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생신을 맞아, 가족이 함께 경주 보문호, 동궁과 월지(이전 명칭 안압지), 양동마을, 안계저수지, 포항의 호미곶 등을 돌았다.
경주는 대구가 고향인 나에게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엔 수학 여행 장소로, 그리고 그 뒤로는 친구, 가족들과의 멀지 않은 나들이 장소로 친숙한 곳이지만, 몇 년 전 장률 감독의 [경주]라는 영화에 취한 다음부터는 경주는 마법적인 색채를 지닌 곳으로 바뀌었다. 경주를 배경으로 죽음과 사랑, 그리고 우리의 인식과 환상이라는 다소 큰 주제들을 우연한 여행자의 시각으로 아름다운 화면 속에 담아낸 장률 감독의 솜씨에 한 마디로 뻑이 가고 말았다. 노동리 고분군 주변을 중심으로 촬영된 이 영화에 대해서 장률은 자신이 예전에 경주를 처음 찾았을 때(장률은 현재 한국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중국 출신의 한민족(조선족)이다) "능들을 바로 곁에 두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어요"(대충 이렇게 이야기를 한 듯하다)라고 모티브를 설명하기도 했다. 장률의 영화가 홍상수의 영화와 결이 좀 다르진 하지만 홍상수의 영향이 배어나오는 것 또한 사실인데, [생활의 발견]에서 김상경이 능 위에 올라가 추상미 가족을 훔쳐 보는 장면과, [경주]에서 박해일, 신민아, 김태훈이 쌍릉?에 올라가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사실 [생활의 발견]에서의 그 장면은 오래 전에 본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큰 인상을 준 것도 아니어서 까맣게 있고 있다가 얼마전 홍상수의 영화들을 다시 보다가 이 두 영화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쨌거나 [경주]를 보고 얼마 뒤에 경주를 찾았던 나는 영화 속의 장면, 공간들을 찾아내고는 이미지로만 다가왔던 그 장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촬영이라는 것이 없는 것을 찍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논리적인 차원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묘한 느낌을 받았다. 좀 쉽게 비유를 하자면 영상 매체를 통해 우리는 직접 가보지 못한 온갖 장소를 눈으로 체험하지만, 그 장소들을 직접 방문했을 때의 느낌은 분명 다를 것이라는 것, [토탈 리콜] 등의 SF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과학기술이 좀 더 발달해 우리의 감각 체험을 온전히(아니 그럴 듯하게) 정보로 전환해 심어준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질까?
(그런데 이번에 경주에 내려가보니 영화의 또 다른 중심 장소인 [아리솔]이라는 찻집은 없어지고 새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이 찻집은 혼자 들어가기가 뻘줌해서 못 들어가고 밖에서만 보다가, 그 다음 용기를 내어서 찾았을 때에는 문이 닫혀 있더니만 결국에는 사라지고 말았다. 여담이지만 장률 감독의 다른 영화인 [춘몽]은 내가 탁구 수업을 하던 상암고 근처 수색 쪽이 주된 배경이었는데, 영화에 나오는 중심 장소들도 재개발이 되어 기억에만 남아 있게 되고 말았다.)
나무들이 열 그루도 넘게 자라고 있는 이 능은 경주 고분 중 단일 고분으로는 가장 큰 봉황대이다. 무슨 연유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직 발굴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 [경주]에서 봉분 두 개가 붙어 있는 이 특이한 고분을 신민아와 김태훈이 한 쪽에, 다른 한 쪽에는 박해일이 오른다. 이 구도는 오이디푸스의 전형이다.
동궁과 월지는 이번에 처음 가보는데, 언제 복원되었는지는 몰라도 큰 여동생이 야경이 좋다고 해서 저녁을 먹고 나섰다. 중간에 비가 내리기도 했으나 관람에는 큰 무리가 없었고, 공들여 복원(혹은 재현)한 월지 둘레를 한 바퀴 돌면서 미와 사치는 함께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
진작부터 한 번 가보고 싶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아서 찾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야 방문하게 된 곳. 좁은 도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자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초가와 기와집들이 흡사 과거로 여행을 온 듯 사극의 한 장면을 선사하고 있었다.
보행이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원래는 입장이 금지된 차를 몰고 마을 중앙에 나 있는 소로를 따라 가다가 내비에 작은 저수지가 보이길래 계속 따라갔더니 점점 확대되더니만, 그 크기를 쉽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물이 맑고, 또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묘한 신비감을 주는 이 안계 저수지는 요즈음 저수지 순례에 빠져 있는 나로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빼어난 그런 곳이었다. 몇 달 전 우연히 발견한 지평 저수지와 함께 기억에 남는 그런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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