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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기생춘 - 봉준호(190612 - 미아 CGV/ 0616 - 상봉 메가)

by 길철현 2019. 9. 2.


한국 영화 최초로 칸느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영화를 나는 무척이나 흥미롭게 보았다. 첫 번째 볼 때보다 두 번째 볼 때 더 많은 생각을 하게끔 했다.


친구 중 한 명이 '설정 자체는 좋았는데, 마무리는 메시지 전달과 메타포를 급하게 구겨넣은 느낌'이라는 비판이 있어서 나는 이 비판을 염두에 두면서 영화를 봤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평을 쓰는 것은 쉽지가 않아서 상당 기간 접어 두고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일단은 흥행 감독이었다.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를 제외한다면, 가장 관객이 적게 든 [마더]의 경우에도 3백만에 육박했으니까. [살인의 추억] 이후로 흥행에 성공하는 감독이어서 작품성까지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지만, 묘한 마력이 있다는 생각은 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부의 편중화, 사회의 양극화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문제점 중의 하나를 블랙코미디의 형식으로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이전의 작품인 [설국열차]에서도 흥미롭게 다루었다. 빙하기를 맞은 지구(우리는 현재 지구 온난화를 계속 걱정하고 있다. 나는 온난화와 빙하기가 만나 어느 정도 중화되는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기도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를 소재로 끊임없이 달릴 수밖에 없는 기차에 탑승한 소수의 생존자들이라는 이색적인 소재, 즉 미래 디스토피아 사회를 은유적으로 제시한 이 영화의 화두도 사회의 양극화 불평등의 문제였다. 물론 그 영화에서는 그 문제보다도 얼어붙은 지구라는 장면이 제시하는 신비감이랄까, 꼬리칸과 머리칸 인물들 사이의 액션, 이 기차의 작동자와 꼬리칸 지도자 사이에 존재하는 모종의 협력 관계 등이 우리의 이목을 더욱 끌었지만. 넷플릭스로 개봉을 해서 보지 못한 [옥자]는 [괴물]과 [플란다스의 개]의 소재가 섞인 것이라는 이동진의 평이 있는데, 조만간에 찾아 보도록 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플란다스 개]에서도 부의 편중의 문제나 사회적 성공과 윤리적인 삶 사이의 갈등 등을 제시하고 있어서,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오래된 화두를 영화로 풀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몇 가지 흥미로운 생각들이 있다. 일단 이 영화의 설정이 작위적이라고 느끼는 비판적인 관객들의 평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그런 설정들을 사실적인 재현이라고 보기보다는 하나의 은유적인 장치로 보면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개연성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반어적인 의미가 짙은 제목은 어디가에서 읽은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내용에 따르자면 "계층 간의 갈등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객관적 내지는 중립적으로 그리려 했지만, 영화를 찍어 나가면서 송강호 가족의 입장쪽으로 추가 기운 듯하다"(봉준호 감독이 정확히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아니고, 내 기억이 확실하지도 않다. 내가 받은 인상이 그랬다는 것인데, 게으름 때문에 일단은 그냥 적어 둔다 - 그래도 찝찝해서 인터뷰를 찾아보려고 하니 어딘지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둔다). 그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빈부 격차의 차이가 지식이나 능력의 차이와 별로 비례하는 듯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자에 대한 고정관념, 혹은 빈자에 대한 고정관념 등을 깨버리고 그냥 다같은 좀 더 현실적인 '회색인'으로 그려내려 했다는 점이다.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이야기했다가, 그 다음에는 '무계획이 최선책'이라고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며 무슨 역을 해도 웃음이 어디선가 스며나오는 송강호며, 나름대로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짧은 영어 실력을 뽐내는 조여정의 헛점 가득한 부잣집 마나님 연기 등이 특히 돋보이는 가운데, 그 밖의 주*조연들도 자신의 캐릭터를 적절하게 구현해 낸 것 또한 이 영화의 커다란 미덕이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영어에 물들어 있는지를 - 바꿔 말해 얼마나 미국 문화에 물들어 있는지를 - 빈번히 반복되는  영어 단어나 문장 등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 압권은 지하 방공호에 숨어 살던 전임 가정부의 남편이 죽는 순간에도 'Respect'라는 영어를 쓰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기택네 가족과 문광 부부 사이의 살벌한 싸움은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가 들어 있는 부분이다. 부자들이 차지한 부를 제외한 얼마 되지 않는 파이를 두고, 혹은 부자들이 베푸는? 파이를 두고 하층 계급끼리 피 터지게 싸워야 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백인이 중심인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을 받는 아시아 계와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이 피 터지게 싸우는 형국과 비슷한 느낌. 하지만 송강호의  칼 끝이 마지막에는 결국 이선균을 향하게 되고 마는 것은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 구조의 모순의 불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jtbc의 손석희 사장과의 인터뷰에서 봉준호는 이 영화에서 냄새가 갖는 의미를 잘 부연 설명해 주었다. 다른 계층 사람들끼리는 동선이 서로 잘 겹치지 않기 때문에 - 이선균 사장 가족은 지하철을 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하철을 탄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와 송강호 가족의 냄새가 비슷하다고 했던가? - 서로가 냄새를 맡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서로 다른 계층이 가까운 거리에서 지내게 되자 그 이질성은 냄새로 상징화되어 드러난다. 특히 송강호 가족이 반지하라는 공간에서 지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가 있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이 이 영화에 대한 찬사에 바쳐진 듯하다. 공간이 한정이 되어 있어서 다소 답답한 느낌을 줄 수도 있고, 사건이나 이미지가 지닌 상징성 - 이를 테면 산수경석 같은 것 - 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이 영화는 봉테일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디테일이 살아 있는 재미 있으면서도 강한 사회성을 지닌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