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카렌 블릭센(Karen Blixen, 필명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의 동명의 작품을 필름으로 담아낸 것인데, 나에게는 그 동안 몇 가지 의문이 꼬리표처럼 달려 있었다. 영화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그것부터 정리하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먼저 저자의 이름으로 두 개의 이름이 왜 동시에 나오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이 작품은 카렌 블릭센으로 출판되기도 하고, 때로는 필명인 이자크 디네센으로 출판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디네센은 그녀가 결혼하기 전의 성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는 필자인 카렌 블릭센이 정확히 덴마크 사람이라는 것은 몰랐지만 영어권 국가 출신은 아닐텐데, 왜 번역자가 없을까 하는 점이었다. 조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영어로 먼저 이 작품을 쓴 뒤, 그 다음 덴마크 어로 다시 썼기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을 나는 줄 곳 자전적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재 이 작품을 도입부만 읽은 상태여서 내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대부분 '자전적 기록' 내지는 '회고록'으로 보고 있다는 점 또한 덧붙인다. (주로 위키피디어 참조)
자신의 17년 간의 케냐에서의 체험, 커피 농장을 운영하면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블릭센의 이 작품의 다른 놀라운 점은 유럽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아프리카의 자연과 사람들, 그리고 그 문화'를 존중하고 깊은 애정을 담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물론 이러한 일반적인 평가가 얼마나 정당한지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겠지만). 책을 읽어나가기 전에 나는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시청했고 일단 그 느낌을 간략하게 적어보려 한다.
1985년에 나온 이 영화를 극장에서 직접 본 듯하지는 않다. 워낙 오래 전의 일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 있질 않은데 어쨌거나 이 영화와 관련해서 하나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쯤에 이 영화를 보았을 것인데, 그 때만 해도 이 작품의 배경이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케냐라는 것 등 역사적인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보았을 것 같다--사랑하는 연인 사이인 카렌(메릴 스트립)이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에게 "결혼하고 싶다"라고 하자, "종이 한 장 때문에 당신에게 더 가까워지지는 않을 거예요"라고 말한 부분이다. 제도나 관습을 떠나 자신의 자유를 침해받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사랑하고 싶어하던 데니스의 모습이 그 때엔 참 멋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3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고 난 다음에 이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이 영화가 1910년대와 20년대 영국의 식민지였던 케냐 특정 지역(그녀가 농장을 가지고 있었던 은공 힐즈(Ngong Hills) 지역의 백인 사회와 흑인 원주민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지만, 카렌과 데니스의 사랑의 부분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식민지의 현실, 이를테면 지배자인 백인들과 피지배자인 흑인들 간의 갈등은 거의 하나도 드러나지 않아, '낭만적 로맨스'가 되어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으로 부각되는 데니스를 맡은 배우가 8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배우인 로버트 레드포드인데다가 극 중 영국인인 그가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지 않고 그냥 미국식 영어를 구사한 것은 어찌보면 미국적 가치를 이상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도 든다). 또, 마사이 부족을 묘사하는 부분, 즉 '영원한 현재를 살기 때문에 감옥에 갇히면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만다'라고 하는 부분도 그 부족에 대한 진정한 이해라기보다는 신비화라는 측면이 두드러지는 느낌이다. (책을 다 읽고 난다면 영화에서 제시하는 아프리카의 모습과 블릭센이 직접 이야기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모습을 좀 더 정확하게 비교하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낭만적 서사시라고 할 수 있는 이 긴 영화에서 이번에 보고 난 다음에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아프리카의 자연'이었다.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에서의 자연이 어둡고, 원시적이고, 그 안에 뭔가 악마적인 것이 들어있는 듯한 그러한 인상을 준다면,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케냐는 광활하고, 아름다우며, 인간과 야생동물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으로서의 자연이었고, 그 부분은 이 영화가 잘 살려내었다는 느낌을 준다. (책에서 자연이 주는 느낌을 묘사한 부분을 인용해 본다.
The views were immensely wide. Everything that you saw made for greatness and freedom, and unequalled nobility.
The chief feature of the landscape, and of your life in it, was the air. Looking back on a sojourn in the African highlands, you are struck by your feeling of having lived for a time up in the air. 3-4)
나중에 책을 다 읽고 그리고 영화를 다시 한 번 보고 난 다음에 다시 한 번 감상을 적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덧붙임. 굉장히 흥미롭게 보았던 덴마크 영화 [바베트의 만찬]의 원저자가 블릭센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전혀 매치가 안 되는 두 영화가 동일한 작가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라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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