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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무주호를 향하여(201229)

by 길철현 2020. 12. 29.

원래 오늘은 서울로 성적처리를 하러 올라갈 예정이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취소하고 말았다. 여동생이 오후에 출발한다고 해서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집을 나섰다. 

 

먼저 [유니클로] 진천점에 들러 사이즈가 큰 파카를 바꾸려고 했는데, 개점 시간이 11시 반이었고, 이 때 시각은 11시 2분. 삼십 분을 그냥 기다린다는 건 무리라 [화원옥포IC]로 향했다. 창원 방향 [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은 공사중이라 차가 많이 밀렸다.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목적지는 없었지만 안 그래도 [광주대구고속도로]를 탈 생각이었는데, 도로 상황이 선택을 더욱 쉽게 해주었다.

 

날은 따뜻하고 그래서 미세먼지가 심해서 온 세상이 뿌였다. 이 흐릿한 시야가 예전에는 몽환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그냥 기분을 울적하고 불쾌하게 한다. 쾌청한 사진을 찍기는 힘들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오후부터 강추위가 몰려온다는 말이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제 잠을 많이 잤음에도 졸음이 자꾸 몰려왔다. 며칠 전 크리스마스 때 고성으로 떠났을 때는 코로나로 엄중한 시기임에도 새로운 풍광이 나에게 활력과 고양감을 안겨 주었는데, 아무래도 날씨가 내 컨디션까지 다운시키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3일 연속 탁구를 많이 쳐서 몸이 지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창한휴게소]([거창휴게소])에 차를 주차하고 잠시 잠을 잤다. 뭔가 꿈을 꾸긴 했는데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어나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그냥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다툼을 하다가 겨우 눈을 떴다. 

 

휴게소 내로 들어서니 발열 체크를 하고 전화번호부를 적으란다. [편의점]에서 캔커피와 딸기파이를 하나 사려는 건데도, 이 과정을 거쳐야 하다니. 코로나는 갑자기 나타나서 지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웃으면서 코로나를 이야기할 날이 언제일까?

 

거창휴게소 뒤편에는 바위 봉우리가 멋있는 높은 산은 비계산으로 그 높이가 1131미터라고 한다.

 

비계산의 바위봉우리, 201029일 우두산 가는 길에 이 휴게소에 들렀을 때 촬영.

그리고, 비계산 뒤편에는 암봉들이 멋있고, 작년 10월 24일에 개통한 국내 유일의 Y자형 출렁다리로 유명한 우두산(별유산 1046m)이 있다. 이 우두산은 가야산 국립공원에 속하는 모양이다.

 

201029

 

휴게소에서 남쪽을 보면 '도선국사가 깨달음을 얻었던 곳'이라고 해서 오도산(1134m)이 높이 솟아 있다. 

 

왼쪽에 중계탑이 보이는 산이 오도산. 앞쪽에 있는 산은 효심 깊은 딸 이야기를 품고 있는 미녀산(930m). 201029

올해 3월 대구에서 코로나가 대유행하던 시기, 탁구마저 칠 수 없었던 나는 자주 차를 몰고 한적한 곳을 찾았다. 인터넷에서 오도산 정상을 차를 몰고 올라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한 나는 구비진 산길을 다소 힘겹게 올랐다. 그 날도 미세먼지가 심해 쾌청했더라면 멋진 광경을 선사했을 합천호가 뿌옇고 희미하게 잡혔다.

 

200304

그러고보니 정상에서 비계산과 이 거창한휴게소를 찍은 사진도 있다. 

 

비계산 뒤편, 그러니까 사진의 왼쪽편에 있는 산이 우두산이다. 200304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의 고향이 가조면인데, 나는 이곳을 지난 10월 우두산 가는 길에 처음으로 들렀다. 가조는 친구의 고향이라는 걸 제외하면 여느 시골의 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조IC를 지나자 북서쪽에 꽤 높은 바위산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나들이의 첫 번째 목적지를 그곳으로 정하고는 거창IC로 빠져나왔다. 거창으로 들어서자 그 산은 보이지 않았고, 어느 도로를 택해야 할지 잘 알 수 없었다. 창동로를 달리다 거창위천 직전에서 우회전을 했는데 도로 공사중이라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나와 위천을 건너자 말자 우회전 쭉 직진하여 황강과 거창위천이 만나는 곳에 있는 합수교를 지난 다음 좌회전하여 좀 나아가니 강 건너편에 아주 크고 현대적인 건물이 보여 사진에 담았는데 교회 건물이다. 

201229. 이하 설명이 없는 사진은 모두 이날 찍은 것임.

일단 그 산을 찾으려면 가조로 되돌아가야 할 듯해서 1084번 지방도를 탔다. 광주대구고속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지방도로를 달려 나아가자 왼쪽으로 높고 가파르게 솟아오른 봉우리가 하나 보였다. 나들이가 무의미한 헤매임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마음 한쪽에서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가운데, 절경을 탐하려 하지 말고 내 앞에 주어진 장소들을 하나하나 알아나가자 하는 마음과 함께, 움츠려 들던 마음에도 갑자기 의욕이 돌아왔다. 이 산을 배경으로 둔마리에 있는 신촌과 대촌 마을의 작은 저수지들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신촌지[경남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대촌소류지[경남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카카오맵에는 이 소류지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야말로 연못이다)

이곳 둔마리는 고려시대의 [벽화고분]이 나름 유명한 모양인데 찾지는 않았다. 그런데, [대촌소류지] 위쪽에 꽤 큰 저수지 둑이 보였다. 내비게이션은 물론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축조된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었다. 

 

둔마저수지[경남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2019년 12월 정도에 완공된 모양이다.
인터넷

가조면으로 들어서 1099번 지방도를 탔다. 이후부터는 처음으로 가보는 지역이었는데, 오른쪽으로는 우두산의 바위들이 자태를 뽐내고, 멀리 왼쪽으로는 목적지로 정했던 바위산이 보인다. 고속도로에서 보았을 때는 굉장히 멋있어 보였으나,  그런 정도는 아니었다.

 

우두산 
목적지로 정했던 이 산의 이름은 보해산(911m) (보해산과 인접한 금귀봉은 이쪽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산인 듯)

1099번 지방도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자 가북면이 나왔다(나는 이걸 기북으로 잘못 읽었고, 당연하게도 거북을 떠올렸다). 이 가북면 위쪽에 [가북저수지]라는 제법 큰 저수지가 있다는 걸 한참 지나온 다음에 내비게이션에서 확인하여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오가는 차량도 거의 없어서 길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 했는데 내비는 도로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나는 휴대폰과 자동차에 매립된 내비 두 개를 이용했는데, 자동차 내비의 축적을 800m로 했더니 세세한 것은 못 보는 대신에 시야가 훨씬 넓어졌다. 휴대폰 내비의 축적은 100m 정도). 그래도, 이까지 온 김에 도로의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심방 마을]에서 차를 돌렸는데, 내비를 보니 위로 좀 더 올라갈 수도 있었을 듯하다.

 

심방 마을, 이 마을은 흰대미산(1018m)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수도산(1317m)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얼핏했던가? 인터넷으로 확인을 해보니 맞다. 수도산과 그 아래에 있는 무흘구곡은 작년 9월에 우연히 지나게 되었는데, 수도산은 그 높이가 상당하고, 30번 국도상에 있는 무흘구곡은 바위들이 아름답고 여름 피서지로 좋을 듯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쯤에서 나는 다음 목적지를 무주 쪽으로 정했다. 기억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무주 쪽에 양수 발전소가 있으니 하부의 호수와 산 정상 부근에 있는 상부 호수를 사진에 담는 것으로 오늘 나들이를 갈무리하면 될 듯했다.

 

올라온 길을 다시 돌아내려 가다가, 올라올 때 본 [면우선생다전기적비]를 찾아보기로 했다.  '기적(紀蹟)비'가 '사적비'와 같은 의미라는 것을 모르고, '기적'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초자연적인 현상을 기대했으나, 도로변에 있는 이 기적비는 일제시대 유림 대표로 [파리장서사건]을 주도했던 곽종석이라는 분을 기리는 비였다. 

 

 

1099번 지방도를 타고 내려오던 나는 삼거리에서 우회전 보해길로 들어섰다. 이 긴 고갯길은 해발 고도가 상당했고, 날씨가 따뜻하지 않다면 겨울에는 통행이 쉽지 않을 듯했다. 고개를 내려오니 작은 저수지가 하나 있다. 이 [회남저수지](증남소류지, 경남 거창군 주상면 남산리)는 전체가 얼어붙어 있었다.

좀 더 내려가자 조금 더 규모가 있는 [남산저수지](경남 거창군 주상면 남산리)가 눈에 들어왔는데,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고 굳이 저수지 자체를 찍는 것도 귀찮아서 멀리서 제방만 담았다.

고갯길의 막바지에 있는 마을 이름은 [거기]다. 어디에 가? 거기가. 지명은 여러 가지 연상을 불러 온다. 거기를 흐르는 개천은 당연히 거기천인데, 옆에는 계수천, 그리고 성기천도 있다. 이 성기천은 황강으로 흘러든다. 황강은 다시 합천호를 거쳐 낙동강과 합류한다. 

 

고갯길을 다 내려와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1089번 지방도를 탔다. 이쪽 3번 국도는 몇 차례 탔기 때문에 1089번 지방도를 타기로 했다. 시간도 두 시가 다 되어 허기가 몰려왔다. 하지만 식사를 할 곳이 마땅치 않다. 선수 출신을 포함하여 아마추어 탁구 최강자들이 격돌하는 작년 9회 [Whidot] 배에서 우승을 하고 또 유튜버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주상 선수를 떠올리게 하는 [주상]면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기로 했다. 중국집이 하나 눈에 띄어 들어갈까 했으나 영업을 하는지를 잘 알 수 없었다.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 등으로 간단하게 해결하려고 했으나 편의점 조차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좀 더 차를 몰아가기로 했다. 

 

1089번 지방도를 벗어나 37번 국도를 타고 무주로 좀 나아가다보니 내비 상에 저수지가 하나 떴다. 도로 오른쪽으로 제방이 상당히 높고 큰 규모여서 기대감에 불을 지폈다. 저수지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여서 차를 그쪽으로 몰고 올라가는데, 제방 아래에서 공사를 하는 중이었고, 공사 때문에 저수지로 올라가는 길에도 작은 돌을 깔아두어 통행을 할 수가 없었다. 차를 세워 두고 재빨리 제방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하고 이백여 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 올라가 서둘러 사진을 찍었다. 저수지는 제방의 규모에 비해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산들로 둘러싸여 있이서 풍광이 괜찮은 편이었다.

안내판에는 [거창저수지](경남 거창군 고제면 농산리)로 소개하고 있는데, 카카오맵에는 [고제저수지]로 올라와 있다. 

 

계속 오르막을 오르자 [빼재터널]이라는 긴 터널이 뚫려있다. 이 터널을 경계로 경남에서 전북으로 넘어온 셈이었다. 구천동의 상가들은 코로나 여파에다, 스키장까지 폐쇄되어 거의 개점휴업 상태인 듯했다. 나도 편의점에 들러 김밥과 두유를 구입한 뒤 차로 와서 허기를 달랬다.

 

49번 국지도를 타고 달리다 727번 지방도와 만나는 곳에서 우회전을 한 다음 조금 더 나아가니 오늘 여행의 두 번째 목적지인 [무주호](전북 무주군 적상면 포내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길쭉한 형태의 이 저수지를 아주 오래 전, 아마도 이십 년 전쯤에 지났던 듯하다. 저수지 안의 작은 섬이 운치를 더해 주었으나, 날이 흐리고 저수지 전체를 담을 수 있는 곳도 찾기가 힘들었다(무주호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빗방울이 좀 흩날리기도 했다).

이 때 시각은 3시 20분 경. 늦지 않게 귀가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그 당시에 나는 이 하부호의 상부호에 해당하는 [적상호]를 시간 들여 올라갈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하며 패스했던 듯한데, 오늘은 거기까지 올라가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산길은 동절기 안전을 위해 중간 지점에서 폐쇄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들를 생각도 없었지만 바리케이드가 쳐진 곳 바로 아래에 있는 [와인터널]도 코로나로 인해 폐쇄된 상태였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만 남았다. 19번 국도를 타고 오는 길에 [봉황저수지](충북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라는 곳이 보여서, 마지막으로 그곳도 담아 보았다.

4번 국도로 갈아탄 다음 황간IC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