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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바람이 분다 -- 미야자키 하야오(2013)

by 길철현 2021. 5. 28.

2013년에 나온 이 작품은 지금까지 나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이다(그는 신작 "어떻게 사나"(How do you live)를 한창 제작중인데 출시까지는 좀 시간이 걸릴 듯하다). 팬터지적 요소가 강한 그의 전작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실존 인물의 일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우선 주목을 끈다.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 나는 이 영화가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조사를 해 보니 실존 인물을 토대로 하여 제작했다고 나왔다. 하지만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는 사실이라기엔 너무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어 또 여기저기 자료들을 좀 더 조사해 보니 비행기와 관련된 주인공의 일은 전기적 사실을 어느 정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사랑 이야기는 호리 다쓰오가 1937년에 발표한 영화와 동명의 소설에서 플롯의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고 한다(주1). 감독은 이러한 사정을 영화의 마지막에 "호리코시 지로/ 호리 다쓰오에 경의를 표하며"라는 문구를 넣어 묵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실존 인물인 호리코시 지로가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주력 전투기인 제로센의 설계자였다는 점은 일본의 식민지배로 신음해야 했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그 때문인지 그의 최대 히트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우리나라에서 2백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불러 모으며 높은 평점을 얻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영화는 10만 명이 조금 넘는 관객들만 관람했으며, 평점도 아주 낮게 나왔다(주2). 비판적인 입장에 선 다수의 핵심적인 주장은 '전쟁 미화'와 '남성 우월주의'인데, 반대로 이 영화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반전'의 요소를 읽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일본인이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본이라는 나라를 생각할 때,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자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에 앞서, 우리 역사에 임진왜란과 식민지배라는 커다란 상처를 남겼고, 그 결과 육이오라는 동족 상잔을 겪게 되었으며, 현재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2차세계대전 후 전범으로 재판을 받거나 하진 않았지만, 일본 주력 전투기의 설계 담당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에 거부감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감정적인 거부감만 앞세우다가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놓쳐버리고 말 것이므로, 역지사지의 태도로 일본인인 감독은 2차세계대전을 어떻게 보는가, 아니 그런 거시적인 입장은 아니더라도 주인공인 호리코시 지로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가를 섬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주3). 

 

먼저 영화의 제목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바람이 분다](風立ちぬ)라는 제목은 앞서 이야기 한 대로 호리 다쓰오의 동명의 소설에서 차용한 것이나, 이 말은 사실은 폴 발레리의 장시 [해변의 묘지]에 나오는 구절로 더욱 유명하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구절 '바람이 분다. . . 살아야겠다'를 영화 첫 부분에 제사로 삽입했을 뿐만 아니라, 호리코시 지로와 사토미 나호코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두 인물을 통해 원어인 불어로 말하게 한다. 대략적으로 읽어 본 [해변의 묘지]의 핵심이 '죽음의 불가피성 앞에서 역으로 삶에의 의지를 다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 또한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의 일과 사랑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를 추적하고 있다. '바람'이라는 말은 한 두가지 의미로 못박기엔 그 은유적 의미가 너무나도 다양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대체로 '사건'이나 '사건의 현장'과 연결된다. 비행기를 향한 주인공의 꿈, 사토미 나호코와의 만남(두 사람의 첫 번째 만남과 재회에서는 실제 바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과 곧이어 일어나는 관동 대지진, 나호코의 죽음, 그리고 2차세계대전. 이러한 점은 영화에 인용되는 또 다른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누가 바람을 보았나]를 통해서도 한층 더 부각된다(주4). 

 

실제 바람이든 비유적 의미의 바람이든 그 양면성을 제목이 내포하고 있으며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영화를 통해 그러한 바람 속에서의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살펴보려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택한 것일까? 이에 대해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의 젊은 날 사진 한 장이 심금을 울렸다. 부끄럽다. 논란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그릴 만한 인물이라고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무기를 사용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자'는 데 대한 의문은 저와 스태프에게도 있었다. 정의는 보장되지 않고, 시대의 왜곡 속에서 꿈이 변형되고, 고뇌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살아야만 하는… 그런 건 사실 현대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 운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머니 투데이, 2013년 8월 30일자]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그가 호리코시 지로를 주인공으로 택한 또 다른 이유는 비행과 비행기, 그리고 20세기 초에 대한 그의 지대한 관심(이러한 관심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 [마녀 배달부 키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그의 많은 영화에 반영되어 있다)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비행기 설계자가 창조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만화가이자 만화 영화의 제작자로서 자신이 느꼈을 창조의 고뇌에서 일종의 동질성도 있었을 것이다. 이 밖에도 2차세계대전 당시 그의 아버지가 무기 생산 공장을 운영했고, 그 무기의 일부가 제로센에 사용되었다는 개인적 연결고리도 있다. 

 

또 하나 덧붙여 생각해볼 부분은 감독이 주인공의 비행기 제작이라는 일에서는 전기적 사실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주인공의 사랑이라는 부분에서는 소설에서 대부분을 차용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전기와 허구가 기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영화는 호리코시 지로라는 실존 인물을 토대로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와 상관이 없는 인물이라는 이중적인 면모를 띤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영화의 주인공을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면서도, 또 동시에 역사적 실제 인물로만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게 한다.

 

흥미롭게도 호리코시 지로는 라이트 형제가 처음으로 성공적인 비행기를 제작한 1903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가 비행기 설계자라는 꿈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난다는 것은 인류가 아주 오랜 시간 꾸어온 꿈이고, 20세기 초는 그 꿈이 실현된 시기인 동시에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기술적인 난관이 놓여 있던 시기였다. 영화 도입부에 비행기를 타고 자유롭게 비행하던 주인공이 무기를 가득 실은 비행선의 등장으로 추락하고 마는 꿈 장면은 주인공의 앞날을 그대로 암시하고 있다(주인공의 십대 시절은 1차세계대전이 있었던 시기라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비행기를 향한 호리코시 지로의 꿈이 인류의 오랜 염원과 연결되며 그가 처음부터 전투기를 설계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으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그를 전투기의 제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꿈의 결정체인 제로센이 일본의 주력 전투기라는 점에서, 더 나아가 이 전투기가 중일 전쟁과 진주만 공습에 사용되었으며, 마지막엔 가미가제의 전투기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이 패전국이 되고 말았다는 점에서, 주인공은 책임과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볼 때 그는 일본 군국주의의 앞잡이 내지는 조력자라는 점이 명백하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잠시나마 일본인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비행기에 대한 자신의 꿈을 열정적으로 추구해나갔고 좋든 싫든 자신의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이 비판의 대상만이 되어야 하는가?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역사적 상황에 둔감하지 않은 인물로 제시되고 감독 역시도 바람의 양면성과 마찬가지로 비행기라는 아름다운 꿈이 갖는 양면성--하늘을 나는 꿈을 실현시켜주는 당대 기술의 결정체인 동시에 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있으며, 또 전시에는 전투기나 폭격기로 인명을 살상하는 가공의 무기이자 조종사를 비롯한 탑승자들 역시도  죽음을 직면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주인공이 동경해 마지 않는 이탈리아의 비행기 설계자이자 제작자인 카프로니 백작은 이 영화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갖는데, 주인공의 꿈에 등장해 1,2차세계대전이 있었던 20세기 전반의 시대 상황 속에서 아름다운 비행기의 설계라는 꿈이 갖는 의미를 진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그 진단은 호리코시 지로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기도 하다. 1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십대 초반인 주인공의 꿈에 처음으로 등장한 카프로니는 호리코시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저 [많은 폭격기들] 중 절반도 돌아오지 않지, 적의 도시를 불태우러 가는 거다. 하지만 전쟁은 곧 끝난다.

 

그리고 그는 전쟁이 끝나고 나면 많은 승객들을 태울 항공기를 제작할 것이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주5).

 

비행기는 전쟁의 도구도 장사의 수단도 아니다.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이고 설계사는 꿈을 형태로 만드는 사람이다. 

 

영화는 주인공이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겠다는'는 꿈이 시대적 상황과 맞부딪히며 어떻게 변형되고 왜곡되고 마는가를 추적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1920년대와 30년대의 비행기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는데, 이 당시 비행기 설계사와 제작자들이 당면한 문제는 안전하면서도 빠르게 날 수 있는 비행기를 어떻게 양산할 것인가였다. 영화에서는 실패를 거듭하며 성공에 이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와 함께 일본의 기술력이 구미의 그것보다 이십 여년 뒤쳐져 있다는 것(아시아를 벗어나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탈아입구론), 그리고 일본의 가난(30년대의 공황은 전 세계적인 것이고 그것이 2차세계대전의 원인 중 하나이다) 등 당시의 일본의 상황도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주인공이 30년대 유럽 여행 도중 환상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된 카프로니 백작의 말은 비행기가 갖는 양면성을 피라미드에 빗대며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와 없는 세계 자네는 어느 쪽을 더 좋아하나?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인간의 꿈은 저주받은 꿈이기도 하지.

 

비행기는 살육과 파괴의 도구가 되는 숙명을 가지고 있네.

그래도 난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를 선택했어.

 

피라미드, 특히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자 고대 과학 기술의 결정체이지만 동시에 그것의 축조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랐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카프로니 백작의 말은 다소 위험스럽기도 하다. 주인공은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조를 하지는 않고 '전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자신의 원래 꿈을 부각시키는 선에서 멈춘다. 호리코시 지로는 자신의 아내 사토미 나호코가 결핵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시점에 제로센을 완성하여 사람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지만 정작 본인은 그다지 기뻐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이 부분은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가 일기에서 밝힌 대로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이기도 한다(주6). 그 다음 장면에서는 엄청난 폭격을 당하는 일본의 모습과, 무덤을 이루고 있는 제로센의 잔해들이 제시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터뷰에서 "동시대에 발생한 많은 사건, 학살, 약탈, 전쟁에 대해 묘사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장면들은 패전 당시의 일본의 상황을 담은 [반딧불이의 묘]처럼 가해자로서의 일본의 모습에는 발을 빼면서 피해자로서의 일본의 모습은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 장면에 이어지는 카프로니 백작과의 환상 속 마지막 재회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꿈을 좇아 십 년 동안 최선을 다해 달려왔지만 역사적 상황은 자신의 노력을 오히려 악몽으로 바꿔놓아 버렸다고 결론을 내린다. 

 

한국인인 나의 입장에서 볼 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 영화가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전쟁을 미화했다'는 비판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데에서 오는 선입견이 너무 앞서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전쟁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일본인으로서 감독이 느끼는 감정은 또 그것대로 복잡미묘한 것이어서 그것을 섬세하게 좇아가려 하다 보니 명료한 답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농담처럼 등장인물 중 한 명이 내뱉는 말(일본이 근대국가인가?)이나, 독일의 히틀러 정권을 일컬어 "깡패 집단"이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군국주의나 파시즘, 또 그에 따른 전쟁 등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드러난다(주7). 

 

어쨌거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논란의 소재가 되는 한 인물이 추구한 순수한 꿈과 그것이 시대라는 그물 속에서 어떻게 일그러지는가를 섬세하게 구현하려 했고, 더 나아가 그 인물의 허구적인 사랑 이야기와 큰 무리없이 연결시켰다. 그런데 역사적 실존 인물이자 논란의 소지가 많은 비행기 설계자인 호리코시 지로의 일을 구현해 내는데 너무 집중한 탓인지, 그의 사랑 이야기는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다. 얼핏 보기에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지고지순하며 우리가 꿈꾸는 사랑을 구체화해서 보여준 듯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도 없으며 다만 당시 불치병에 가까웠던 결핵으로 인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파국을 초래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호리코시 지로의 시점만이 부각될 뿐 사토미 나호코는 너무 평면적이고 빈약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이 점은 이전의 그의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명백해지는데, 그녀는 그의 데뷔작인 [루팡 3세 : 칼리오스트로의 성]에 나오는 공주 정도로 평면적이다. 35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자 주인공이 인물로서의 생동감을 상실한 채 평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가 전작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나우시카나, [천공의 성 라퓨타]의 해적 엄마, [마녀 배달부 키키]의 키키, [모노노케 히메]에서 양면성을 지닌 에보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의 치히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의 소피 등을 통해 매력적이고 입체적이며 능동적인 여성 인물들을 창조해 온 것을 생각해 볼 때 더욱 의아할 따름이다.

 

20세기 전반기 수동적인 삶의 살아야 했던 여성들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부유한 집안의 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취미라는 것 외에 우리가 그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두 연인 사이에 있을 갈등 을 허락하지 않는지 모르지만 자칫 멜로드라마적으로 흐를 위험도 다분하다. 어쨌거나 이 영화에서 사토미 나호코보다 호리코시의 여동생 카요가 오히려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는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작품이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은 이런 점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금까지 나온 마지막 작품인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볼 때 아름다운 작품이고 공들여 만든 작품이다(일본인들이 강조하는 장인 정신이 잘 드러난다). 관동 대지진의 묘사를 비롯하여 일본의 20세기 전반을 잘 담아내었으며 시대와 개인적인 아픔에 대해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절제하면서도, 우리 삶이 지닌 아름다움과 즐거움과 슬픔과 아픔, 힘겨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말미에서 호리코시 지로가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는 부분은 삶의 모든 바람을 총체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지리라.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좀 가다듬어야 한다. 영화를 다시 살펴볼 필요도 있다. 쓸 말이 그렇게 많지 않은 지도 모르겠다.)

 

 

 

 

 

 

 

 

 

 

 

 

 

 

 

(주1)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쓰오의 소설은 결혼한 지 1년만에 폐결핵으로 죽은 자신의 아내와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2) 네이버에서 5.1, 다음에서는 그보다 낮은 4.7을 받았다. 네이버로 그의 작품에 대한 평점을 조사해보니 거의 모든 작품이 9점을 넘었고, 가장 낮은 [벼랑 위의 포뇨]도 8.22였다. 우리 나라 관객들 또한 이 작품 이전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공감하면서 보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주3) 만약 내가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사전 지식없이 이 영화를 접했다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현재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올해 3월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필두로 두어 달에 걸쳐 그의 영화 열 편을 모두 보고 또 감상을 간단하게나마 적어 나가면서 한 마디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환경 문제 그리고 비행기(특히 비행기가 처음 등장한 20세기 초)에 대한 그의 관심, 세상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그의 따뜻한 시각 등에 주목해 온 나로서는 특히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심한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소재를 그가 택한 것을 두고 쉽게 '전쟁 미화'라고 못박을 수는 없었다.

 

(주4) 이 영화에서 바람이 양가성으로 다가온다면(셸리의 대표작인 [서풍부]에도 그러한 양가성이 잘 드러난다), 그룹 퀸의 대표곡 중의 하나인 [보헤미안 랩소디]에 나오는 '어쨌든 바람은 분다"(Anyway the wind blows)라는 구절은 그 파괴성에 좀 더 무게추가 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13년 8월 30일자 [머니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감독이 직접 밝힌 제목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세계이며, 생명이며, 시대다. 바람은 산뜻한 바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대의 거센 바람, 방사선을 포함한 독이 든 바람도 불어댄다. 동시에 바람이 일어나는 것은 생명이 빛나는 증거이기도 하다. '세계는 있다. 세계는 살아있다. 나도 너도 살아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지 않으면 안된다'고 이해하고 있다.

 

(주5) 안타깝게도 1919년 그의 첫 번째 상업 비행기가 추락해 15명 내외의 탑승자가 모두 사망하는 사고를 겪었다. 이 사고는 이탈리아에서의 첫 번째 상업 비행기 사고이자 치명적인 것이었다. 더 나아가 1921년에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항공기를 제작하는데 이 역시도 두 번째 시험 비행에서 추락하고 만다. 이 추락 장면은 영화에 삽입되어 있다. 

 

(주6)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과 전쟁에 돌입했을 때의 그의 심경을 적은 부분을 위키피디아에서 옮겨본다.

 

When we awoke on the morning of December 8, 1941, we found ourselves — without any foreknowledge — to be embroiled in war... Since then, the majority of us who had truly understood the awesome industrial strength of the United States never really believed that Japan would win this war. We were convinced that surely our government had in mind some diplomatic measures which would bring the conflict to a halt before the situation became catastrophic for Japan. But now, bereft of any strong government move to seek a diplomatic way out, we are being driven to doom. Japan is being destroyed. I cannot do [anything] other but to blame the military hierarchy and the blind politicians in power for dragging Japan into this hellish cauldron of defeat.

 

(주7)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2004년작 [에비에이터](The Aviator)와 이 작품을 비교해 보면 2차세계대전에 대한 승전국과 패전국의 입장이 얼마나 다른가 하는 점이 잘 드러난다. 이 전기 영화의 주인공인 하워드 휴즈는 호리코시 지로처럼 비행기 설계에 전념한 인물이 아니라 다방면에 손을 댄 억만장자이자, 그가 제작에 관여한 비행기도 실제로 2차세계대전에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전투기 등을 제작하기 위해 국방 예산을 받아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2차세계대전의 참상에 대해 일말의 가책을 느끼거나 하는 부분은 영화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며, 더 좋은 성능의 비행기 개발을 위해 박차를 가하는 모습만 부각된다. 2차세계대전이 한축에서는 당시 구미 각국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경쟁과 그 갈등에 기인한 것이므로 그 책임은 패전국뿐만 아니라 승전국에도 있다.  

 

 

 

 

 

 

[참고]

20세기 전반의 일본의 모습을 잘 담아낸 점

 

 

[Sam Byford]

The Wind Rises follows in the tradition of Japanese works that eulogize artisanal passion and dedication to one's craft — it could almost have been called Jiro Dreams of Fighter Planes.

 

"Including myself, a generation of Japanese men who grew up during a certain period have very complex feelings about World War II, and the Zero symbolizes our collective psyche," said Miyazaki in an interview with the Asahi Shimbun. "

 

"Japan went to war out of foolish arrogance, caused trouble throughout the entire East Asia, and ultimately brought destruction upon itself... but for all this humiliating history, the Zero represented one of the few things that we Japanese could be proud of." 

 

 "It was the extraordinary genius of Jiro Horikoshi, the Zero's designer, that made it the finest state-of-the-art fighter plane of the time... Horikoshi intuitively understood the mystery of aerodynamics that nobody could explain in words."

 

 Given the setting, did Miyazaki have a responsibility to address Japan's wartime exploits more explicitly?

 

 "Jiro dreams of flight, and his dreams are often dragged to the ground by the corruption of real life," says Kelts. "It's as if Miyazaki wants to drive home the harsh difference between the two; the tragic near-impossibility of combining dreams and reality, and of living in both. If you choose one, you sacrifice the other."

 

Hayao Miyazaki's final film is a provocative, wondrous work of art that won't soon be forgotten.

 

[이 점은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비행기 제작자였던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그린 마틴 스코세이즈 감독의 2004년도 영화 [에비에이터](The Aviator)와 비교해서 살펴보면 -- 여기서부터 조사 필요]

 

(The Aviator) 에비에이터/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한 인간/ 시대의 왜곡을 그대로 안게 되는 것

 

피해자 측면 부각/ 가해자(비판의 초점)

 바꿔 말해 이 영화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그리고 그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업에 참가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스탭들)의 세계관이 그대로 녹아있다.

 

 

Alison Herman

 

Miyazaki also has a personal connection with Horikoshi through his father, who owned a munitions factory that manufactured parts for the Zero.

 

But free as Miyazaki may be to put the spotlight on a male protagonist, that prerogative’s no excuse for how flat the film’s female characters turn out to be.

 

It’s indicative of the way Naoko’s character is treated throughout The Wind Rises: except for the fact that she has a wealthy father and enjoys painting, we know almost nothing about her outside of her relationship with Jiro, a lack of depth that’s particularly strange given The Wind Rises‘ marketing as equal parts fictional biography and love story.

 

It’s a shame Naoko, Kayo, or any other female character didn’t get to be a real part of it.

 

지로의 어머니

예외 : Kayo 동생

페미니즘 : 또한 페미니스트로서 주인공을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을 강인하고 지혜롭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요 여성 등장인물들은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 등 여러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고정적 성 역할의 전형적 여성 등장인물과 상반되는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여성 등장인물의 강인하고 주체적 성격은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작품 특성에 대하여 미야자키 하야오는 '나의 많은 작품들에는 강인한 여성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용감하고 의존적이지 않으며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우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친구나 조력자가 필요할 수는 있으나 구원자는 절대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든 여성은 어느 남성과 같이 영웅이 될 역량이 있다. 소피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으로 세운 이유는 '남성으로부터 정복당해온 여성과 문명으로부터 고통 받는 자연이 닮았다고 믿기 때문'이며 '남자 주인공으로는 그냥 악과 맞서 싸우는 관습적인 이야기밖에 만들 수 없다.' 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주인공의 조력자나 조언자 포지션에 있는 할머니 캐릭터 역시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천공의 성 라퓨타의 도라와 시타의 친할머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제니바,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켄타의 할머니, 마녀 배달부 키키의 빵 만드는 할머니, 모노노케 히메의 무녀 히이사마 등.

 

진짜 아내 : Sumako Horikoshi

 

저 중 절반도 돌아오지 않지, 적의 도시를 불태우러 가는 거다. 하지만 전쟁은 곧 끝난다.

전쟁이 끝나면 이걸 만들 거다. 난 폭탄 대신 손님을 태울 거다.

전투기나 폭격기가 아니라 수송기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

난 비행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비행기는 전쟁의 도구도 장사의 수단도 아니다.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이고 설계사는 꿈을 형태로 만드는 사람이다.

전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요.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와 없는 세계 자네는 어느 쪽을 더 좋아하나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인간의 꿈은 저주받은 꿈이기도 하지

비행기는 살육과 파괴의 도구가 되는 숙명을 가지고 있네

그래도 난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를 선택했어.

 

전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요

 

인생의 창조적 시간은 10년이지. 예술가나 설계가나 똑같아. 자네의 10년을 최선을 다해 살게. 

 

 

지옥인 줄 알았어요

끝은 너덜너덜했지만요

나라가 망했으니까요

 

[Out of Africa에서 비행을 하는 장면]

 

 

 

 

 

 

 

 

The Aviator 2004 Martin Scorsese 마틴 스코세이즈 

 

지로(1903-82)

 

Who has seen the wind?
Neither I nor you;

But when the leaves hang trembling,
The wind is passing through.

Who has seen the wind?
Neither you nor I;

But when the trees bow down their heads,
The wind is passing by.

호리 다쓰오 [바람이 일다 風立ちぬ]

피라미드가 있는 세상 - 키에르케고르

누적 관객 - 106,546

평점 4.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2002년 200만]

 

[제로센]

소화 16년 (1941년) 진주만 공습에 제로센이 사용됨(세계 최고의 전투기)

44년 - 마리아나 해전(제로선 괴멸적인 패배) 치명적 결함 - 공중분해 [지로의 오른팔인 소네 요시토시가 씀]

1940년 - 중일전쟁에 처음 투입 (해군 -- 500킬로, 6시간) 약한 엔진 -- 경량화/ 강도부족 공중분해

2호 제로센 -- 항속 거리 부족

사이판 -- B29. 일본 본토 폭격

제로센 가미가제에 사용됨(2400기 이상)

 

 

하이데거, 하이젠베르크

 

Anyway the wind blows

Who has seen the wind? Christina Rossetti

The Aviator에서 Zero를 자신들의 비행기를 복제한 것이라 평가절하

 Who has seen the wind?

                   Neither you nor I

                   But when the trees bow down their heads,

                   The wind is passing by

 

 

지로 호리코쉬 Jiro Horikoshi (Wiki)

Horikoshi was strongly opposed to what he regarded as a futile war

(일기)

When we awoke on the morning of December 8, 1941, we found ourselves — without any foreknowledge — to be embroiled in war... Since then, the majority of us who had truly understood the awesome industrial strength of the United States never really believed that Japan would win this war. We were convinced that surely our government had in mind some diplomatic measures which would bring the conflict to a halt before the situation became catastrophic for Japan. But now, bereft of any strong government move to seek a diplomatic way out, we are being driven to doom. Japan is being destroyed. I cannot do [anything] other but to blame the military hierarchy and the blind politicians in power for dragging Japan into this hellish cauldron of defeat.

 

(45년)?

For the first time, I really saw the effects of the incendiary raids on Nagoya. The city is a wasteland, charred and unspeakably desolate. My former factory is a ghostly, steel-ribbed wreck, shattered by bombs and torn apart by the dispersal crews. It is hard to believe that all this is true. I knew that soon I would be well. Strangely, though, I had little desire to return to work. The impression of the shattered city and the wrecked factories will not leave me

 

제로센을 통해 우리나라의 과거를 돌아볼 때 우리들이 가진 무기가 우수하면 할 수록 그것을 통제/제어하는 보다 높은 도리, 의리의 마음과 과학정신이 필요함을 가르쳐주는 듯하다.

 

 In particular, although the film follows the progression of his aircraft designs, the details of his personal life are mostly fictitious (for example, he had an older brother, not a younger sister).[7][better source needed] These additional plot elements were adapted by Miyazaki from Hori Tatsuo's 1937 novel The Wind Has Risen.[8]

[아내와의 사랑 이야기는  이 소설의 내용에서 따온 것]

 

**** 발레리 [해변의 묘지][“Le Cimetière marin”]

 

해변의 묘지

- 폴 발레리(1871~1945)

1

비둘기들 노니는 저 고요한 지붕은

철썩인다. 소나무들 사이에서, 무덤들 사이에서.

공정한 정오는 여기에서 불길로 바다를 짠다.

언제나 되살아나는 바다를!

신들의 정적에 오랜 시선을 보냄은

오 사유 다음에 찾아드는 보상이여!

2

섬세한 섬광은 얼마나 순수한 솜씨로 다듬어내는가

지각할 길 없는 거품의 무수한 금강석을,

그리고 이 무슨 평화가 수태되려는 듯이 보이는가!

심연 위에서 태양이 쉴 때,

영원한 원인이 낳은 순수한 작품들,

시간은 반짝이고 꿈은 지식이다.

3

견실한 보고, 미네르바의 단순한 사원,

고요의 덩어리, 눈에 보이는 저장고,

솟구쳐 오르는 물, 불꽃의 베일 아래

그 많은 잠을 네 속에 간직한 눈,

오 나의 침묵이여!…… 영혼 속의 건축,

허나 수천의 기와 물결치는 황금 꼭대기, 지붕이여!

4

단 한번의 숨결 속에 요약되는 시간의 사원,

이렇게도 순수한 데까지 올라 나는 내 바다의

시선에 온통 둘러싸여 익숙해진다.

또한 신에게 바치는 내 지고의 제물인 양,

잔잔한 반짝임은 심연 위에

지극한 경멸을 뿌린다.

5

과일이 쾌락으로 용해되듯이,

과일의 형태가 사라지는 입 안에서

과일의 부재가 더없는 맛으로 바뀌듯이,

나는 여기 내 미래의 향연을 들이마시고,

하늘은 노래한다, 소진한 영혼에게,

웅성거림 높아가는 기슭의 변모를.

6

아름다운 하늘, 참다운 하늘이여, 보라 변해 가는 나를!

그토록 큰 교만 뒤에, 그토록 기이한,

그러나 힘에 넘치는 무위의 나태 뒤에,

나는 이 빛나는 공간에 몸을 내맡기니,

죽은 자들의 집 위로 내 그림자가 지나간다

그 나약한 움직임에 나를 순응시키며.

7

지고(至高)의 횃불에 몸을 맡긴 영혼이여,

나는 너를 응시한다, 연민도 없이

퍼붓는 빛의 찬미할 정의여!

나는 너를 가장 순수한 자리에 올려놓는다.

스스로를 응시하라!……그러나 빛을 돌려주는 것은

맥없는 그림자의 절반을 전제한다.

8

오 나만을 위하여, 나 홀로, 내 자신 속에,

마음 곁에, 시의 원천에서,

공허와 순수한 사건 사이에서, 나는

기다린다, 내재하는 내 위대함의 반향을,

항상 미래에 오는 공허함 영혼 속에 울리는

가혹하고 음울하며 드높은 저수조의 메아리를!

9

그대는 아는가, 녹음의 가짜 포로여,

이 여윈 철책을 먹어드는 만(灣)이여,

내 감겨진 눈 위에 반짝이는 눈부신 비밀이여,

어떤 육체가 그 나태한 종말로 나를 끌어넣으며

무슨 이마가 이 백골의 땅에 육체를 끌어당기는가를?

여기서 하나의 번득임이 나의 부재(不在)들을 생각한다.

10

닫히고, 신성하고, 물질 없는 불로 가득 찬,

광명에 바쳐진 대지의 단편,

불꽃들에 지배되고, 황금과 돌과 침침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곳, 이토록 많은

대리석이 망령들 위에서 떠는 이곳이 나는 좋아.

충실한 바다는 여기 내 무덤들 위에 잠든다!

11

빛나는 암캐여, 우상숭배의 무리를 쫓아내라!

내가 목자의 미소를 띠고 쓸쓸히

고요한 무덤의 하얀 양떼를,

신비로운 양들을 오래도록 방목할 때,

그들에게서 멀리하라

사려 깊은 비둘기들을, 헛된 꿈을, 호기심 많은 천사들을!

​12

여기에 이르면, 미래는 태만이다.

정결한 곤충은 건조함을 긁어대고,

모든 것은 불타고 흩어져,

어느 가혹한 본질을 가진 대기 속에 흡수된다

부재에 도취하는 인생은 드넓게 펼쳐지고

고초는 감미로워지며, 정신은 맑도다.

13

감춰진 사자(死者)들은 바야흐로 이 대지 속에 있고,

대지는 사자들을 덥혀주며 그들의 신비를 말린다.

저 하늘 높은 곳의 정오, 움직이지 않는 정오는

자신 속에 스스로를 사유하고 스스로에 동의한다.

완벽한 두뇌여, 완전한 왕관이여,

나는 너의 내부의 은밀한 변화이다.

​14

너의 공포를 저지하는 것은 오직 나뿐!

나의 뉘우침도, 나의 의혹도, 나의 속박도

모두가 네 거대한 금강석의 결함이어라……

허나 대리석으로 무겁게 짓눌린 사자들의 밤에,

나무뿌리에 감긴 몽롱한 사람들은

이미 서서히 네 편이 되어버렸다.

​15

사자들은 두터운 부재 속에 용해되었고,

붉은 진흙은 하얀 망령들을 삼켜버렸으며,

살아가는 천부의 힘은 꽃 속으로 옮겨갔도다!

어디 있는가 사자들의 그 친밀한 언어들은,

고유한 기술은, 특이한 영혼들은 어디 있는가?

눈물이 솟아나는 곳에 유충들이 기어간다.

16

간지럼 타는 소녀들의 날카로운 외침,

눈, 이빨, 눈물 젖은 눈시울,

불장난하는 어여쁜 젖가슴,

굴복하는 입술에 번들거리는 피,

마지막 공물, 그것을 지키려는 두 손,

이 모두 땅 밑으로 들어가고, 유희(遊戱)로 돌아간다.

17

그리고 그대, 위대한 영혼이여, 그대는 바라는가

육체의 눈에 파도와 황금이 만들어내는,

이 거짓의 빛깔도 없는 덧없는 꿈을?

그대 노래하려는가 그대 한줄기 연기로 사라질 때에도?

가거라! 일체는 사라진다! 내 존재는 구멍 나고,

성스러운 초조함도 이렇게 죽어간다!

18

검게 빛나며 깡마른 불멸이여,

죽음을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만드는,

끔찍하게 월계관 쓴 위안부여,

아름다운 허위 그리고 경건한 책략이여!

그 누가 모르랴, 그 누가 거절하지 않으랴,

이 텅 빈 두개골, 이 영원한 웃음을!

19

땅 밑에 누워 있는 조상들이여, 주인 없는 머리들이여,

삽으로 퍼 올린 하 많은 흙의 무게에 짓눌려

우리네 발걸음을 휘청거리게 하는구나.

참으로 갉아먹는 자, 부인할 길 없는 구더기는

묘지의 석판 아래 잠자는 당신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구더기들은 생명을 먹고 살며, 나를 떠나지 않는다.

20

자기에 대한 사랑일까 아니면 미움일까?

구더기의 감춰진 이빨은 나에게 바짝 가까워서

그 무슨 이름이라도 어울릴 수 있으리!

무슨 상관이랴! 구더기는 보고 원하고 꿈꾸고 만진다!

내 육체가 그의 마음에 들어, 나는 침상에서까지

이 생물에 소속되어 살아간다!

21

제논! 잔인한 제논이여! 엘레아의 제논이여!

그대는 나래 돋친 화살로 나를 꿰뚫었어라

진동하며 날고 또 날지 않는 날개 돋힌 그 화살로!

너는 나를 꿰뚫었구나!

아! 태양이여…… 이 무슨 거북의 그림자인가

영혼에게는, 큰 걸음으로 달리면서 꼼짝도 않는 아킬레스여!

22

아니, 아니다!…… 곧추 일어서라! 연속되는 시대 속에!

부셔버려라, 내 육체여, 생각에 잠긴 이 형태를!

마셔라, 내 가슴이여, 태어나는 바람을!

신선한 기운이 바다에서 솟구쳐 올라

나에게 내 혼을 되돌려준다…… 오 짜디짠 힘이여!

파도 속에 달려가 그 영혼을 다시 용솟음치게 하라!

23​

그렇다! 본디 착란하는 대해(大海)여,

아롱진 표범의 가죽이여, 태양이 비추이는

천만가지 환영으로 구멍 뚫린 그리스 병사들의 외투여,

이 같은 고요 속의 소동에

반짝이는 네 꼬리를 물어뜯는,

스스로의 푸른 육체에 취한 절대적인 히드라여!

24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거대한 대기는 내 책을 펼쳤다 또 다시 닫는다.

가루가 된 파도는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단배들이 먹이를 찾아다니는 이 잠잠한 지붕을!

[“Le Cimetière marin”]

 

---Britannica

 

죽음에 대한 명상

The wind is rising . . . We must try to live! (영역)

바람이 분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Le vent se lève il faut tenter de vivre

 

 

The Graveyard by the Sea, poem by Paul Valéry, written in French as “Le Cimetière marin” and published in 1922 in the collection Charmes; ou poèmes. The poem, set in the cemetery at Sète (where Valéry himself is now buried), is a meditation on death.

At first the narrator observes the calm sea under the blazing noontime sun and accepts the inevitability of death. But as the wind begins to stir and waves start forming on the sea, a sign of the energy beneath the surface, the narrator proclaims the necessity of choosing life by choosing eternal change over contemplation.Valéry approached the composition of the poem as if it were a musical form, with the rhythm of the verse mimicking the movement of the sea.

This article was most recently revised and updated by Kathleen Kuiper, Senior Editor.

(죽음의 필연성에 맞서 삶의 의지를 불태움)

 

[노태맹 시인]

해변의 묘지는 우리의 시간이 묻힌 언덕이다. 그 언덕에서 우리는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파도의 포말이 되는 것을 보아왔다. 그 언덕에서 우리는 가난한 우리의 아비들이 작은 배의 섬광이 되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도 보아왔다. 해변의 묘지는 ‘한숨이 요약하는 시간의 사원’. 우리도 언젠가 죽음이라는 ‘순수한 사건’을 그 시간 속에서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고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파도로 달려가 다시 생생하게 솟아나자!’고 결의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발레리는 ‘빛을 돌려준다는 것은 침침한 반쪽 그늘이 남는다는 뜻’이라고 이 시에서 표현한다. 그늘은 우리를 짓누르는 고통이지만 그것으로 하여 빛은 빛으로 드러난다. 영원은 ‘검고 금빛 나는 연약한 불멸’일 따름이다. 

 

시인은 컴컴한 절망도 불후의 생명도 꿈꾸지 않는다. 우리가 발 디딘 이 ‘해변의 묘지’야 말로 우리가 탐구해야 할 ‘가능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매일신문. 노태맹 시인 2015.02.16)

 

 

[2번 째]

발레리 ​ 

꿈의 성취 / 폭탄을 가득 단 비행선(1918)

전투기(전쟁은 곧 끝나지) / 일반 비행기 -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 설계사는 꿈을 만드는 사람

(23년 관동 대지진)

도쿄 - 나고야 [공황의 여파 - 30년대]

미쓰비시 내연기 주식회사

The Aviator

가난한 나라

독일 융커스

[하이데거의 경우/ 탈아입구론]

20년 뒤쳐져 있다

꿈의 장면들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와 없는 세계/ 비행기의 숙명

인생의 창조적 시간은 10년이지

1932년 - 설계팀장

사토미 나호코

살아 있다는 건 멋진 거예요

히틀러 - 깡패 집단

(마의 산)

국제연맹탈퇴. 일본 패망

[일본 국민들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행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키플링/ 콘래드

특별고등경찰

근대 국가

해군의 다음 비행기

독일인 카스토로프

눈물을 흘리면서 일하는 모습

남자에게는 일이 우선이야 아버지

비행기/사랑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고 있다

무기 상인이 아니라 좋은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

지로센 개발에 성공하고도 그렇게 기뻐하지 않음. 훌륭한 비행기입니다.

일본 본토 대폭격. 잔해가 된 지로센의 모습.  일본의 소년. 

끝은 너덜너덜. 

일본 전투기의 무덤 - 일본의 패망

비행기는 아름다워도 저주받은 꿈이야 - 카프로니

하늘은 전부 삼켜버리지

(당신은 살아가세요. 살아야해요. 응.)

아리가토.

 

아름다운 바람같은 사람

주제가의 선율(서정적)

 

[Sheila O'Malley] Roger Ebert

지로 호리코쉬 - Zero fighter plane

Count Caproni

기술력 확보

Naoko와의 사랑

The Wind Rises has an uneasy undercurrent about what these beautiful dreams will become when used in warfare. 

 

The Aviator

The film has been criticized for glorifying the deadly Zero, for glorifying Horikoshi and whitewashing some of the more problematic elements of his career. 

 

바람 은유, 실제 (Wind is both benign and ominous)

what he fantasizes about can become a reality

 

[인터넷, 스앰에서제일졸린애] 제로센, 개발자가 본 비극

미야자키 감독은 “호리코시 지로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쓰인다는) 의식은 안 했겠지만 그가 만든 비행기는 태평양 전쟁에 쓰였다. 그렇다면 ‘그가 단지 열심히 살았다고 죄가 단죄되는 것인가?’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미야자키 감독은 ‘바람이 분다’가 실존 인물을 출연시킨 것과, 1920년 이후 관동대지진을 작품의 배경으로 한 것에 대해서 “호리코시 지로는 군의 요구를 받았지만 그것에 대항하면서 살아온 인물이다. 관동 대지진이라는 것은 일본의 운명을 정하는데 있어서 큰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든게 타버린 상황에 인생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호리코시 지로는 군의 요구를 받고 대항한 적이 없는 인물이며, 제로센이 해군의 지시로 그리고 전투 성능을 제 1순위로 요구하는 상황에서,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쓰인다는 의식을 안 할수가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것입니다.

 

참고로 제로센 제작자를 도운 사람들 중에는 

세계 2차대전 전범 도조 히데키의 차남도 있었습니다.

 

전투기 제로센을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가 종전 이후에 남긴 말입니다.

 

"우수한 무기를 가졌을 때에는 그것을 통제/제어하는 

보다 높은 도리, 의리의 마음과 과학정신이 필요하다."

 

호리코시 지로가 뒤늦게 후회한 건지, 

아니면 전투기를 만든 것을 합리화하려고 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작자 역시 자신이 만든 제로센이 잘못되었다는 건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反戰)요소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반전의 요소가 일본이 주로 하는 피해자 행세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일본인에게는 '우리는 원폭피해자'라는 인식이 있는데, 일본에서 반전 평화주의가 자리잡게 된 것도 이 이유에서입니다. 즉,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가 세계 2차대전의 가해자였음을 인정하는 반성의 자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일본인은 아무 것도 모르고 열심히 살았지만 전쟁 중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피해자라는 입장에서 나오는 겁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이러한 피해자 행세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말합니다. '치열하게 꿈꾸며 살았으니 아름다웠다고, 그리고 이런 꿈꾸는 사람들을 짓밟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속에는 전범국가인 일본이 저지른 죄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같은 언급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시대 상황과는 상관 없이 열심히 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투기 제로센을 만들었던 호리코시 지로는 꿈을 꾸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추앙받습니다. 역사 인식이 부족한 일본인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예전까지 개념발언을 했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습니다. 반일감정을 반한감정과 연관시켰다는 것은 가장 최악의 수를 둔 것이며, 병기를 만들었고 실제로 그 병기가 전쟁에서 사용되었는데 범죄자라 낙인을 찍으면 안된다, 즉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으니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실드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다른 일본인들과 역사 인식 차원에서는 다른 게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반일감정은 반한감정도 발생시킨다. 저는 동아시아가 평화롭기를 마음 속 깊이 바란다. 영화를 보고 보지 않고는 개인의 자유다. 어떻게 볼 지도 개인의 자유다. 다만 저는 고뇌하면서 성실하게 이 영화를 제작했다. 이 점만은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 8월 30일 한국언론과의 인터뷰

 

원문 http://media.daum.net/entertain/culture/newsview?newsId=20130830092007688

 

'나에게는 회색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시대를, 당시 청년이었던 아버지는 "좋은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살다보면, 전혀 무해한 인간으로 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기를 만들었다고 해서 범죄자라는 날인을 찍는 것도 어딘지 이상하다.'
'차는 사람을 해치기도 하고 구하기도 한다. 그런 게 기술이며, 기술자는 기본적으로 중립적이다.'

- 7월 14일 일본언론과의 인터뷰

 

원문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family/1360/read?articleId=1147684&objCate1=&bbsId=G003&searchKey=subjectNcontent&itemGroupId=&itemId=15&sortKey=depth&searchValue=%EB%AF%B8%EC%95%BC%EC%9E%90%ED%82%A4&platformId=&pageIndex=1

 

만화의 신, 故 데즈카 오사무의 한 인터뷰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가 얼마나 안일하게 만들어졌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무척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마저도 아름다웠노라는 식으로 포장되는 것, 이것이 추억의 본질입니다. 예를 들어 '그 옛날 전쟁중엔 이랬지. 그때가 좋았는데' 하던 것이 '훌륭한 전쟁이었어. 누가 뭐래도 위대한 시대였다고'와 같은 위험한 발언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 전쟁을 묘사할 때도 제작자의 메시지를 담는다면 괜찮지만, 전쟁을 단순하게 묘사하기만 하는 것은 큰 죄악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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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센은 일본 해군의 군사적 의도로 만들어진 전투기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는 이 사실을 외면한 채 

"우리는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드는것 뿐이야"

제작자의 순수한 의도만을 부각시킨다면서 말도 안되는 포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존재 자체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일본이 전범 국가라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일본이 가진 잘못된 역사 인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람이 분다의 국내 상영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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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인터뷰]

미야자키 하야오의 주장은 "이 작품은 전쟁을 규탄하는 것이 아니며, 제로센의 우수성을 선전해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꿈에 충실한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제작 의도에 대해서도 호리코시 지로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쓰인다는) 의식은 안 했겠지만 그가 만든 비행기는 태평양 전쟁에 쓰였다. 그렇다면 ‘그가 단지 열심히 살았다고 죄가 단죄되는 것인가?’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2013년 7월 14일의 교도통신과의 인터뷰를 보면 미야자키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무기를 만든 인물의 영화를 제작해도 되는지 갈등도 있었다. 그래도 살다보면, 전혀 무해한 인간으로 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기를 만들었다고 해서 범죄자라는 날인을 찍는 것도 어딘지 이상하다.

전쟁은 안된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는 일이다. 그래도 일본인은 전쟁의 길을 택했으니 지로에게 책임을 지우더라도 어쩔 수 없다. 차는 사람을 해치기도 하고 구하기도 한다. 그런 게 기술이며, 기술자는 기본적으로 중립적이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더더욱 민감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영화를 봐줬으면 하는지.

▶반일감정은 반한감정도 발생시킨다. 저는 동아시아가 평화롭기를 마음 속 깊이 바란다. 영화를 보고 보지 않고는 개인의 자유다. 어떻게 볼지도 개인의 자유다. 다만 저는 고뇌하면서 성실하게 이 영화를 제작했다. 이 점만은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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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특유의 서정적 2D 화면에는 전쟁을 일으켜 파멸해가는 나라 덕에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비행기를 만들 수 있었던 호리코시 지로의 아이러니가 담겼다. 또한 지로와 동시대를 살았던 일본 문학가 호리 타츠오의 소설 속 아프고도 아름다운 로맨스가 비극의 시대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전쟁에 대한 직접적 묘사가 최소화된 가운데 히노마루(일장기)를 단 모든 비행기가 추락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왜 하필 논란의 위험이 있는 제로센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를 주인공으로 삼았나.

▶그의 젊은 날 사진 한 장이 심금을 울렸다. 부끄럽다. 논란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그릴 만한 인물이라고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무기를 사용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자'는 데 대한 의문은 저와 스태프에게도 있었다. 정의는 보장되지 않고, 시대의 왜곡 속에서 꿈이 변형되고, 고뇌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살아야만 하는… 그런 건 사실 현대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 운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의식은 안했겠지만 그가 만든 비행기가 태평양 전쟁에 쓰였다. 내가 열심히 살아왔다고 해서 무조건 면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저는 '이웃집 토토로'를 어린이들이 밖에서 뛰어 놀길 바라는 바람으로 만들었지만 결국엔 아이들이 집안에서 TV를 보게 됐다. 간단치가 않다. 열심히 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지 않나.

 

-'바람이 분다'라는 제목은 '바람이 분다, 그러니 살아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시에서 따 왔다. 어떤 의미를 담았나.

▶세계이며, 생명이며, 시대다. 바람은 산뜻한 바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대의 거센 바람, 방사선을 포함한 독이 든 바람도 불어댄다. 동시에 바람이 일어나는 것은 생명이 빛나는 증거이기도 하다. '세계는 있다. 세계는 살아있다. 나도 너도 살아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지 않으면 안된다'고 이해하고 있다.

 

-전쟁무기를 만든 인물을 미화했다는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나.

▶미화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많이 있겠지만 제 신념은 흔들리지 않는다.

 

[머니 투데이 2013년 8월 30일자]

 

 <바람이 분다>가 한 개인의 꿈과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미야자키 : "역사인식이라는 점을 설명하자면 동시대에 발생한 많은 사건, 학살, 약탈, 전쟁에 대한 묘사하지 않았다. 의도해서 동시대의 사건은 건드리지 않았다. 이는 역사책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해해야 할 내용이다. 역사적으로 무지하거나 선량한 사람들에 대해선 스스로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작품은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 필름을 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잠깐 기다리게 하고 한 소년으로 돌아와서, 어려웠던 진심의 시대에 살아 본 것이 이번 <바람이 분다> 작품이다. 답이 되리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라는 구약성서의 한 구절 말씀이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시대의 어둠을 업고 갈 순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시대가 어디로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통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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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ard Hughes

전투기 개발/ 수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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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roni (1886-1957) [Wiki]

전투기, 폭격기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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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가 한국에서 우익논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자 "반일감정은 혐한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나는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일감정 때문에 전쟁을 비판한 자신의 작품에 색안경을 끼고 보고있고, 니들이 그렇게 매사를 보니까 일본에서도 한국을 싫어하는 거다라는 발언. 상당히 불쾌해하는 뉘앙스가 강하다. 바람이 분다는 반전을 테마로 한 작품임을 생각하면 이렇게 불쾌해 할 만도 하다. 실제로 바람이 분다는 우익들이 좋아할 만한 배경 소재일지언정 절대 우익들의 사상과 같거나 그에 동조하는 주제 의식을 담은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일본 제국주의가 한 소년의 꿈을 서서히 망가뜨려가는 내용은 우익들이 싫어할 만한 이야기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더불어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사람이 미야자키 하야오일 거야. 어린 시절 나를 텔레비전 앞에 앉아 눈이 빠지도록 열중하게 했던 <미래소년 코난>도 그의 작품이라는 걸 한참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 나는 그 유명한 <센과 치히로의 모험>, <천공의 성 라퓨타>,<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등을 봤지만 딱히 긴 감상문을 적을 만큼 꼼꼼하게 기억하지 못하는데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워. <바람이 분다> 때문에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실망했다는 사람들이 많던데 나는 그의 작품보다는 인터뷰에서 '반일 시각이 반한 시각을 만든다.'고 발언한 것이 실망스럽긴 했어. 일본 사람이기 때문이겠지만 대가의 품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었지. 나 역시 작품은 작품으로 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점에서 그는 분명 위대한 작가이자 감독이지. 인정! ㅎ

 

글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일본 식민지배의 피해 당사자인 한국 사람 입장에서 이 영화는 불편하지 않을 수 없어. 그렇지만 그러한 감정에 몰입되어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손해가 아닌가 해. 꼭 공감을 가지고 볼 이유까지야 없겠지만 전쟁 발발의 장본인이자 패전국 국민으로서 일본인이 느꼈을 심정을 따라가보는 것도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해. 현재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태인 것은 아베에 이어 스가 내각으로 이어지는 일본 정치의 보수성과 우익성에 기인한 부분이 크겠지만, 우리 정부가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도 일정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봐. 난제 중의 난제이지만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묘책들을 양국의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찾으려 애써야 겠지. 어쨌거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만화영화에 대한 나의 생각을 그 뿌리에서부터 뒤바꿔 놓았고, 현존하는 위대한 감독 중의 한 명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