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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조철현 - 나랏말싸미(190725? 마곡 메가박스)

by 길철현 2019. 9. 2.


이 영화는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면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한글 창제에 대해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협심해서, 아니 그보다는 국왕은 지시를 하는 입장이고, 학자들이 실질적인 작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신미 스님이 한글 창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설을 담고 있다는 이 영화는 내 흥미를 동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신미 스님과 관련된 자료들을 인터넷에서 몇 개 찾아 보고 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느라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조사를 해보니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박해진이 [훈민정음의 길 - 혜각존자 신미 평전]이라는 책을 2015년에 출간 했고, 그 전해에는 성철 스님의 삶을 소설화 한 [산은 산 물은 물]로 유명한 정찬주가 [천강에 비친 달: 세종과 신미 대사의 한글 창제 비밀 이야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한글과 산스크리트어(범어)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설도 있는데, 국문학자인 정광 교수는 한글이 원나라의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신미 스님은 한글의 모음 부분에 기여했다는 주장을 [동아시아 여러 문자와 한글](2019)에서 주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설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불교계에서는 한글 창제에 있어서 신미 스님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꾸준히 전해져 온 모양인데, 아마도 불교도(?)인 조철현 감독은 이 설을 중심으로 영화를 풀어나갔다. 영화 앞부분에 감독은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이며,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라는 말을 넣었지만(상영관 입구를 찾느라 허둥대는 바람에 나는 이 말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예상 밖으로 이 영화에 대한 역사 왜곡 논란은 거셌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등은 우리의 관념에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역린 같은 것인가?


일단 역사 왜곡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영화 자체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늙은 세종의 애민 사상을 부각시키면서도 스님이면서도 언어학에 일각연이 있을 뿐만 아니라, 왕 앞에서도 자신의 당당함을 잃지 않는 신미 스님에 상당히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 (늙은 세종을 연기한 송강호가 여러 면에서 인간적이라면-송강호 특유의 코믹함도 간간히 묻어나면서, 매력적인 배우라고 생각한 박해일이 연기한 신미 스님은 다소 단조롭다-그것은 불교적 진리의 절대성이 강조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두 사람을 이어주고, 두 사람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그것의 해소에 앞장 선 소헌 왕후도 중요한 인물이다. (시간이 상당히 지나서 세부적인 내용 전개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사 논란 외에 이 작품이 안고 있는 약점 중의 하나는 극적인 갈등이 점차적으로 고조되고 그것이 카타르시스를 동반하는 시원한 해소가 아니라, 예측이 어렵지 않은 수준에서 전개된다는 점이다. 반면에 한글 창제 과정을 면밀하게 재구성해 본 것은 장점이지만 이 장점이 영화적 흥미라는 측면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이와 함께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촬영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화면의 아름다움과 균형감, 이런 것만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기는 어렵다.


감독이 우리과 선배이자 이름이 같다는 점에서도 나의 흥미를 불러 일으켰던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의 진위 여부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한다면(이미 그런 소설과 평전까지 나와 있었음에도 논란이 크지 않았던 것에 비해 영화는 나오자 말자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을 보면 영화가 미치는 파급 효과를 쉽게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나름대로 공들여 만든 영화이고 볼 만한 영화이긴 하다. 하지만 역사 왜곡 논란과 대중적인 흥행 요소의 부족으로 관객 동원에서는 아쉽게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