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이 '책 정리'와 관련해서 기억이 닿는 대로 글을 쓴다. 필요하다면 나중에 다시 고쳐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책 정리'와 관련해서 쓸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 그래서 우려했던 대로 이 글쓰기가 자칫 내 논문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루하루를 충일하게 살다보면 어느 정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잘 처리하지 않을까 했는데, 부지런히 정신을 움직이는 데에도 실제로 내가 하고 있는 분량은 얼마되지 않는다. 과욕은 금물.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고 차근차근 나가 보자.]
12월 24일자 일기를 보면 그 때쯤에는 책을 정리하는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었는데도, 마지막에 전셋방 가격을 적어 놓은 것은 미련을 쉽게 떨구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크리스마스 날에도 나는 책방에서 책을 정리하고 아파트로 옮겨야 할 책을 차에다 싣고 있었다. (책방이 있는 곳은 내 아파트에서 걸어서 10분이 채 안 걸렸다. 책 한두 권이 필요한 경우에는 대체로 걸어갔다가 걸어오곤 했다--책 정리는 도서관이나, 서점 그리고 헌 책방을 다닐 때, 책 분류 해 둔 것에 따랐다. 문학(국문학과 영국 문학, 미국 문학, 기타 외국 문학), 철학 등 분야별로 책을 분류한 뒤 우리 나라 작가는 가나다 순으로 외국 작가는 알파벳 순으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이 책 제목을 컴퓨터에다 다 입력했기 때문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도서관과 비슷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재는 책들이 본가에 많이 가 있고, 또 공간의 부족으로 박스에 넣어 둔 것도 많다. 중요한 것은 정말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 더 드물게 책을 이용할 수 없어서 아쉬운 정도의 불편밖에 없다는 것이다. 책방이 전문 대학의 정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서, 내가 자주 이용하던 식당에 들렀다가 책을 갔다놓기도 하고 가져오기도 했다. 책방이 있는 곳은 정문 앞 큰 길에서 골목으로 50미터 정도 들어간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 골목은 차 한 대가 겨우 드나들 정도로 좁은 골목이었다. 차를 몰고 들어갔다 나오는 것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닌데다가, 또 누군가가 차를 빼달라는 것도 성가신 일이었고 , 혹은 내 앞에 차를 대어 버려 차주에게 일일이 전화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어서 처음에는 대체로 큰 길에다 차를 대어 두고 책을 날랐는데, 옮겨야 할 책이 한 번에 백 권을 넘어가자 거리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급선무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사를 한 곳이 많아져서 나중에는 차를 책방 앞에다 주차를 해두고 책을 옮겼다.) 이 당시 탁구를 좀 무리하게 친 탓도 있지만, '그 동안 소중하게 모아왔던 책들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그다지 쓸모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화가 많이 났던 것인가?'(27일자 일기 참조) 스무 권 정도 되는 책을 옮기려 허리를 숙였다가 일으키는 순간 허리가 삐끗하면서 근육이 한쪽으로 확 뭉치고 말았다(허리 근육이 뭉치는 현상은 30대 때 아주 심하게 한 번 근육이 뭉치고 난 다음부터는 2,3년에 한 번 정도는 불쑥 찾아와 한두 달씩 나를 괴롭히는 고질병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책을 정리*처분하고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는 것이 낫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음에도, 내 마음 한 부분에서는 그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서 그 분노를 내 몸에다가 뿜어낸 겪이었다.
휴일이라 병원에 갈 수도 없고 해서 이날은 누워서 VOD로 계속 영화만 시청했다. 그 다음 날은 토요일이라 물리치료를 받고는 우울한 기분을 풀 겸 무작정 차를 몰고 나섰는데, 가다가 멈춘 곳이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평내'였다. (심심할 때면 이 '평내'와 마주하고 있는 '호평'이라는 곳에 가서 영화도 보고 그랬는데 이 날은 '평내'로 향하게 되었다) '국수나무에서 낙지덮밥을 먹고'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진 동네를 한 바퀴 돌았는데, 자꾸만 한쪽으로 뭉치는 근육을 억지로 펴면서 걷는 것이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내 느낌으로는 한 2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걷는데 중간중간 쉬기도 하고 허리를 펴기도 하면서 한 시간 이상이 걸렸던 듯하다(이 허리의 근육통은 차차 완화되기는 했지만 영국 여행을 가기 전까지 계속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고, 영국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한 동안은 고생을 했다).
[1227. 일]
그 동안 소중하게 모아왔던 책들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그다지 쓸모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화가 많이 났던 것인가? 덩달아서 힘들어하던 허리가 드디어 분노를 터뜨리면서 뭉치고 말았다(25일 크리스마스에. 책방에서 책을 옮기는 데 허리가 확 뭉쳐서 금요일은 하루 종일 영화를 보면서 쉬고, 토요일에는 물리치료를 받고 평내에 가서 국수나무에서 낙지덮밥을 먹고 그 동네를 한 바퀴 돌았는데 굉장히 힘이 들었다).
짜증이 많이 나지만 여기에 굴하는 것은 다시 반복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책을 정리하는 것은 그만큼 나를 가볍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버릴 것은 버려버리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들은 집으로 싸서 보내자.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번도 필요 없었던 것들은 앞으로도 보지 않을 것이고, 웬만한 것들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도록 하자.
(허리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하지만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니까 좀 덜하다. 앉아 있는 것이 힘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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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 있는 책은 대략 5,6천 권 정도이다. (5백 권 정도 현재 정리했다.)
대구 집에 4천 권 정도 갖다 놓고
(일단은 많이 정리해야 한다.)
1천 권 정도 올리고, (1천 권 내외는 버리든지 정리하든지 하자.)
과욕이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이었다. 그리고 상황이 또 이렇게 될지도 몰랐다. (그것이 바로 현실을 좇아가지 못했다는 말일 것이다.)
***
시간이 좀 지난 일을 적어나가다 보면 '기억'의 문제와 자꾸 부딪히게 된다. 써보고 싶은 글 중에서 실패로 돌아간 많은 글들은 일차적으로 '기억의 부정확성' 앞에 좌절하고만 경우가 허다했다. 거짓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결벽증인가? 지금은 '기억'이라는 것은 미세한 부분에서 혹은 큰 부분에서도 망각될 뿐 아니라 재구성되는 측면도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너무 집착하지는 않으려 하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의 일관성마저 유지되지 않는다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상황이 정리된 다음에는 그 당시의 마음의 갈등이나 심각했던 고민 등이 생생하지도 않고, 마음의 흔들림보다는 그 결론만이 뚜렷한데, 당시의 일기를 들여다 보면, 책을 정리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다음에도 고민은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 적고보니까 당시 내 마음이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지 좀 더 정확하게 떠오른다. 처음에 전세로 이사를 가려고 하다가,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만 해도 될 수 있는 대로 책을 많이 처분하겠다는 쪽이 아니라, 처분은 최소한으로 하고, 내 아파트와 대구 본가에 책을 두는 쪽이었는데, 한 번 책을 처분하기 시작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책을 처분하게 되었다.
[1229. 화]
몇 가지 문제가 겹쳐져서(허리 통증과 책방 이동, 그 다음 소희 이사) 마음이 다시 불안에 빠져들려고 한다.
장석 교회 옆 ** 주택은 세입자가 급한 상황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상황에서 전세를 5백이나 내렸다는 것이 말이 좀 안 된다. (1월 20일이 기한이라고 나에게 거짓말을 했는데 실제로는 2017년 4월까지가 기한이었다. 집 주인으로서는 당연히 집세를 내린다는 것이 화가 나고, 그래서 복덕방의 전화도 잘 받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3천 5백이라도 들어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할 텐데 그것도 지금으로서는 용이하지도 않은 듯하다. (일단은 1월 20일 정도를 기한으로 생각하고, 그보다 조금 더 늦어도 될 듯은 한데.)
[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정말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 소중하고 앞으로 읽어나가야 할 것이라는 측면과, 지난 20년 간 그랬듯이 앞으로도 읽지 못할 책이 태반이라 많은 책이 짐만 될 것이라는 부정적 측면, 이 둘이 공존하고 있다. 뒷부분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면이 없지 않다. 이 기회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책을 처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의 잘못된 투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 아닐까? 묻고 또 물어라.
나에게 여유가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지금은 매체 자체가 책에서 인터넷으로 많이 이동했다. 그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자신이 많은 부분을 인터넷에 기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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