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행기를 적기에 앞서서 어떻게 해서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가, 를 둘러싼 이야기도 나로서는 흥미로운 부분이어서 먼저 그 부분부터 적어나가야 할 듯하다. 앞서 이 영국 여행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여행 전에 일어난 이 일이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사실 이 두 가지 일은 동전의 앞뒷면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먼저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의 사정을 한 번 정리해 보자. 당시, 그러니까 2015년 12월 무렵, 나는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 코스인 [종합 시험](다른 학교에서는 [논문 자격 시험]이라고 하기도 하던데)을 마치고, 논문을 쓰기로 한 조지프 콘래드의 작품들을 천천히 읽어나가고 있었다.
이 당시 나는 나의 과도한 '책 수집벽'때문에 내 좁은 아파트에 두지 못하고 넘쳐나는 책들은 아파트 근처에 있는 주택에 전세를 얻어서 2009년부터 보관해 오고 있었다. 책에 대한 지나친 욕심으로 내 좁은 아파트가 넘쳐나는 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나는 2006년 정도에 작은 방을 하나 월세를 얻어 보관하다가, 2007년 석사 논문을 마친 다음에는 출판사라도 할까 해서 꽤 넓은 사무실을 하나 얻었는데, 막상 사업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보증금 2천만 원에다 매달 오십만 원이라는 공돈을 2년 동안 쏟아붓고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전세 4천만 원에 그 집을 얻었던 것이다(처음에 월세를 얻은 것은 내 선에서 처리를 했으나, 두 번째부터는 어머니의 재정적인 지원이 있었다). 계약 당시부터 집 주인은 그곳이 재개발 지역이라 얼마 안 있어 재개발이 될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재개발이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고, 내 예상대로 재개발은 6년이 지나도록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곳은 그렇게 내 넘쳐나는 책들의 보관소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었는데, 닥쳐올 일은 언젠가는 닥쳐오고 마는 것인지 재개발이 확정이 되어 2016년 1월 말 정도까지 방을 비워주어야 했다.
이 쯤에서 2012년에 [책과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옮겨본다. 나의 책 수집벽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등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집에 책이 몇 권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또 학생들이 있는 가정이 아닌 경우에는 책은 별다른 중요성을 지니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꼭 필요했을 수도 있는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 등도 지금에 와서는 컴퓨터 인터넷으로, 아니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면 되기 때문에 거실 한 구석에 방치된 채 놓여있을 수도 있고, 발 빠른 신세대는 그 무거운 두께를 이겨내기보다는 일찌감치 처분해 버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책이 상당히, 아니 엄청나게 많다. 큰 방과 거실, 작은 방을 채우고도 모자라 따로 책을 보관하기 위해 전세를 얻었을 정도이다. 책이 어찌나 많은 지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천장에 금이 갔다고 불평을 했고, 한 동안은 방바닥이 꺼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을 안고 살았다.
어린 시절 본가에 살 때에도 그 나이치곤 책이 꽤 많은 편이긴 했다. 어머니는 당신은 별로 교육을 받지도 않으셨지만 자식의 교육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아서, 70년대 말 혹은 80년대 초까지도 유행했던 책 외판원으로부터 계몽사 세계 문학 전집이나 한국 위인전, 세계 위인전 등을 사주셨고, 그 책들은 초등학교 시절 내 지식의 보고였다. 또 용돈이 생길 때면 [계림문고]에서 나온 <소년 소녀 세계 명작>을 한 권씩 두 권씩 사서 보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학과 공부 외에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 당시 내 관심의 상당 부분은 팝송에 경도되어 있었기 때문에 책에 대한 관심이 초등학교 시절보다 오히려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문학 동아리에 들면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책을 사서 소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하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짐이 많아지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학교 도서관에 내가 보고 싶은 책들이 넘치도록 있는데 얇은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할 때 굳이 살 필요는 없지 않는가, 라고 생각했던가? 그런데, 지금은 유명한 시인이 된 선배가 내 하숙집에 놀러왔다가 “문학을 한다는 놈이 왜 이렇게 책이 없냐?”라는 말에 자극을 받았던 것인가, 그 이후로 나는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새 책은 가격이 만만치 않았으므로 주로 헌 책방에서 책을 구입했다. 당시만 해도 학교 앞에 헌 책방이 두세 군데 있었고, 동네마다 잘 살펴보면 한 군데 정도는 헌 책방이 있었다. 나의 책 수집벽은 복학을 한 다음 넓은 자취방을 쓰게 되면서 더욱 속도를 붙였다. 책을 읽는 것도 읽는 것이지만,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고 하는 책들을 소장한다는 데 더욱 열정을 쏟았다고나 할까? 아니 그 때만 해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중 90년 겨울 방학 때였던가, 방학 내내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을 읽었고, 헌 책방을 순례하면서 채대치, 이철, 김학수, 박형규 등이 번역한 소설들을 구하러 헌 책방이 밀집한 청계천 등을 돌아다니던 것이 제일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책을 읽는 속도가 항상 책을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읽지 못한 책이 사채업자에게 진 빚처럼 감당할 수도 없게 불어났고, 그래서 책을 사지 말아야지, 아니 적어도 읽는 것보다 많이 사지는 말아야지, 다짐을 해보아도 그 다짐은 번번이 책에 대한 내 큰 욕망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내가 구입한 책들은 물론 대부분이 인문학 쪽의 책들이다. 전공이 영문학인지라 영문학 쪽의 책이 많고, 또 언젠가는 작가가 될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한국 시집과 소설들도 많이 구입을 했다. 그리고 별로 읽지는 않지만 철학 책들은 언제나 나를 강하게 유혹했기 때문에 그쪽 분야의 책도 눈에 뜨이는 대로 구입을 했다. 이 밖에도 각종 사전류, 역사서, 또 대중 과학 서적들도 사들였다. 헌 책방에 들렀는데 살만한 책이 한 권도 없을 때에는 그냥 나오기가 머쓱해서 그래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새 책을 사지 않은 것도 아니다. 급하게 읽어야 할 전공 책이나, 또 볼만한 신간 등은 새 책을 구입하기도 했던 것이다. 대학원에서 석사 논문을 쓸 무렵에는 아마존으로 책을 많이 주문하기도 했다.
대학교 1학년 때를 기준으로 하면 그렇게 책을 사 모은 것이 벌써 27년 째 들어서고 있다. 이제는 나로서도 감당이 불감당이라 예전처럼 무계획적으로 책을 사지는 않는다. 사실 책은 이사할 때면 정말 큰 골치 덩어리이다. 포장이사를 한다 하더라도 이사업체의 직원들이 그 많은 책을 원래 위치에 꽂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책을 정리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고 만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95년에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에 이사를 온 이후에는 계속 거주하고 있어서, 이 아파트의 책들은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아파트 밖에 있는 책들은 벌써 두 번이나 이사를 했다. 지금 있는 곳은 3년 째 되었는데 꽤 오래 그대로 둘 수 있을 듯하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이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만 권은 넘을 듯하다. 그 중에서 또 세어보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2천 권 정도는 읽었으니 그래도 그 동안 꽤 많이 읽었다면 읽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문제는 권수가 아니라 독서의 질이라고 할 수 있다.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그리고 오랜 방황 뒤에 다시 박사과정에 들어가 수업을 들으면서 읽은 책들은 그래도 나름대로 정신을 집중해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대체로 좀 급하게 혹은 잘 소화를 못한 채로 읽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가 남는다. 아무래도 소설과 시집을 제일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있고, 프로이트도 [열린책들]에서 나온 전집을 거의 다 읽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독서는 어느 핸가 아마도 두 달 정도 하루에 한두 시간 씩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영어로 읽은 것이리라. 그 몇 해 전에 대학원 수업에서 한 학기 내내 그 책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책을 이 때 한 150페이지 가량 읽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조이스의 머리를 따라가는 것은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었다.
현재 나에게는 철학, 그 중에서도 언어철학에 대한 욕심이 있고, 또 박사논문이라는 큰 산이 하나 있다. 그 둘은 아마도 어디쯤에서 만나지 않을까 하는데,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거시적인 이야기 가운데서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되고 만다. 그렇긴 하지만 좀 거시적인 관점에서 책과 나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없지 않으리라. 요며칠 부쩍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강한 열망이 치솟는다. 개학을 하고 지난 학기부터 맡게 된 [독학사] 강의 준비에 시달리고 일상에 쫓기고 하다보면 이 열망들은 풀숲으로 들어가고만 뱀처럼 그 꼬리도 짐작하기 어렵게 될 지도 모르지만, 방황하면서도 지금까지 밟아온 길을 신들메를 고쳐 매고 또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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