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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경주, 양동마을과 뜻밖의 안계저수지 1(190621-22)

by 길철현 2019. 6. 27.

어머니 생신을 맞아, 가족이 함께 경주 보문호, 동궁과 월지(이전 명칭 안압지), 양동마을, 안계저수지, 포항의 호미곶 등을 돌았다. 


경주는 대구가 고향인 나에게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엔 수학 여행 장소로, 그리고 그 뒤로는 친구, 가족들과의 멀지 않은 나들이 장소로 친숙한 곳이지만, 몇 년 전 장률 감독의 [경주]라는 영화에 취한 다음부터는 경주는 마법적인 색채를 지닌 곳으로 바뀌었다. 경주를 배경으로 죽음과 사랑, 그리고 우리의 인식과 환상이라는 다소 큰 주제들을 우연한 여행자의 시각으로 아름다운 화면 속에 담아낸 장률 감독의 솜씨에 한 마디로 뻑이 가고 말았다. 노동리 고분군 주변을 중심으로 촬영된 이 영화에 대해서 장률은 자신이 예전에 경주를 처음 찾았을 때(장률은 현재 한국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중국 출신의 한민족(조선족)이다) "능들을 바로 곁에 두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어요"(대충 이렇게 이야기를 한 듯하다)라고 모티브를 설명하기도 했다. 장률의 영화가 홍상수의 영화와 결이 좀 다르진 하지만 홍상수의 영향이 배어나오는 것 또한 사실인데, [생활의 발견]에서 김상경이 능 위에 올라가 추상미 가족을 훔쳐 보는 장면과, [경주]에서 박해일, 신민아, 김태훈이 쌍릉?에 올라가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사실 [생활의 발견]에서의 그 장면은 오래 전에 본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큰 인상을 준 것도 아니어서 까맣게 있고 있다가 얼마전 홍상수의 영화들을 다시 보다가 이 두 영화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쨌거나 [경주]를 보고 얼마 뒤에 경주를 찾았던 나는 영화 속의 장면, 공간들을 찾아내고는 이미지로만 다가왔던 그 장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촬영이라는 것이 없는 것을 찍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논리적인 차원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묘한 느낌을 받았다. 좀 쉽게 비유를 하자면 영상 매체를 통해 우리는 직접 가보지 못한 온갖 장소를 눈으로 체험하지만, 그 장소들을 직접 방문했을 때의 느낌은 분명 다를 것이라는 것, [토탈 리콜] 등의 SF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과학기술이 좀 더 발달해 우리의 감각 체험을 온전히(아니 그럴 듯하게) 정보로 전환해 심어준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질까?


(그런데 이번에 경주에 내려가보니 영화의 또 다른 중심 장소인 [아리솔]이라는 찻집은 없어지고 새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이 찻집은 혼자 들어가기가 뻘줌해서 못 들어가고 밖에서만 보다가, 그 다음 용기를 내어서 찾았을 때에는 문이 닫혀 있더니만 결국에는 사라지고 말았다. 여담이지만 장률 감독의 다른 영화인 [춘몽]은 내가 탁구 수업을 하던 상암고 근처 수색 쪽이 주된 배경이었는데, 영화에 나오는 중심 장소들도 재개발이 되어 기억에만 남아 있게 되고 말았다.)



나무들이 열 그루도 넘게 자라고 있는 이 능은 경주 고분 중 단일 고분으로는 가장 큰 봉황대이다. 무슨 연유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직 발굴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 [경주]에서 봉분 두 개가 붙어 있는 이 특이한 고분을 신민아와 김태훈이 한 쪽에, 다른 한 쪽에는 박해일이 오른다. 이 구도는 오이디푸스의 전형이다.




동궁과 월지는 이번에 처음 가보는데, 언제 복원되었는지는 몰라도 큰 여동생이 야경이 좋다고 해서 저녁을 먹고 나섰다. 중간에 비가 내리기도 했으나 관람에는 큰 무리가 없었고, 공들여 복원(혹은 재현)한 월지 둘레를 한 바퀴 돌면서 미와 사치는 함께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











진작부터 한 번 가보고 싶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아서 찾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야 방문하게 된 곳. 좁은 도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자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초가와 기와집들이 흡사 과거로 여행을 온 듯 사극의 한 장면을 선사하고 있었다.




 






보행이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원래는 입장이 금지된 차를 몰고 마을 중앙에 나 있는 소로를 따라 가다가 내비에 작은 저수지가 보이길래 계속 따라갔더니 점점 확대되더니만, 그 크기를 쉽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물이 맑고, 또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묘한 신비감을 주는 이 안계 저수지는 요즈음 저수지 순례에 빠져 있는 나로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빼어난 그런 곳이었다. 몇 달 전 우연히 발견한 지평 저수지와 함께 기억에 남는 그런 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