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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호수행

학저수지[강원 철원군 동송읍 오덕리](20220501)

by 길철현 2022. 5. 12.

[소개] 안내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인 1923년(1912년, 1921년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곳도 있음)에 조성되어 유서가 깊을 뿐만 아니라 만수면적 또한 152헥타르에 이르는 대형저수지이다. 저수지의 명칭은 인근에 있는 금학산(金鶴山)에서 유래했다. 금학산이라는 이름은 학이 내려앉은 모양과 닮은 데서 비롯했는데, 그 이름이 이 저수지까지 이어졌다. 이름에 걸맞게 두루미(학), 백로 등의 철새들이 많이 찾는다. 2017년부터는 낚시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저수지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넉넉잡고 1시간 20분 정도면 한 바퀴 다 돌 수 있다. 노을도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오기도 한다고. 또 저수지 인근에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63호)으로 유명한 도피안사가 있다. 

 

[탐방기] 강원도 철원은 이제는 익숙한 곳이지만 나에게는 분단상황과 맞물려 금지된 곳, 혹은 신비스러운 곳이라는 이미지가 오래 지속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군복무 중이던 1987년도에 읽은 김주영의 [쇠둘레를 찾아서]라는 아주 사실적인 단편이 준 인상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주된 내용은 원래의 철원읍이 민통선 이북에 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헤매는 그런 것이다). 또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7년도에 3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올라가다가 연천군에서 철원군으로 넘어가는 지점 어디에서 민통선에 막혀 돌아나온 기억 또한 그런 이미지를 강화하였다(그 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 도로는 약간 더 북쪽까지 포장도 되고 통행 또한 자유로워졌다). 

 

철원은 해방 이후 북한 땅이었다가 육이오 이후에는 일부 수복되었고, 1963년 철원군과 비슷한 사정에 있던 김화군을 편입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육이오 이후 철원군의 중심이었던 철원읍(구철원)은 대부분 민통선 이북에 속한 상태라, 철원군청은 갈말읍 신철원리에 자리하게 되었다. 철원읍(구철원)이 민통선 이북에 있어서 그 존재를 알 수 없었던 나는 지금까지 이 학저수지가 위치하고 있는 동송읍이 구철원이 아닌가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1980년 동송면이 읍으로 승격된 것이라는 걸 이번 기회에 확인할 수 있었다. 

 

학저수지는 대략 2000년을 전후하여 몇 번 찾았고 한 번은 저수지 둘레를 거의 한 바퀴 다 돌았다(당시 내 마음을 더 끌었던 저수지는 인근의 토교저수지였다. 그런데 300헥타르가 넘는 초대형 저수지인 토교저수지는 민통선 내에 있어서 제방에서 완상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그 때만 해도 낚시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둘레길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던 것이 떠오른다. 올해 초에 문득 이 저수지가 떠올라 한 번 찾아보려 했으나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이날 기회가 닿아 새롭게 조성된 둘레길을 따라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내 어림짐작으로 이 저수지의 만수면적이 50헥타르 부근이 아닐까 했으나, 실제 만수면적은 그 3배에 달했다. 평지형 저수지로 늪과 비슷해서 사방팔방으로 물이 들어찰 여지가 많아서인 듯했다. 만수면적대로라면 둘레길을 걷는데 최소한 2시간 이상이 걸릴 테지만, 학저수지의 둘레길은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구간도 있고 해서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도로 변의 빈 공간에 차를 세워두고 제방을 기준으로 시계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평지에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서 계곡형 저수지를 걸을 때의 스릴감이나 아기자기한 맛은 없었지만 편안하게 걷기에 좋았다. 주위의 야산과, 또 저수지 상부에서 보는 금학산은 제법 그럴 듯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을 확 사로잡을 뭔가가 없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저수지 상부에 이르렀을 때 저물어가는 해와 구름이 빚어내는 풍경이 흥미로웠으며, 개와 함께 산책을 나온 아주머니는 개가 자꾸 달아나는 바람에 애달아 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