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2”를 아는 것과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서로 다르다. 둘 다 지식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앞의 수학적 지식은 원리를 통해 알 수 있고, 뒤의 과학적 지식은 경험과 관찰을 통해 알 수 있다. 철학적 용어로 앞의 것은 아프리오리한 지식이며, 뒤의 것은 아포스테리오리한 지식이다. 어떤 면에서는 연역법과 귀납법의 관계와 비슷하지만, 그것들은 논증을 위한 논리학적 추론 방법이고 아프리오리/아포스테리오리는 인식론의 개념이라는 차이가 있다.
문구 자체의 의미를 보면, 아프리오리는 ‘앞선 것으로부터’라는 뜻이고 아포스테리오리는 ‘뒤의 것으로부터’라는 뜻이다. 보통 아프리오리는 ‘선천적’, 아포스테리오리는 ‘후천적’이라는 말로 번역되지만 선천/후천은 딱딱한 개념어인 데 비해 아프리오리/아포스테리오리는 라틴어의 일상적 문구라는 점에서 어감이 사뭇 다르다.
이 평범한 라틴어 문구들이 철학의 개념으로 등재된 데는 칸트(Immanuel Kant:1724~1804)의 노력이 크다. 칸트가 등장하기까지 유럽의 철학적 전통은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둘의 차이는 주로 인식론에서 두드러졌다. 근대 철학의 선구자로서 합리론에 속하는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인간이 원래 본유관념(本有觀念)을 가지고 있어 인식활동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경험론의 극한까지 밀고 나간 흄(David Hume: 1711~1776)은 단순한 경험의 반복 이외에 체계적인 인식이란 없다고 보았다.
특히 칸트는 흄 덕분에 “독단의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며 흄의 영향력을 인정했다. 칸트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흄은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의 연관성과 인과율을 모두 거부하고 철학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다. 지금까지 관찰한 까마귀들이 모두 까맣다고 해서 “모든 까마귀는 까맣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장차 까맣지 않은 까마귀가 나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런 흄의 회의론은 날카롭지만 인식 자체의 불가능성을 주장함으로써 철학이 더 이상 나아갈 길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칸트는 인식 주체 안에 인식을 가능케 하는 기본 형식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즉 인식은 대상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주체가 주체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을 칸트는 아프리오리한 인식이라고 말했다.
수학적 지식은 당연히 아프리오리하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이라고 해서 순전히 아포스테리오리한 것만은 아니다. 칸트의 시대에 대표적인 과학은 칸트 자신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뉴턴(Isaac Newton: 1642~1727) 역학이었다. 칸트는 경험과 관찰로만 전개되는 것처럼 보이는 뉴턴 역학에도 아프리오리한 측면이 있다고 보았다.
모든 사건에는 ‘언제’와 ‘어디’, 즉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이 요소들은 경험 이전의 선험적인 것이다. 뉴턴 역학은 운동과 힘을 주로 다루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시간과 공간을 기본 형식으로서 전제해야 한다. 이 점에 착안한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존재와 인식의 공통적인 형식으로 간주했다. 모든 존재(인식 대상)는 마치 수학의 x축과 y축처럼 시간과 공간의 좌표 위에 놓이며, 인간의 인식 메커니즘 역시 시간과 공간을 기본 형식으로 내장하고 있다. 이렇게 인식 주체의 아프리오리와 인식 대상의 아포스테리오리가 일치하기 때문에 인간은 정신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건방진방랑자] 블로그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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