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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영국여행이야기

영국 여행 이야기(3) - 책 정리(B)

by 길철현 2017. 9. 11.

 

처음에 주인집으로부터 '방'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책을 처분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방을 새로 구하고 이사를 하고, 다시 책을 다 정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성가실 따름이었다. 하지만 지난 6년 사이에 전세가 많이 올라서 4천으로는 6,7천여 권의 책을 둘 만한 공간을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거기다가 대출 이자가 점점 더 내려가 전세는 줄고 반전세나 월세가 많아진 탓에, 전셋방 자체도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동안 줄곧 해왔던 영어 과외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줄어 들다가, 2012년 [독학사] 강의를 맡으면서는 완전히 그만 둔 상태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전세를 구하는 와중에 있었던 우스운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이 난다.

 

전셋방을 구하는 일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던 중에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길 건너편에 있는 주택가의 복덕방에 들렀더니 마침 내가 원하는 그런 전세가 하나 있다고 했다. 지은 지 수십 년은 된 많이 낡은 빌라의 반 지하 방 두 칸 짜리였는데, 지대가 높아서 비가 많이 오더라도 물이 들어오거나 할 염려는 없어 보였다(60대 중반 정도의 세입자 본인이 마침 집에 있어서 방을 보여주었는데 가구며 각종 물건들이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어지럽고 다소 퀘퀘한 냄새도 났다). 원래 있던 곳보다 좀 좁기는 했지만 그래도 책을 두는 데에는 큰 불편은 없을 듯했다. 지금 살고 있는 세입자의 계약 기간은 그 다음 해 4월까지인가 그랬는데, 다른 곳에 분양을 받은 아파트에 입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든가 해서 내놓았다고 했다. 게다가 전세금이 3천만 원으로 아주 저렴해서, 포장이사 비용에다 복비를 지불한다 하더라도 돈이 남을 것이라는 사실도 나를 흡족하게 했다.

 

세입자와 구두로 대략 그렇게 합의를 보았고, 복덕방 아주머니가 집 주인과 계약서만 쓰면 된다고 해서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복덕방에 전화를 해보았더니 상황인 즉슨 집주인이 원래 그 집을 3천 5백에 전세를 주었는데, 세입자가 주인 허락도 없이 무턱대고 5백만 원이나 깎아버려 집주인이 엄청 화를 내면서 전화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3천 5백에라도 들어갈 용의가 있어서 그러면 3천 5백으로 해도 괜찮다고 했는데 - 내가 살고 있는 월계동이 집값이 싸긴 하지만, 집이 낡고 위치도 외져서 그렇지 서울 시내에서 그 정도 가격으로 전세를 얻는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 계약을 꼭 성사시키겠노라는 복덕방 아주머니의 장담과는 달리 한 번 틀어진 일은 복구되지 못한 채 그대로 끝이 나고 말았다.

 

내가 중간에 좀 더 나서 볼 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이 꼬이면서 내 생각에도 서서히 어떤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듯하다. '책을 읽는 것'이 우리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전통이지만, 나의 과도한 책 수집벽은 '언젠가는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도 읽지 못할 책들 - 예를 들자면 잘 하지도 못하면서 사 둔 불어나 독어로 된 책들 - 또 시간이 지나버려 이제는 더 이상 볼 필요도 생각도 없어져 버린 책들도 다수 있었다. 보관해 온 책들이 내 공부에 도움이 되고 또 내 지적인 허영심을 충족시켜 준 부분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책을 보관하는데 드는 비용 등이 나에게 큰 마음의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지난 이십 년 동안에 보지 않은 책들은 앞으로 이십 년이 지나도 보지 않게 되는 것 아닌가? 어머니는 내가 책을 옮기고 정리하고 하느라고 시간을 다 허비한다는 말도 했다. 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자꾸 깊어지던 가운데,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결정적인 한 마디를 했다. 그 당시 그가 쓴 정확한 용어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비용 효율성"(cost efficiency) 정도의 말이었을 것이다. 다양한 이력을 지닌 그는 경영학을 전공하기도 했는데, "니가 책을 보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매달 새 책을 최소한 열 권 아니 스무 권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나의 상황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수십 년 동안 전국 각지의 헌 책방을 돌아다니며 모은 책들을, 내 손 때가 묻은 책들을 처분한다는 것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고통이기는 했다. 물론 나의 경제적 상황이 허락한다면 책을 사모으는 것이 그닥 나쁠 것이 없는 취미이기는 했다. 문제는 내가 처한 현실이었고 -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품었던 꿈들을 이루지 못하고 자꾸 좌절하는 가운데, 책을 읽고 또 책을 사모으는 정말 그닥 나쁠 것이 없는 취미조차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에 화가 치미는 면도 없지 않긴 했다. 아니 생각을 좀 더 밀고 나가보니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품었던 꿈들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많은 책들이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어떻게 보면 나는 책들이 나의 실패에 대한 변명 혹은 면죄부의 역할을 해준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  모든 책을 다 처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만 바꿔 먹으면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불필요한 책들, 혹은 그 필요성이 떨어지는 책들 - 은 처분해도 무방할 터였다. 글을 쓰는 이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수십 년을 지녀온 마음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나 결론적으로는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된다. 나에게 경제적 능력이 좀 더 있다면 장기적으로 책을 둘 공간을 마련해 두고 필요할 때 보면 되겠지만, 집을 사거나 하지 않는다면 이번 이사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마음을 바꾸는데 한 몫을 했다. 

 

책에 대한 나의 과도한 애착에 대해서 그 원인을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번역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할 때 적어도 자료가 부족해서 애를 먹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큰 부분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뒤에서도 이야기 하겠지만, 자료로서 필요한 책 중에 상당 부분은 이제 인터넷이 훨씬 편리하게 그 역할을 수행해 줄 수 있게 되었는데도 나는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어느 정도 수용을 하면서도,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책들을 그냥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습관의 힘이란 무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