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내가 접한 논문 중 가장 최근에 나온 이 논문은 우선 그 인용 자료의 방대함으로 나를 놀라게 한다. 인터넷 시대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것이면서 필자가 콘래드를 오랜 기간 추적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덕택에 필요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따. (하지만 때로는 그 방대함이 지나쳐서 방만함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도 한참 지난 21세기에 다시 리얼리즘의 장점을 주장하고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시대착오적인 부분도 보이지만(그의 프로필을 살짝 엿보니 막시즘을 자신의 기본토대로 삼고 있다고 한다) [어둠]에 비해 열등한 작품으로, 또 [어둠]과의 연관성에서만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왔던 [진보]가, 혼란스럽고, 모순적이며, 때로 자기전복적이기까지한 [어둠]보다, 당대 아프리카의 경제적 교역을 축약적으로 담아내는 동시에 식민주의의 폐해를 적절하게 집어내고 있어서 오히려 더 뛰어난 작품이라는 주장은 적극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운 가운데에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런데, 이 논문은 아주 상세하게 그리고 다양한 측면에서 [진보]를 분석하지만(30페이지가 넘는 꽤 긴 논문이다) 지면은 주로 이 작품의 리얼리즘적인 특성이, [어둠]의 모더니즘적, 더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특성보다 뛰어남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부분의 다음과 같은 말이 다소 공허하게 들린다.
Any model of modern literary history will exhibit greater richness and explanatory power if it makes room for a dialogue and struggle between the two modes rather than repressing or degrading one of them, or putting them into a reductive sequence of progress or degeneration.
인간의 삶에 있어서 경제적 요인이 갖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어둠]이 후반부에서 "형이상학"으로 흐르고 있다고 해서 작품을 평가절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어둠]에 있어서 모순적인 면이나 어떠한 해석도 가능하지만 어느 것도 정확히 맞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작품을 열어놓는 콘래드의 방식을 모더니즘의 특징으로 장점으로 부각시켜온 것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을 해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이 논문은 의의가 있다. (그러나, [어둠]이 경제적 요인을 등한시 한다거나, 식인종이 식인종이 아니라거나, 말로가 커츠를 죽였을 수도 있다는 주장은 도발적이기는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동의하기 힘든 주장들이고, 텍스트와도 모순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