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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들·용어

칸트 - 초월적 관념론, 경험적 실재론

by 길철현 2019. 7. 6.

초월적 관념론은 모든 현상을 단순한 표상으로 간주하지 물자체로 간주하지 않으며, 따라서 시간과 공간을 오직 우리의 직관의 감성적 형식으로 간주하지 그 자체로 주어지는 규정 또는 물자체로서의 객체의 조건으로 간주하지 않는 교설이다. [순수이성비판] A369


이러한 초월적 관념론은 경험적 차원에서는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세계의 실재성을 부정하지 않는 실재론, 즉 '경험적 실재론'이다. 대상세계는 우리가 경험하는 대로 바로 그런 것으로서 실재하는 경험적 의미의 물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초월적 의미의 현상이지, 경험적 차원에서 단지 내게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의미의 가상(경험적 의미의 현상)은 아닌 것이다.


경험된 대상세계를 가상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초월적 실재론'이다. 초월적 실재론은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 너머에 물자체를 따로 설정해놓고, 우리가 경험적으로 아는 것은 단지 그것의 현상인 가상일 뿐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므로 초월적 실재론은 결국 '경험적 관념론'이 되며, 이것이 곧 회의론이 된다.


초월적 실재론은 시간과 공간을 (우리의 감성과 독립적으로) 그 자체로 주어지는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초월적 실재론자는 외적 현상을 우리와 그리고 우리의 감관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따라서 순수 오성개념에 따라서도 우리 바깥에 실재하는 그런 물자체로 표상한다. 이 초월적 실재론자가 본래 그 다음 경험적 관념론자의 역할을 하는 자이다. 그들은 감관의 대상에 대해서 그것이 외적인 것인 한 감관 없이도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고 그릇되게 전제한 후, 이 점에서 우리 감관의 모든 표상은 그 대상의 실재성을 확신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순수이성비판 A369]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세계 배후에 우리와 무관한 객관적 물자체를 설정해두고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단지 그것의 가상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초월적 실재론이고 경험적 관념론이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적극적으로 비판하면서 극복하고자 한 데카르트와 흄의 회의론적 관점이다. 그러므로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을 오히려 초월적 의미의 물자체를 인정하는 초월적 실재론으로 읽는 것이 되고 만다.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은 경험된 객관세계의 실재성을 경험적 차원에서 확보하기에 경험적 실재론이다. 그러므로 소위 주관과 객관, 안과 밖, 정신과 물질의 이원성을 시간 공간의 형식에 따라 주어지는 현상에서의 이원성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초월적 관념론은 경험적 실재론으로서의 이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이원성은 초월적 차원의 현상 속에 포섭되는 이원성이다.



초월적 관념론자는 경험적 실재론자이며, 따라서 소위 이원론자이다. 그는 단순한 자기의식 바깥으로 나아가지 않은 채, 그리고 내 안의 표상의 확실성,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을 전제하지 않은 채, 물질의 존재를 인정한다. 왜냐하면 그는 물질 나아가 물질의 내적 가능성조차도 오직 우리의 감성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아닌 현상으로 간주하기에, 그에게 물질은 외적이라고 불리는 표상(직관)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표상이 외적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그것이 그 자체로 외적인 대상[외적 물자체]과 연관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지각[감각내용]을 공간과 연관짓기 때문인데, 그 공간 자체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순수이성비판 A370]


이와 같이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은 우리가 경험하는 객관세계를 인간의 주관적 형식에 따라 직관되는 현상으로만 인정한다. 소위 심리적 대상과 물리적 대상의 구분은 현상 내에서의 구분이다. 즉 시간 형식에 따라 직관되는 내적 현상과 시간 공간 형식에 따라 직관되는 외적 현상의 구분인 것이다. 이러한 초월적 관념론은 현상 너머에 인간의 인식주관과 독립적으로 그 자체로 존재하는 물자체를 또 다시 상정하면서 그로 인한 인식불가능성에 기반해서 회의론에 빠지고 마는 초월적 실재론이나 경험적 관념론과 구분된다.


한자경. [칸트 철학에의 초대]. 63-66


[이 부분을 보면 칸트는 관념론과 유물론(실재론), 합리론과 경험론 등의 당대의 철학적 난제들을 해소하려 애썼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단순화하자면 우리의 인식 형식이 특정한 방식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에 현상을 그렇게 본다는 것, 그렇다면 그 인식 형식 내에서 현상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말 정도가 될 텐데,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인식 불가능성로서의 물자체라는 것은 초월적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일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서 물자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를 잘 파악하는 것이 그가 어떻게 데카르트나, 특히 흄의 회의론을 극복했는지를 이해하는 첩경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