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피해 멀리 동해시까지 차를 몰았다.
미세먼지 때문에 나들이도 마음 놓고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상황.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동으로 동으로 달리는데, 세상은 온통 희뿌윰. 멀리 있는 광경들은 박무에 휩싸인 듯 몽환적이기까지 한데 그게 인체에 치명적일 수도 있는 먼지라니, 차는 괜찮은지? 차 안의 공기는 괜찮은 것인지? 인제를 지나자 그제서야 겨우 시야가 조금씩 맑아지는 느낌. 동해시는 미세먼지 좋음.
중심가 주변에 차를 주차하고(동해시는 이름부터 좀 요상한데, 명주군 묵호읍과 삼척군 북평읍이 합쳐져서 1980년에 시로 승격했단다. 계획 도시인지 아닌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시청 앞 도로는 왕복 10차선 정도는 되어 보이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도로.) 탁구로 무거운 다리를 천곡동 낯선 거리를 거닐며 더욱 무겁게 하다가, 날이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하릴 없이 달방 저수지까지 차를 몰고 갔다가, 영화나 한편 때리자(까마득한 예전에, 한 20년 전인가, 그 때에도 이 도시의어떤 영화관--지금은 없어진--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초대박 영화인 [극한직업]을 밀어내고 반짝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았는데, 흥미롭고 감동적인 부분도 있고, 취약점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고, 또 생각할 거리도 좀 있는 그런 영화였다. 법정 드라마라는 점에서는 진부하지만, 증인이 자폐 (혹은 자폐 스펙트럼) 청소년이라는 점은 전에 본 적이 없는 것이라 일단 관심이 갔다.
이 영화를 크게 요약해 보면 변호사인 순호(정우성)가 살인(혹은 자살) 사건의 목격자인 지우(김향기)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좀 더 첨언하자면 민변 소속이었지만 현실의 중압감 앞에서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순호가 자폐 스펙스트럼 청소년인 지우가 갖고 있는 진실에 도달하면서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런 내용이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도, 또 자폐 증상이 있는 지우의 모습도 무겁게만 그려내지 않고 코믹한 요소들을 적당히 섞어서 짧지 않은 상영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 간 것이 이 영화의 장점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구성에 있어서의 비현실성, 즉 이 사건이 살인인지, 아니면 자살인지를 판명해 줄 보다 결정적인 증거인 '가정부의 말'을 피의자, 즉 가정부 측 변호인인 순호가 알아내고 법정에서 폭로한다는 사실(그것도 2심에 가서야)이 크게 걸린다. 영화의 특성상 단순화와 선택의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해도, 한 사람의 운명이 좌우되는 그런 큰 사건에서 검사가 그렇게도 무능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특히 이 사건을 맡은 검사가 초보이기 때문에 미숙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검사의 동생이 자폐증이 있기 때문에 자폐 증상에 대해서 잘 알고, 그렇기 때문에 목격자인 지우와도 소통이 잘 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더더욱 그러하다. 또 현실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열려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더 나아가 지우의 어머니조차 지우의 그런 특성--아주 작은 소리도 정확하게 들어내고 정확하게 기억하는 능력--을 몰랐다는 것이 현실성이 있는가? 아니면 그런 특수한 능력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사건과는 연결짓지 못했는가? 작가나 감독의 의도가 자폐증에 대한 일반인(이 말 또한 적절한 것 같지는 않지만)의 무지와 일반인과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도 이 결정적인 부분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는 힘들 듯하다. 그 밖에도 죽은 노인은 왜 부탄 가스를 샀던 것일까? 또 살인 사건을 교사한 노인의 아들은 아버지를 죽였을 지도 모르는 가정부를 변호한 변호사를 자신의 회계법인의 전담변호사로 초빙한다는 것도, 그것을 또 순호가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이 영화는 앞서 말했듯 소수자이자 사회적 약자인 자폐 청소년이 처한 상황이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보인다(그런 점에서 본다면 피의자인 '가정부'도 사회적 약자이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다소 성급하게 자폐 청소년을 선으로, 그 반대편에 있는 인물들을 악으로 이분법적으로 단순화시키는 구도로까지 나아간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더 나아가 순호가 2심 법정에서 변호사의 윤리나 의무를 저버리고 자신의 의뢰인의 범죄 사실을 폭로하는 것 또한 지나친 영화적 설정이다. 아무리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피의자의 이익을 도모해야 할 변호사가 갑자기 검사로 돌변하여 법정에서 피의자의 범죄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사건이 한 방에 시원하게 해결되는 카타르시스는 있을지 모르고, 관객들은 순호와 동일시를 하면서 순간적으로나마 정의의 화신이 된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변호사도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피의자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은 아닌가?).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은 나쁘지 않았고, 눈물도 한두 방울 흘렸던 것 같은데, 지금 이 글은 전체적으로 부정적으로 흐른다.
그렇긴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다른 강점은 인간 개개인이 지닌 고유성(자폐증만 없다면 좋을 텐데, 라는 순호의 말에, 지우의 어머니가, 그럼, 지우가 아니잖아요, 라고 말한 부분)을 중요하게 부각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 상징계적 질서의 압박감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줄 수 있는 부분, 그 부분의 강조가 마음에 와닿았다고나 할까?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세계도 떠오른다. 그의 시 세계는 '순수'와 '경험'으로 상반된 현실을 상상력을 통해 '조직화된 순수'로 통합하는 것으로 요약하곤 하는데, 그 시도가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화에서도 그런 측면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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