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작 산문

윤홍균과 조훈태, 개인적 소감 (120207)

by 길철현 2016. 4. 25.

 

 

한 동안--한 2년 가까이--탁구계를 떠나 있어서 탁구계--프로는 물론 아마추어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깜깜했는데, 컴백을 하고 보니, 아마추어 탁구계는 이제 명실공히 윤홍균의 시대인

듯하다. 그런데, 윤홍균은 또 유독 (우리 탁신의 멤버인) 조훈태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 한다--최근 전적이 아마도 10승 1패 정도.

 

어제(2월 6일) 배상식 형과 "공릉 탁구 클럽"에 갔다가--이 탁구장처럼 잘 되는 탁구장은 본 적이 없다.

여섯 시가 좀 넘어서 갔는데, 레슨 다이를 포함 여덟 대의 탁구대가 꽉 차 있었고, 내가 나온 밤 11시까지--저녁도 못 먹고 계속 시합을 하게 되었는데--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렸다. 탁구대가 모자라서 그러는지 하수들은 대체로 복식을 치고 있었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일이십 명은 될 정도. 일반 손님들은 기

다리다 지쳐 탁구장을 떠났다--(공릉 탁구 클럽에 갔다가) 놀러온 윤홍균과 한 게임을 하게 되었고, 치킨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난 4점을 접히고도 0대 3으로 완패했다. 지난번 탁신 모임 때 훈태와도 4점을 접히고 똑같이 0대 3으로 

완패하고 말았다. 지난번 탁신 모임 때보다 그래도 실력이 조금이나마 올라왔다는 걸 생각할 때, 씁쓸한 결과였다. 아마추어 정상권과 나와의 실력차를 확인하게 해준 결과였고, 노구인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하더라도 올라갈 수 있는 한계--지금에 와서 탁구가 더 많이(일취월장하듯) 늘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지만--를 절감케 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것보다는 홍균이와 훈태의 탁구 스타일의 차이이다.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홍균이는 초등학교 3학년에서 5학년 까지 2년 정도 선수 생활을 했고--그 다음 중학교 시절 겨울에 잠시 합숙 훈련을 했는데, 이 때 꾸준히 선수 생활을 해온 다른 아이들을 이길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다고 한다--훈태는 정확히 언제부터 탁구를 쳤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장애인인 코치분으로부터 탁구장에서 레슨을 받으면서 탁구를 익힌 것으로 알고 있다. 홍균이가 아버지와 함께 시합을 돌아다닌 이야기 또한 탁구계에서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인데, 훈태는 언제부터 두각을 드러냈는지--예전에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은데, 오래 되어 까먹었나, 훈태야 한 번 더 이야기를 해줘. 아니면 컴퓨터 기억을 지니고 있는 용주가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던지--이것도 잘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은 아마추어 정상권에 와 있었다. (원래 이 이야기를 적으려는 것이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글이 이쪽으로--내가 잘 모르는 쪽으로--자꾸 흘러간다.)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으로--두 사람의 탁구 스타일의 차이--돌아가본다면, 홍균이가 힘을 바탕으로 한 사자나 호랑이 같은 스타일이라면, 훈태는 공을 더욱 자유롭게 다루는 능구렁이 같은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바꿔 말해보면 홍균이는 강하게 상대를 압도하여--커트 자체가 얼마나 깍이는지 예전에 백성찬과 시합할 때처럼 드라이브로 네트를 넘기기가 버거울 정도였다--질리게 한다면, 훈태는 상대에 맞춰 공을 살살 다루면서도 상대의 공격에 뚫리거나 하는 일 없이 상대를 무너지게 하는 그런 타입이이다. 한 마디로 홍균이는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는 성격이고 훈태는 뭔가를 감춰두는 그런 성격이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은 차원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여기에서 내 생각은 여러 갈래로 흩어지고 또 의문들이 떠오른다. 이건 물론 '벗어남'(문학 용어로는 digression)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에게 탁구란 무엇이고 또 나에게 탁구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아니 우리 탁신 멤버 모두에게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러고보니까 두 사람의

사회 생활에 대해서 쓰고 싶지만 공적인 공간에서 논하기는 뭣한 주제라 대상을 확대해 버린 회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탁신에도 현재 탁구가 업인 사람들이 두 명 있다. 준기와 안동의 탁구신 병규 씨.

(그리고 지금은 활동을 하지 않고 있지만 연우도 있구나.) 우리 삶에서 자신의 업을 열심히 잘 하는 것은 당연히 정말 중요한 일이다. 나머지 사람들에게 탁구는 취미이지만, 단순히 취미라고 말하기엔 모두의 이마에 탁구라는 낙인이 찍혀 있지 않는가? 삼십 때의 한 때 나 또한 탁구를 업으로 삼을까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적당히 막음을 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지하세계의 그림자가 올라오니까?)

 

재석이 형 말대로 이 두 사람은 나--혹은 다수의 우리--와는 피가 다른 성골들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탁신에는 이런 성골들이 몇 있다. 황재성과 김재욱, 그리고 아직은 잘 모르지만 송승훈--또 김태신이는 쳐보지 않아서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재석이 형과 응애는--우리의 많은 술자리에서의 이야기 중 하나는 '한계'에 대한 것이었는데--"현실성"을 이야기하고, 나는 "잠재성"에 대해 많이 말했는데, 어쩌면 보이는 것을 제대로 이야기하기에도 우리 삶은 짧은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잠재성"이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좀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상징체계--언어나 문화--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공고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야기가 결국에는 옆으로 새고 말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자작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기의 계절에 (140722)  (0) 2016.04.26
제주도에 세계 4대 폭포가 (140821)  (0) 2016.04.26
욕 한 사발 (2012)  (0) 2016.04.25
아리랑 단상 (091031)  (0) 2016.04.19
제임스 홈스 사건을 보고   (0) 2016.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