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가는 길에> (23일)
<완주군>
왕궁저수지를 탐방하고 인근의 저수지 몇 개를 또 찾았다.
<익산 들어와서>
왕궁저수지 등 저수지 순례를 마치고 들어온 익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고(인구가 30만에 육박), 유흥시설이나 모텔이 엄청나게 많아서 놀랐다. 익산시 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것이 1977년에 있었던 이리역 폭발사고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어난 사건임에도 그 폭발사고는 엄청난 위력으로 내 뇌리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동하의 단편소설로 기억되는데 사실과 정확히 일치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폭파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의 정황을 다룬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작품의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고 저자도 이동하인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80년 전후에 출간된(읽은 것은 85년 이후이지만) 그 소설을 다 읽으면서 "이건 이리역 폭파사고를 다룬 것이잖아"라고 했던 것이 떠오른다. 인터넷에서 조사를 해보아도 찾을 수가 없어서 이 부분은 불확실한 채로 둘 수밖에 없다. 그 다음으로 다시 한 번 이 사건을 떠올리게 된 것은 2014년 정도에 본 장률 감독의 [이리]라는 영화였다. 2008년도에 출시된 이 영화는 폭발사고 후 30년이 지난 익산시(구 이리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 엄청 암울한 영화였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조사를 하다가 김남중의 [기차길 옆동네](2004), 박범신의 [더러운 책상](2007), 김호경의 [삼남극장](2017) 등도 이 때의 폭파사고를 중요한 모티브로 한 소설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삼남극장은 폭파사건이 있을 당시 이 극장에서 공연중이던 하춘하를 이주일이 업고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이 사고로 시의 명칭도 바꾼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있었는데 명칭을 바꾼 것은 1995년 시군의 통합 때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시내에는 학교나 마을금고 등에 이리라는 명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24일 새벽>
아침 일찍 잠이 깨어 뻐근한 허리도 달랠 겸 다섯 시 좀 넘은 시각에 고요와 어둠에 잠긴 익산 시내를 둘러보았다. 문화예술의 거리와 익산역, 익산역 뒤편을 중심으로 한 시간 정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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