도 빅토리아 여왕 시대이므로, 아주 현대적인 작가보다는 그래도 빅토리아 시기와 연관이 없지 않은 콘래드(콘래드는 그 창작 기법이라든가 실험성으로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적인 위치에 있긴 하지만 그의 첫 소설 [올메이어의 우행](Almayer's Folly)은 빅토리아 시기가 끝나가는 1895년에 나왔다)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박사 과정을 마치고, 강의를 시작하고, 다시 박사 종합 시험(논문 자격 시험)을 준비하면서 논문 준비도 병행하는 가운데, 벌써 7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석사 논문을 준비할 때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한 작품에만 집중하면 되었지만, 콘래드는 작품집만 해도 스무 권을 넘어가기 때문에 작품을 다 읽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들었다(여러 사정으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제는 콘래드의 작품과 그의 동시대인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옥스포트 콘래드 참고 사전](Oxford Reader's Companion)에 따르면 콘래드가 1921년 전에 프로이트의 글을 직접 읽었다는 증거는 없고, 누군가가 프로이트의 글을 읽어볼 것을 권했을 때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295)--을 엮어서 논문을 써나가야 한다. 콘래드의 대부분의 작품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극복 과정으로 비치는 환원론적 생각에 함몰되어 있던 나에게, 다시 말해 너무 뻔한 글쓰기가 되거나, 별로 할 말이 없게 되고 말 위험에 처해 있던 나에게, 박찬부의 [현대정신분석비평]은 하나의 돌파구를 보여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정신분석으로 문학을 해석하는, 문학을 정신분석의 틀 안에 가두려고만 했던 듯하다. 아니, 그 보다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문학과 정신분석이 상호 소통하는 장이 되는 글을 쓰려는 태도를 견지한다면 글이 좀 더 풍성해 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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