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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롤랑 조페 - 킬링 필드 (Roland Joffé - The Killing Fields). 1984 [190705]

by 길철현 2019. 7. 5.


롤랑 조페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킬링 필드], [미션], [시티 오브 조이]를 최근에 모두 다시 보게 되었다. 처음에 이 작품들을 볼 때는 감독이 누구인지를 살필 여유는 없었고, 그래서 이 영화들이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도 모른 채 보았던 듯하다. [미션]은 서구와 버서구의 만남이 어떻게 파국에 이르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어서 몇 달 전에 다시 보았는데,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이 영화의 배경이 세계 최대의 폭포이자 나의 버켓 리스트 일 순위인 이구아수 폭포라는 걸 처음 볼 때는 몰랐다는 사실이다(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를 볼 때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구아수 폭포가 다른 무엇보다도 앞도적으로 다가왔는데). 


며칠 전 [시티 오브 조이]를 보고 탄력을 받아서 [킬링 필드]까지 다시 보았다. [시티 오브 조이]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이옥순이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에서 이 영화의 백인 우월주의를 지적하면서 인도가 '서양의 열등한 대상이자 우리의 타자'(24)로 제시된다고 했기 때문에, 그녀의 말대로 인종주의 더 나아가서는 제국주의적 시각이 이 영화에 얼마나 짙게 배어 있는가를 살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옥순의 시각에 일차적으로는 동의하고, 가족애를 비롯한 클리셰 등이 이 영화를 뛰어난 작품으로 평하기에는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가 이런 빈곤의 상황에서 오히려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절망-- 그 대표적인 예는 읽지는 않았지만 워낙 수업을 많이 해서 꼭 읽은 것만 같은 업톤 싱클레어의 [정글]이 될 것인데--이 아니라 인력거꾼인 하사리를 통해 인간의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에서 의사로 등장하는 맥스는 차라리 빼버리고 하사리 가족을 중심으로 다루었다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롤랑 조페의 이 세 작품에는 모두 백인 중심주의 혹은 인종주의적인 측면이 다소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렇긴 하지만 백인들, 혹은 서구인들이 그러한 시각에서 근본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조페가 나름대로는 서구인과 비서구인의 만남, 화해를 모색하는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킬링 필드]는 조페가 텔레비전 감독에서 일반 영화 감독으로 전향한 후 처음으로 만든 영화 데뷔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반공 영화로 더욱 잘 알려진 영화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 영화의 관람등급이 지금은 [청소년 관람불가]로 되어 있는데도,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1985년 당시 전두환 정권은 이 영화가 공산주의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좋은 홍보물이라고 생각했는지 중고등 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단체관람을 시키기도 했다(이 영화가 국내에서 80년대 최대 히트작이 된 것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정확히 언제 이 영화를 보았는지는 기억에 나지 않지만 반공주의 영화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공산주의자들을 지나치게 악의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이 강했던 듯하다.


이 영화는 동남아에 있어서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동남아의 상황이 정확히 이념의 문제였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의 대결--그 중심에는 베트남 전이 있다--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가운데, 베트남의 인접국인 캄보디아 역시 그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고, 무기력하게 죽어갔는가를 미국 기자인 시드니 샌버그와 캄보디아 기자인 디스 프란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극화한 것이다. 베트남 전에 대해서는 영화도 많이 나와 있고--대표적인 미국 영화로는 [디어 헌터],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 등([람보] 시리즈는?)을 들 수 있을 것이다--우리 나라 역시도 참전국이어서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이상문의 [황색인], 안정효의 [하얀 전쟁] 등의 소설들이 그 전쟁의 면모 혹은 진상을 어느 정도는 알려주고 있다([하얀 전쟁]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 영화가 개인이 겪은 실제 체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후반부에서는 크메르 루즈 정권의 잔혹상만 부각되고 있어서 캄보디아가 왜 그런 상황에 처하고 말았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좀 공부가 필요하다. 나 역시도 캄보디아하면 앙코르와트와 폴포트 정권의 대학살정도만 떠올라 이번에 조사한 것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 유적을 남긴 크메르 제국(9-15세기) 때 전성기를 구가했고, 이후에는 그 세력이 약화되었다가, 19세기 후반에는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1953년에 독립을 했는데, 베트남 전의 파장이 캄보디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어, 북 베트남과 미국의 지원을 각각 등에 업고 크메르 루즈와 크메르 공화국이 내전을 벌이다가 1975년에 크메르 루즈가 프롬펜을 점령하면서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설명을 시드니가 간략하게 하고 있다. 그가 캄보디아에 도착한 1973년은 크메르 공화국과 크메르 루즈 사이의 내전이 크메르 루즈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던 시점으로 보인다.) 정권을 잡은 크메르 루즈는 국명을 민주 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로 정하고 농업 중심의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였다. 하지만 폴 포트를 수반으로 한 이 정권은 대학살로 악명이 높다. (영화의 제목이 된 [킬링 필드](The Killing Fieds)라는 말은 이 시기에 학살되거나 병 등으로 죽은 사람들이 묻힌 장소들을 가리키는 말로 디스 프란이 만든 말이다.) 78년 이러한 대학살--이 중에는 베트남 계나 중국 계 등 이민족의 학살도 있었다--과 국경 분쟁으로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캄푸치아 인민 공화국을 수립하여, 이전 정권과 내전 상태에 돌입한다. 이 긴 내전은 1980년대 말 평화 협정이 시작되면서 국내 정국이 안정을 찾게 되었고, 1993년에는 다시 왕위를 인정하고 정식 명칭을 캄보디아 왕국으로 정했다. 실권자는 1985년부터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훈센이다.


이 영화가 이 시기의 역사를 제대로 담아 내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뭐라고 하기 어려우나, 두 개인의 체험, 특히 후반부에서 디스 프란이 집단 농장에서의 생활은 국민을 보호해야 마땅한 정치 권력이라는 것이 때로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국민 더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를 말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수, 의사, 심지어 안경을 꼈다는 이유로, 손에 굳은 살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처형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기가 힘들 정도이다.


인간이 악마가 아니라면, 아니 악마에게도 자신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양보하더라도,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무기력하게 희생되고 마는 사람들을 보며서 내가 저 사람의 입장이라면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생각을 최근들어 자주한다. 인간의 역사는 그런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아무리 자신의 사정이 있더라도 내가 악마는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홍상수의 [생활의 발견]에서는 '인간이 되긴 어려워도 적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말이 반복되고 있구나). 21세기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그러한 극한에서는 좀 벗어나 있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까?


문득 영화 [남한산성]의 도입부가 생각이 난다(원작인 김훈의 동명소설에도 이 장면은 비슷하게 전개된다. 다만 영화에서는 김상헌이 늙은 뱃사공에게 존대를 하지만, 소설에서는 당시의 관습에 따라 하대를 하고 있다). 1637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청의 침략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향하고, 예조판서인 김상헌은 하루 늦게 늙은 뱃사공의 도움을 받아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는 장면이다. 이 늙은 뱃사공은 "왜 어가를 따라가지 않았느냐"는 김상헌의 질문에 어리석게도 "청나라 군사들이 들어오면 (얼음)길을 안내해주고 곡식이라도 좀 얻어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여 자신의 죽음을 자초한다. 하지만 그의 이 대답에는 아무리 경황이 없더라도 임금을 위해 밤에 얼음길을 안내해 준 수고를 마다않은 자신에게 "좁쌀 한 줌"도 보답하지 않은 임금과 그 행렬에 대한 원망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김상헌은 "그대는 조선의 백성이오? 어찌하여 어제는 임금을 건네주고, 내일은 청의 군사를 건네준단 말이오?"라고 그를 비판하며 먼저 자신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갈 것을 종용해보다가 그가 거부하자, 칼로서 그를 즉결처분하고 만다. 전시라는 상황을 생각할 때 노인의 행위는 조정의 입장에서는 반역에 해당하는 중죄이겠으나, 실제로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처형되고 마는 노인의 처지 또한 딱하다.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은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는 육이오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을 받아야 했던 한 인물이 나오는데,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 가며 점령을 하던 지역에 살던 그에게 닥쳐온 시련은, 밤중에 군인이 불쑥 나타나 전지를 쏘면서 '어느 편이냐?'라고 묻는데, 국국인지 인민군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지 너머의 그 대상에게 자칫 잘못 대답을 했다가는 그대로 죽을 수 있다는 상황이 주는 공포감은 실제로 체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짐작하기도 힘든 그런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특히 고통과 피로 얼룩져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세계사를 들여다보면 그러한 시련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운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영화에서 디스 프란 역을 맡은 행 S. 응고르는 직업배우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원래 캄보디아에서 산부인과 의사였던 그 역시도 디스 프란처럼 크메르 루즈 정권 치하의 집단 농장에서 신분을 숨기고 살았으며, 또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수가 없어서 아내가 분만 중에 제왕절개 수술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 영화를 통해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를 알리고 아카데미 조연상까지 수상했지만, 55세의 나이에 이번에는 노상 강도들의 총에 죽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