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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바람이 분다 -- 미야자키 하야오(2013) 수정본

by 길철현 2021. 6. 8.

 

2013년에 나온 이 작품은 지금까지 나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이다(그는 신작 [어떻게 사나](How do you live)를 한창 제작중인데 출시까지는 좀 시간이 걸릴 듯하다). 팬터지적 요소가 강한 그의 전작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실존인물의 일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우선 주목을 끈다.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 나는 이 영화가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조사를 해 보니 역시나 실존인물을 토대로 하여 제작했다고 나왔다. 그런데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는 사실이라기엔 너무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어 또 여기저기 자료들을 좀 더 조사해 보니 비행기와 관련된 주인공의 일은 전기적 사실을 어느 정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사랑 이야기는 호리 다쓰오가 1937년에 발표한 영화와 동명의 소설에서 플롯의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고 한다(주1). 감독은 이러한 사정을 영화의 마지막에 "호리코시 지로/ 호리 다쓰오에 경의를 표하며"라는 문구를 넣어 묵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실존인물인 호리코시 지로가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주력 전투기인 제로센의 설계자였다는 점은 일본의 식민지배로 신음해야 했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그 때문인지 그의 최대 히트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우리나라에서 2백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불러 모으며 높은 평점을 얻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영화는 10만 명이 조금 넘는 관객들만 관람했으며, 평점도 아주 낮게 나왔다(주2). 비판적인 입장에 선 다수의 핵심적인 주장은 '전쟁 미화'와 '남성 우월주의'인데, 반대로 이 영화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반전'의 요소를 읽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일본인이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본이라는 나라를 생각할 때,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자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에 앞서, 우리 역사에 임진왜란과 식민지배라는 커다란 상처를 남겼고, 그 결과 육이오라는 동족상잔을 겪게 되었으며, 현재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2차세계대전 후 전범으로 재판을 받거나 하진 않았지만, 일본 주력 전투기의 설계 담당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에 거부감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감정적인 거부감만 앞세우다가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놓쳐버리고 말 것이므로, 역지사지의 태도로 일본인인 감독은 2차세계대전을 어떻게 보는가, 아니 그런 거시적인 입장은 아니더라도 주인공인 호리코시 지로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가를 섬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주3). 

 

먼저 영화의 제목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바람이 분다](風立ちぬ)라는 제목은 앞서 이야기 한 대로 호리 다쓰오의 동명의 소설에서 차용한 것이나, 이 말은 사실은 폴 발레리의 장시 [해변의 묘지]에 나오는 구절로 더욱 유명하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구절 '바람이 분다. . . 살아야겠다'를 영화 첫 부분에 제사로 삽입했을 뿐만 아니라, 남녀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와 사토미 나호코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두 인물을 통해 원어인 불어로 말하게 한다. 대략적으로 읽어 본 [해변의 묘지]의 핵심이 '죽음의 불가피성 앞에서 역으로 삶에의 의지를 다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 또한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의 일과 사랑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를 추적하고 있다. '바람'이라는 말은 한 두가지 의미로 못박기엔 그 은유적 의미가 너무나도 다양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대체로 '사건'이나 '사건의 현장'과 연결된다. 비행기를 향한 주인공의 꿈, 사토미 나호코와의 만남(두 사람의 첫 번째 만남과 재회에서는 실제 바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과 곧이어 일어나는 관동 대지진, 나호코의 죽음, 그리고 2차세계대전. 이러한 점은 영화에 인용되는 또 다른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누가 바람을 보았나]를 통해서도 한층 더 부각된다(주4). 

 

실제 바람이든 비유적 의미의 바람이든 그 양면성을 제목이 내포하고 있으며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영화를 통해 그러한 바람 속에서의 인간의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살펴보려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택한 것일까? 이에 대해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의 젊은 날 사진 한 장이 심금을 울렸다. 부끄럽다. 논란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그릴 만한 인물이라고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무기를 사용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자'는데 대한 의문은 저와 스태프에게도 있었다. 정의는 보장되지 않고, 시대의 왜곡 속에서 꿈이 변형되고, 고뇌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살아야만 하는… 그런 건 사실 현대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 운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머니 투데이, 2013년 8월 30일자]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그가 호리코시 지로를 주인공으로 택한 또 다른 이유는 비행과 비행기, 그리고 20세기 초에 대한 그의 지대한 관심(이러한 관심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 [마녀 배달부 키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그의 많은 영화에 반영되어 있다)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비행기 설계자가 창조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만화가이자 만화 영화의 제작자로서 자신이 느꼈을 창조의 고뇌라는 일종의 동질성도 있었을 것이다. 이 밖에 2차세계대전 당시 그의 아버지가 무기 생산 공장을 운영했는데, 부품의 일부가 제로센에 사용되었다는 개인적 연결고리도 있다. 

 

또 하나 덧붙여 생각해볼 부분은 감독이 주인공의 비행기 제작이라는 일에서는 전기적 사실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주인공의 사랑이라는 부분에서는 소설에서 대부분을 차용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전기와 허구가 기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영화는 호리코시 지로라는 실존 인물을 토대로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와 상관이 없는 인물이라는 이중적인 면모를 띤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영화의 주인공을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면서도, 또 동시에 역사적 실제 인물로만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게 한다.

 

흥미롭게도 호리코시 지로는 라이트 형제가 처음으로 성공적인 비행기를 제작한 1903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가 비행기 설계자라는 꿈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난다는 것은 인류가 아주 오랜 시간 꾸어온 꿈이고, 20세기 초는 그 꿈이 실현된 시기인 동시에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기술적인 난관이 놓여 있던 시기였다. 영화 도입부에 비행기를 타고 자유롭게 비행하던 주인공이 무기를 가득 실은 비행선의 등장으로 추락하고 마는 꿈 장면은 주인공의 앞날을 그대로 암시하고 있다(주인공의 십대 시절은 1차세계대전이 있었던 시기라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비행기를 향한 호리코시 지로의 꿈이 인류의 오랜 염원과 연결되며 그가 처음부터 전투기를 설계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으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그를 전투기의 제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꿈의 결정체인 제로센이 일본의 주력 전투기라는 점에서, 더 나아가 이 전투기가 중일 전쟁과 진주만 공습에 사용되었으며, 마지막엔 가미가제의 전투기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이 패전국이 되고 말았다는 점에서, 주인공은 책임과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볼 때 그는 일본 군국주의의 앞잡이 내지는 조력자라는 점이 명백하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잠시나마 일본인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비행기에 대한 자신의 꿈을 열정적으로 추구해나갔고 좋든 싫든 자신의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이 비판의 대상만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측면도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역사적 상황에 둔감하지 않은 인물로 제시되고, 감독 역시도 바람의 양면성과 마찬가지로 비행기라는 아름다운 꿈이 갖는 양면성--하늘을 나는 꿈을 실현시켜주는 당대 기술의 결정체인 동시에 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있으며, 또 전시에는 전투기나 폭격기로 인명을 살상하는 가공의 무기이자 조종사를 비롯한 탑승자들 역시도  죽음을 직면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주인공이 동경해 마지 않는 이탈리아의 비행기 설계자이자 제작자인 카프로니 백작은 이 영화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갖는데, 주인공의 꿈에 등장해 1,2차세계대전이 있었던 20세기 전반의 시대 상황 속에서 아름다운 비행기의 설계라는 꿈이 갖는 의미를 진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그 진단은 호리코시 지로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기도 하다. 1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십대 초반인 주인공의 꿈에 처음으로 등장한 카프로니는 호리코시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저 [많은 폭격기들] 중 절반도 돌아오지 않지, 적의 도시를 불태우러 가는 거다. 하지만 전쟁은 곧 끝난다.

 

그리고 그는 전쟁이 끝나고 나면 많은 승객들을 태울 항공기를 제작할 것이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주5).

 

비행기는 전쟁의 도구도 장사의 수단도 아니다.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이고 설계사는 꿈을 형태로 만드는 사람이다. 

 

영화는 주인공이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꿈이 시대적 상황과 맞부딪히며 어떻게 변형되고 왜곡되고 마는가를 추적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1920년대와 30년대의 비행기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는데, 이 당시 비행기 설계사와 제작자들이 당면한 문제는 안전하면서도 빠르게 날 수 있는 비행기를 어떻게 양산할 것인가였다. 영화에서는 실패를 거듭하며 성공에 이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와 함께 일본의 기술력이 구미의 그것보다 이십 여년 뒤쳐져 있다는 것(아시아를 벗어나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탈아입구론), 그리고 일본의 가난(30년대의 공황은 전 세계적인 것이고 그것이 2차세계대전의 원인 중 하나이다) 등 당시 일본의 상황도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주인공이 30년대 유럽 여행 도중 환상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된 카프로니 백작의 말은 비행기가 갖는 양면성을 피라미드에 빗대며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와 없는 세계 자네는 어느 쪽을 더 좋아하나?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인간의 꿈은 저주받은 꿈이기도 하지.

 

비행기는 살육과 파괴의 도구가 되는 숙명을 가지고 있네.

그래도 난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를 선택했어.

 

피라미드, 특히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자 고대 과학 기술의 결정체이지만 동시에 그것의 축조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랐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카프로니 백작의 말은 다소 위험스럽기도 하다. 주인공은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조를 하지는 않고 '전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자신의 원래 꿈을 부각시키는 선에서 멈춘다. 호리코시 지로는 자신의 아내 사토미 나호코가 결핵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시점에 당시로서는 혁신적이라고 할 제로센을 완성하여 사람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지만 정작 본인은 그다지 기뻐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이 부분은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가 일기에서 밝힌 대로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부분과도 연결된다(주6). 그 다음 장면에서는 엄청난 폭격을 당하는 일본의 모습과, 무덤을 이루고 있는 제로센의 잔해들이 제시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터뷰에서 "동시대에 발생한 많은 사건, 학살, 약탈, 전쟁에 대해 묘사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장면들은 패전 당시의 일본의 상황을 담은 [반딧불이의 묘]처럼 가해자로서의 일본의 모습에는 발을 빼면서 피해자로서의 일본의 모습은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 장면에 이어지는 카프로니 백작과의 환상 속 마지막 재회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꿈을 좇아 십 년 동안 최선을 다해 달려왔지만 역사적 상황은 자신의 노력을 오히려 악몽으로 바꿔놓아 버렸다고 결론을 내린다. 

 

한국인인 나의 입장에서 볼 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 영화가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전쟁을 미화했다'는 비판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데에서 오는 선입견이 너무 앞서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전쟁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일본인으로서 감독이 느끼는 감정은 또 그것대로 복잡미묘한 것이어서 그것을 섬세하게 좇아가려 하다 보니 명료한 답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농담처럼 등장인물 중 한 명이 내뱉는 말("일본이 근대국가인가?")이나, 독일의 히틀러 정권을 일컬어 "깡패 집단"이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군국주의나 파시즘, 또 그에 따른 전쟁 등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드러난다(주7). 

 

어쨌거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논란의 소재가 되는 한 인물이 추구한 순수한 꿈과 그것이 시대라는 그물 속에서 어떻게 일그러지는가를 섬세하게 구현하려 했고, 더 나아가 그 인물의 허구적인 사랑 이야기와 큰 무리없이 연결시켰다. 그런데 역사적 실존인물이자 논란의 소지가 많은 비행기 설계자인 호리코시 지로의 일을 구현해 내는데 너무 집중한 탓인지, 그의 사랑 이야기는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다. 얼핏 보기에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지고지순하며 우리가 꿈꾸는 사랑을 구체화해서 보여준 듯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도 없으며 다만 당시 불치병에 가까웠던 결핵으로 인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파국을 초래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호리코시 지로의 시점만이 부각될 뿐 사토미 나호코는 너무 평면적이고 빈약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이 점은 이전의 그의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명백해지는데, 그녀는 그의 데뷔작인 [루팡 3세 : 칼리오스트로의 성]에 나오는 공주 정도로 평면적이다. 35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자 주인공이 인물로서의 생동감을 상실한 채 평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가 전작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나우시카나, [천공의 성 라퓨타]의 해적 엄마, [마녀 배달부 키키]의 키키, [모노노케 히메]에서 양면성을 지닌 에보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의 치히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의 소피 등을 통해 매력적이고 입체적이며 능동적인 여성인물들을 창조해 온 것을 생각해 볼 때 더욱 의아할 따름이다.

 

20세기 전반기 수동적인 삶의 살아야 했던 여성들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부유한 집안의 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취미라는 것 외에 우리가 그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두 연인 사이에 있을 갈등을 허락하지 않는지 모르지만 멜로드라마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어쨌거나 이 영화에서 사토미 나호코보다 호리코시의 여동생 카요가 오히려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는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작품이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은 이런 점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금까지 나온 마지막 작품인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볼 때 아름다운 작품이고 공들여 만든 작품이다(일본인들이 강조하는 장인 정신이 잘 드러난다). 관동 대지진(이 지진은 우리 한국인에게는 또 다른 측면에서 큰 비극이다)의 묘사를 비롯하여 일본의 20세기 전반을 잘 담아내었으며 시대와 개인적인 아픔에 대해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절제하면서도, 인간의 삶이 지닌 아름다움과 즐거움과 슬픔과 아픔, 힘겨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말미에서 호리코시 지로가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는 부분은 삶의 모든 바람을 총체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지리라. 

 

(주1)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쓰오의 소설은 결혼한 지 1년만에 폐결핵으로 죽은 자신의 아내와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2) 네이버에서 5.1, 다음에서는 그보다 낮은 4.7을 받았다. 네이버로 그의 작품에 대한 평점을 조사해보니 거의 모든 작품이 9점을 넘었고, 가장 낮은 [벼랑 위의 포뇨]도 8.22였다. 우리 나라 관객들 또한 이 작품 이전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공감하면서 보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주3) 만약 내가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사전 지식없이 이 영화를 접했다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현재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올해 3월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필두로 두어 달에 걸쳐 그의 영화 열 편을 모두 보고 또 감상을 간단하게나마 적어 나가면서 한 마디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환경 문제 그리고 비행기(특히 비행기가 처음 등장한 20세기 초)에 대한 그의 관심, 세상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그의 따뜻한 시각 등에 주목해 온 나로서는 특히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심한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소재를 그가 택한 것을 두고 쉽게 '전쟁 미화'라고 못박을 수는 없었다.

 

(주4) 이 영화에서 바람이 양가성으로 다가온다면(셸리의 대표작인 [서풍부]에도 그러한 양가성이 잘 드러난다), 그룹 퀸의 대표곡 중의 하나인 [보헤미안 랩소디]에 나오는 '어쨌든 바람은 분다"(Anyway the wind blows)라는 구절은 그 파괴성에 좀 더 무게추가 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13년 8월 30일자 [머니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감독이 직접 밝힌 제목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세계이며, 생명이며, 시대다. 바람은 산뜻한 바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대의 거센 바람, 방사선을 포함한 독이 든 바람도 불어댄다. 동시에 바람이 일어나는 것은 생명이 빛나는 증거이기도 하다. '세계는 있다. 세계는 살아있다. 나도 너도 살아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지 않으면 안된다'고 이해하고 있다.

 

(주5) 안타깝게도 1919년 그의 첫 번째 상업 비행기가 추락해 15명 내외의 탑승자가 모두 사망하는 사고를 겪었다. 이 사고는 이탈리아에서의 첫 번째 상업 비행기 사고이자 치명적인 것이었다. 더 나아가 1921년에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항공기를 제작하는데 이 역시도 두 번째 시험 비행에서 추락하고 만다. 이 추락 장면은 영화에 삽입되어 있다. 

 

(주6)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과 전쟁에 돌입했을 때의 그의 심경을 적은 부분을 위키피디아에서 옮겨본다.

 

When we awoke on the morning of December 8, 1941, we found ourselves — without any foreknowledge — to be embroiled in war... Since then, the majority of us who had truly understood the awesome industrial strength of the United States never really believed that Japan would win this war. We were convinced that surely our government had in mind some diplomatic measures which would bring the conflict to a halt before the situation became catastrophic for Japan. But now, bereft of any strong government move to seek a diplomatic way out, we are being driven to doom. Japan is being destroyed. I cannot do [anything] other but to blame the military hierarchy and the blind politicians in power for dragging Japan into this hellish cauldron of defeat.

 

(주7)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2004년작 [에비에이터](The Aviator)와 이 작품을 비교해 보면 2차세계대전에 대한 승전국과 패전국의 입장이 얼마나 다른가 하는 점이 잘 드러난다. 이 전기 영화의 주인공인 하워드 휴즈는 호리코시 지로처럼 비행기 설계에 전념한 인물이 아니라 다방면에 손을 댄 억만장자이자, 그가 제작에 관여한 비행기도 실제로 2차세계대전에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전투기 등을 제작하기 위해 국방 예산을 받아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2차세계대전의 참상에 대해 일말의 가책을 느끼거나 하는 부분은 영화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며, 더 좋은 성능의 비행기 개발을 위해 박차를 가하는 모습만 부각된다. 2차세계대전이 한축에서는 당시 구미 각국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경쟁과 그 갈등에 기인한 것이므로 그 책임은 패전국뿐만 아니라 승전국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