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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호수행

지천지 [경북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 (201212)

by 길철현 2020. 12. 17.

제방이 끝난 곳에서 오르막을 오르며

이날은 원래 창원 팔룡산(팔용산)에 있는 [봉암 수원지]를 찾을 계획이었으나 점심을 먹고 나니 시간도 많이 되었고, 또 저녁 시간에는 탁구를 칠 멤버를 구할 수도 없고 해서, 가볍게 대구 근교의 [지천지]를 찾기로 했다. 2,3년 전부터 내 나들이의 주된 관심지가 된 호수(저수지)는 전국 어디를 가도 지천으로 산재해 있고, 또 지방 자치 단체들이 지역 가꾸기의 첫 번째 목표를 호수 꾸미기에 두기라도 한 양 둘레 데크길, 출렁다리 등으로 눈과 발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호수 둘레를 돌면서 사진을 찍고 잡상을 이어나가는 것은 외로운 대로 즐거운 취미가 되었다(요즈음 같은 코로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전국의(기회가 닿는다면 해외까지도) 호수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찾으려 하는데, 이 지천지는 사소하지만 약간의 사연이 있어서 더 끌리는 그런 곳이다.

 

노환이 있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작년에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온 뒤로 나는 일 주일에 한 번 있는 강의를 위해 KTX를 이용하곤 했다(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대면 수업을 몇 번 하진 못했지만). 서울행 상행 열차는 대구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에서 철도 바로 옆에 위치한 꽤 큰 저수지를 지났고, 그 저수지는 야산을 하나 지난 다음에도 보일 정도였다. 내비를 이용해서 정확한 위치와 지명을 알 수도 있었겠지만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면서 막연한 대로 내 마음에 새겨지는 느낌이 좋아 굳이 확인하지는 않고 두었다. 대신에 언젠가 한 번 그곳을 직접 찾아가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실행에 옮긴 것은 꽤 시간이 지나서였다. 

 

한 달 전 쯤(정확히는 11월 15일) 휴일을 맞아 나들이에 나선 나는 이 저수지를 목적지로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억이 오작동을 일으켜 나는 이 저수지를 김천 부근에서 보았다고 생각했고, 지도상으로 볼 때 철로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봉 저수지](김천시 남면 오봉리)가 내가 본 저수지가 맞을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오봉 저수지] 인근에는 한 번 찾아가고 싶었던 [대성 저수지](김천시 아포읍 대성리)가 있어서 내친걸음에 거기도 들르면 좋을 듯했다. 이 저수지로 가는 길에 있는 [두만지](칠곡군 약목면 남계리)를 먼저 찾았다. [남계지](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위쪽에 위치한 이 자그마한 저수지는 그보다 두어 달 쯤(9월 12일) 우연찮게 발견한 곳인데, 저수지 바로 위편의 교회와, 또 그 뒤의 산봉우리들과 조화를 이루어 마음에 안온함을 주는 곳이라 다시 들렀다.

 

 

(부슬비가 내리는 두만지, 200912)

그런데, 두만지 옆 [신유 장군 유적지]에서 칠곡군 관광 안내도를 들여다보다 지천지가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내 기억회로의 오류를 깨달았다. 대구를 벗어난지 얼마 안 되는 곳인 데다 철로 바로 옆의 위치로 보아 KTX를 타고 지나면서 본 저수지가 분명했다. 기억의 오류를 깨달았으니 지천지로 향하면 될 터였으나, 지천지가 있는 곳은 이미 지나온 터이라 대구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그렇다고 오봉 저수지에 들렀다가 지천지로 향하기에는 늦가을 짧은 해는 물론이거니와 또 저녁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을 생각할 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 날은 오봉 저수지와 대성 저수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이 날의 여정을 시간이 날 때 좀 더 자세히 적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날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틀 뒤(11월 17일) 어머니와 외식도 하고 가볍게 드라이브도 할 겸해서 지천지로 향했다. 상인동 집에서 지천지까지는 40여분 정도 걸렸다. 정면에서 바라본 저수지는 기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면서 보았을 때의 다소 색다른 느낌은 없어지고, 중간 정도 규모의 시골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다가왔다. 저수지 왼쪽 편, 그러니까 KTX 철로가 지나는 곳은 나지막하지만 산이 있다는 점이 하나의 포인트였으나, 한 쪽에 야산을 끼고 있는 저수지들도 많아서 독특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날은 미세먼지도 좀 심했고,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아서 휴대폰으로 저수지 전경을 몇 장 찍었는데 예상대로 사진이 좀 탁하다. (그래도 블로그에 올려볼 까 했는데 용량 초과로 올릴 수가 없다. '사진 용량 줄이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가능하다고 하는데 내 능력으로는 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지천지 전경, 201212. 아래 사진들은 모두 이날 찍은 것임

 

다음 일정 때문에 이 날은 지천지에서 머무른 시간은 십 분이 채 안 되었다. 사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저수지 자체보다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은 저수지임에도 수상스키를 비롯하여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적한 이곳이 여름엔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할 지 자못 궁금했다. 

 

 

[지천]이라는 지명은 사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게는 생소한 곳이었으나, 대구 주변을 나들이 하는 가운데 [지천역]을 지나면서 내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지천이라는 이름은 우선 1) '원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하천'(支川)이라는 단어와 2) '아주 많음'(至賤)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여행을 하다보면 지명들이 중첩되는 곳이나 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명사와 발음이 같은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그래서 '지명들만 잘 연결해도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지천이라는 지명은 후자의 전형적인 예인데, 흥미롭게도 한자 표기마저 1)과 유사하다(枝川). 나의 호기심은 다소 독특한 이 지명의 유래로까지 뻗쳤다. 그런데,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지역을 흐르는 천 이름에서 유래한 것은 아닌가 했으나 지천지를 지나 지천면 옆을 흐르는 개천의 이름은 [이언천]이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칠곡군청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찾아보았더니 [상지면]과 이언천에서 한 자씩 따온 것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니까, [지천지]라는 명칭도 대부분의 저수지가 그러하듯 그 지역명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지천지라는 이름은 "오십 살이 되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의미인 '지천명'과 오버랩되어, "하늘과 땅을 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다면 "세상 만사를 안다"는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지천지를 한 바퀴 돌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면. 

 

저수지에 도착하고 보니 시간은 벌써 세 시가 넘었다. 규모로 보아 한 바퀴를 도는데 한 시간 남짓 걸릴 듯했다. 날씨는 다소 쌀쌀했으나 대신에 대기가 맑아 사진이 잘 나올 듯했다. 안내판을 보니 저수지는 나보다 한 살이 많은 1965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만수면적은 31.2ha(헥타르)이다. 저수지의 크기를 눈으로 갸늠하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럴 경우에 나는 이 만수면적을 기준 삼아 판단을 한다(이번 기회에 확인한 것이지만 참고로 다목적 댐이 아닌 일반 저수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예당 저수지]은 만수면적이 1,089ha(10.9㎢)이고, 경기도에서 가장 넓은 [이동 저수지]는 327ha며, 경주의 아름다운 호수인 [보문호]는 135ha이다. 수치상으로도 지천지가 중간 정도 크기란 것을 알 수 있다). 

 

비니를 쓰고 먼저 제방쪽으로 향했다. 가문 날씨에도 저수지의 물은 바람이 일자 둑이 넘칠 정도로 가득 차 있었고, 햇살은 저수지 전체를 가로지르며 빛나고 있었다.

 

 

제방이 끝나는 곳에는 나지막한 산세와는 달리 멋진 바위 절벽이 있어서 시선을 끈다. 

 

 

칠곡군에서는 이 지천지를 [낙화담]이라고도 명명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침공을 피해 부녀자들이 몸을 던져 자결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안내판은 설명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이 절벽 위 어디에선가 몸을 던졌으리라. 물론 그 당시에는 절벽 아래에 저수지가 있지는 않았고, 이언천이 절벽 아래로 흘러내려갔는지도 알 수는 없다. 인간이란 대체로 당대의 이데올로기 가운데에서 살아가기 마련이지만, 여성의 정조가 목숨과 맞먹던(그것 또한 사대부 집안에 한정된 그런 것이겠지만) 조선 시대의 이야기를 21세기로 들어선 지금까지도 '충열과 절개를 상징하는 아름답고 애절한' 이야기로 강조하는 건 다소 식상하다.   

 

 

제방이 끝나는 곳에서

 

제방이 끝난 곳에서 오르막을 오르며

 

제방이 끝난 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니 오르막이다. 취수탑 잔교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낚싯꾼 한 명이 선 채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나무 계단으로 이어지는 오르막을 다 오르자 갈림길이었다.

 

 

갈림길에 서니까 KTX 철로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갈림길에 서서 빈 철로를 바라보며 기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내가 서있는 곳을 바라보았던 나를 상상해 보았다. 자신의 위치와 관점에 따라서 세상은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지!

 

그냥 오른쪽으로 갈까 하다가, 절벽이 있는 야산의 정상까지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을 듯하여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 부근에 작은 집이 두 채 있었다. 인기척은 없지만 누가 살고 있는 것인지? 전망은 좋지만 춥고 불편할 텐데, 무슨 건물인지 모르겠다. 정상에는 아니나다를까 [낙화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얼마 걷지는 않았지만 손길이 많이 간 것으로 보아 이곳을 관광지로 꾸미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경주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정상 부근에서 내려다본 지천지. 왼쪽편에는 지천 터널을 막 빠져나오고 있는 하행선 KTX 열차가 보인다.

정상에서 내려와 철로 바로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나아가자, 하행선 열차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코로나 시국에도 열차는 쉴 새 없이 철로를 오르내렸다.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가는 하행선 KTX 열차

조금 더 나아가자 반대쪽에서 남자 세 명이 걸어오고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재빨리 마스크를 쓴다. 나도 턱에 걸어두고 있던 마스크를 올렸다. 코로나는 정말이지 우리의 생활을 너무나도 많이 바꾸어 놓았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걸 보면 마스크는 이제 우리 몸의 일부라도 된 듯한 느낌이다. 이 남자 세 명은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별로 없을 이들에게 저수지 둘레길은 휴일에 좋은 휴식처가 될 듯. 

 

이 산길은 오른쪽으로는 저수지, 왼쪽으로는 철로로 단절되어 달리 빠져 나갈 수 없는 그런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철로 밑으로 난 지하통로가 있다. 시간 여유만 있다면 지하통로를 건너가 반대편도 좀 살펴보면 좋겠지만 오늘은 그런 여유가 없다.

 

 

 

철로 옆 산길에서 본 저수지

[지천 터널]  옆으로 또 오르막을 올라간다. 낙화정이 있는 야산과 함께 이 봉우리도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법 호흡을 가쁘게 하려 한다(요가와 탁구로 단련된 몸이라 이 정도의 산행이야 가벼운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 야산의 정상 부근에서는 철로 반대편쪽으로도 등산로가 나 있어서 가볍게 산행을 할 수도 있을 듯하다.  갈림길 부근에서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중년의 남녀를 만났다.

 

내리막길

 

저수지 상류에서 제방쪽을 보면서

제법 긴 내리막을 내려오니 저수지 상류이다. 이곳에는 출렁다리가 있는데 짧고 나지막해서 보통 다리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출렁다리에서 바라본 저수지

출렁다리를 건너고 나니 거기부터는 저수지 옆으로 차도와 인도가 있는 편안한 길이었다. 오른편으로 저수지 건너에는 내가 지나온 두 번째 야산이 있고, 저수지와 맞닿은 부분은 작은 단애를 이루고 있다.

 

얼마를 좀 더 걸어가니 주차장과 공연장이 눈에 들어 온다. 화장실들이 눈에 들어 왔는데 두 곳은 겨울철 동파 방지를 위해 폐쇄되어 있고, 한 군데만 개방해 놓았다.

 

오리 한 마리가 저수지 중앙으로 유유히 헤엄쳐 나아가는 모습이 보여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야영장엔 코로나와 추운 날씨에도 대형 텐트가 두 채 세워져 있었고, 그 중 한 곳에서는 안에서 고기를 굽는 냄새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수상 스키장이 있는 출발 지점에 도착하니 네 시가 좀 넘었다. 예상대로 한 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글을 쓰는 데에는 그보다 몇 곱절의 시간이 들었다). 저수지 옆으로 나 있는 923번 지방도로를 타고 내처 달리고 싶기도 했으나, 탁구 시간에 맞추려 차를 다시 대구로 돌렸다. 

 

(210522)

(210720) 지천지는 지난겨울과 올 봄에 찾았을 때는 물이 상당히 맑았는데 장마 등으로 물빛이 좀 탁해졌다. 하지만 무더운 날씨에 시원하게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을 보니 내 마음까지도 경쾌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