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반은 전쟁의 막바지에 이르런 상황에서 식민지 백성인 조선인들--그들은 조선인 중에서도 대체로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에 있었던 사람이었으리라--이 감내해야 했던 엄청난 고통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되면서, 영화가 어떻게 극적인 흥미를 끌어올릴 것인가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독립 운동가였던 윤학철이 변절자로, 사실은 미쯔비시 탄광의 소장과 함께 동족인 조선인들의 고혈을 짜내는데 앞장을 서고 있었다는 반전(이 부분은 [설국열차]에서 기차의 절대권력자인 윌포드가 폭동을 일으킨 하등칸의 지도자인 길리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를 구출하러 왔다가 그의 실체를 알게되는 독립군 박무영의 등장으로 흥미진진해진다.
하지만 류승완의 이 영화는 전작인 [베테랑]처럼 상업성을 지향하면서도 역사적 아픔을 짚어 보려고 하는 데에서 어려움이 발생한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은 크게 보아 철저한 고증에 따라 그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는(물론 그 또한 허구이긴 하지만) 부류와(이런 부류의 작품 중 최근작으로 잘 만들어진 작품은 이준익 감독의 [동주]일 것이다.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역시 이준익 감독이 만든 [박열]도 이런 계일이 아닐까 한다), 흔히 팩션(fact와 fiction의 합성어, faction)이라고 불리는 역사적 사실에다 상상력을 가미한 그런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팩션들 중에서 가장 있기가 있었던 작품은 아마도 추창민 감독의 [광해]일 것이다.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데 큰 비중을 두면서도 왕인 아버지로부터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도 세자와 그의 아픔을 보듬으려는 노력을 잘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과는 반대로 상업적으로는 상당히 성공을 거두었으나, [덕혜옹주]는 원작 소설 자체가(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영화로 추론해 보건대) 조선의 왕실이나 덕혜 옹주에 대해 국수주의적이라고 할 정도로 온정적이라, 역사적 사실을 상당 부분 지나치게 왜곡하고 만 것은 아무리 상업성을 추구하는 대중 영화라고 하더라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이런 느낌을 예전에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적었다).
이 영화는 전반부는 치밀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탄광에서 혹사를 당하는 가운데 부상을 당하거나 죽게 되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치중을 하다가, 후반부로 갈 수록 허구적 상황을 설정하여 마지막 부분에서는 조선인들의 대탈출과, 일본인들과의 전투로 이어진다. 감독이나 배우들의 공언대로 마지막 전투 장면은 특히나 공을 많이 들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자유를 갈구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과 맞물려 일정 정도의 감동을 선사한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보편 명제를 놓고 볼 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강제 징용이나 위안부로 끌려가 혹사를 당하고,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 억울함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인지?
그렇긴 하지만 이 영화의 문제점은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에 너무 쉽게 기대고 있어서, 거의 모든 일본인들이 악으로 형상화되거나 아니면 발언권이 없는 배경으로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특성상 일정 정도의 단순화는 피할 수 없었겠지만, 패전을 목전에 둔 당시의 상황이나, 일본인들의 심리가 최소한의 입체성도 없이 그저 악한 존재로만 평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은 큰 약점이 아닐 수 없다. 류승완 감독은 이 이분법을 상쇄하기 위해서 일본인들의 앞잡이로 일본인들보다 더 악랄한 조선인들--송종구가 그 대표적인 예일 텐데--을 등장시키고 있기는 한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 또한 일본인들의 손에 죽고 만다.
영화라는 영상 매체가 갖는 서사의 한계와 시간의 제약 등으로 내가 지적한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것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긴 하지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보는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니라, 역사, 그것도 아픈 과거사를 소재로 해서 영화를 만들 경우에는 상업성을 추구하는 감독일지라도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절반 정도의 성공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170812)
'영화 그밖의영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킬러의 보디가드(Hitman's Bodyguard) - 춘천 CGV (170903) (0) | 2017.09.05 |
---|---|
군함도 - 대전 유성 CGV (170731) 친구 주백과 (0) | 2017.08.12 |
크리에이션(Creation) - 존 아미엘 (컴퓨터 다운. 170706 두 번) (0) | 2017.07.06 |
2017년 4월 -5월 20일까지 본 영화 (0) | 2017.05.22 |
철의 여인 (The Iron Lady) - 필리다 로이드 (2011) [170328, 9 - VOD] (0) | 2017.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