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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영국여행이야기

영국 여행 이야기(5) - 책 정리(D)

by 길철현 2017. 9. 15.

 

글이 일관성 있게 진행이 되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당시 일을 "영국 여행기"처럼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록해 둔 것도 아니고, 시간도 많이 지난데다, 수천 권의 책을 처분하고 정리하는 일 자체가 단순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나나 혹은 이 글을 읽는 사람이 혼돈의 늪에 빠져 - 나는 오히려 그걸 즐기는 체질이기는 하지만 -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처음에는 안 쓰고 생략하려고 했던 일 하나를 언급하도록 하자. 지금 쓰고 있는 시기, 그러니까 책을 옮기기 시작한 시기보다 7개월 정도 전, 이해 4월에 있었던 일이다.

 

공부를 게을리 하고 있었나, 어쨌든 책방에 두어 달 이상 가지 않았던 듯하다(이런 점만 보아도 책방의 실제적 효용성이 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글을 적다보니까 책방과 얽힌 또 다른 에피소드가 꼬리를 문다. 제일 처음에 방 하나를 빌렸을 때에는 겨울철의 보일러가 문제였다. 이 집에서는 주인 아저씨가 나 대신에 관리를 해주고, 날이 추울 때에는 보일러를 최소한도로 틀어서 보일러가 터지는 일이 없도록 했다. 두 번째 책방에서는 다른 집들이 난방을 해서 그런지 큰 문제 없이 겨울을 났다. 그런데, 이 당시 책방에서는 보일러가 탈이 나고 말았다. 주인 아저씨는 재개발에 상당히 적극적인 분이었던 듯한데, 계획대로 재개발이 진척이 안 되는 것이 답답한 모양이었다. 반 지하를 포함 3층으로 된 이 집에 세를 든 가구가 나를 포함해 네 가구 정도 되었는데, 계약 기한이 끝난 뒤로는 모두 이사를 가서 나 혼자만 남게 되었고, 난방을 하는 곳이 없으니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 내지 못하고 보일러가 탈이 나고 말았다. 그 전해 겨울인가 주인집에서 보일러가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돈을 들여 수리를 해보았지만 작동되지 않았다. 거기다 수도관까지 터져 방바닥에 물이 흥건해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도 물은 책장에 꽂아둔 책이 젖을 정도로 까지 차오르지는 않았다. 밸브를 다 잠그고, 안 입는 두터운 옷으로 수도꼭지를 감싸고, 주인 아저씨도 집으로 냉기가 덜 들어오도록 뒷단 등에 있는 틈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다 막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화장실의 세면기도 보온을 했는데 변기는 주인집과 연결이 되어서였는지 얼지 않도록 물을 조금씩 틀어두었는데, 건물 안쪽에 있는 화장실까지도 물이 얼기도 했다). 그러다가, 필요한 책이 있어서 책방에 들렀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세입자들은 다 나갔고, 주인 내외분과 결혼을 안 한 자제분이 3층(2.5층)에 살고 있었는데, 마치 빈집처럼 고요하고, 또 이사라도 갔는지 3층 현관문 앞에 쓰레기가 있었다. 전기 요금 관계 등으로 뭔가 주인 아저씨와 할 말이 있었던가? 현관문을 두드려 보았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집 전화로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결번이라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세입자인 나 몰래 집을 팔아넘기고 어디론가 가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아무 데도 연락을 취할 수 없는 사항이라 일단은 '건축물 대장'인가를 열람해보니 다른 누군가에게로 소유권이 넘어가 있었는데, 같은 성씨라 '그 사이에 주인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아들에게 상속을 한 모양'이라고 추측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궁금증은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중개사 사무소에 찾아가보면 뭐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해서 책방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공인 중개사 사무소를 찾았다. 집 주소를 이야기하면서 전후 사정을 대충 이야기 해보았더니 중개사는 "재개발 추진 위원회"를 찾아가보라고 했다. 그곳으로 가서 다시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니까, 전화 번호를 두 개 주었다. 주인집의 가족 관계를 나는 정확히 모르고 아들과 딸 한 명 내지는 두 명 정도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아들로 생각했던 사람은 사위로 딸만 둘이었다. 처음에는 전화 연락이 잘 안 되어 가슴을 졸이다가 겨우 연락이 되어 자초지종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 사이에 주인집 내외분이 다 돌아가시고(연세가 좀 있긴 했어도 두 분이 몇 달 사이에 돌아가셨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남의 집 가정사를 파고 드는 것도 실례인 듯해서 더 자세하게 묻지 않았다. 공무원을 하다가 정년 퇴임을 한 걸로 기억되는 주인 아저씨는 내 피상적인 경험으로는 경제 관념이 굉장히 꼼꼼한 분이었다. 전기를 쓸 일이 없어 기본 요금밖에 나오지 않는데도 수납을 늦추거나 하면 나에게 전화를 해서 채근을 하곤 했다. 재개발이 지연이 되면서 뭔가 안 좋은 일이 두 분에게 일어난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더더욱 물을 수가 없었다) 결혼을 안 한 둘째 딸이 그대로 살고 있었는데, 내가 들렀을 무렵에는 공사를 한다고 며칠 집을 비워둔 상태였다고 한다. 이 때 통화는 주로 결혼한 첫째 딸과 했는데 칠팔 십프로가 동의를 해서 이번에는 진짜로 곧 재개발이 될 듯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