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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호수행

파로호1[강원 화천군, 양구군](20220502-03) 타일랜드 참전기념비/파로호유원지선착장

by 길철현 2022. 5. 12.

[소개] '파로호는 일제 강점기에 전력 생산을 위해 건설된 화천댐으로 형성된 호수이다.' 화천댐은 1944년에 완공되었으며, 파로호의 총저수량은 10억 2천만 톤이고 만수면적은 38.9㎢이다. 북한강 상류에 위치한 이 호수는 강원도의 화천군과 양구군 두 개의 군에 걸쳐 있으며, 일산(1190m), 병풍산(796m), 월명봉(719m) 등 높은 산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어서 그 경관이 아름답다. 그리고, 잉어·붕어·메기·쏘가리 등 담수어가 많이 서식하고 있어서 낚시터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명칭의 유래 및 변천] 화천댐 준공 당시 이 지역 사람들은 대붕호(大鵬湖)라는 명칭을 제안하였으나, 일제가 공식적으로 사용한 명칭은 대명호(大䳟湖)였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은 '화천저수지'였다. 해방 후 38선 이북인 이 지역은 북한 땅으로 편입되었고, 북한은 '화천저수지'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했다. 육이오 전쟁 당시 이 지역에서 중국군을 대파하는 전과를 올린 것을 기념하여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쳐부순 호수'라는 뜻에서 '파로호'(破虜湖)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 오늘까지 통용되고 있다. (월간조선, 미래한국 참조)

 

(월간조선) 1944년 일제(日帝)가 건설한 화천댐을 마을 사람들은 대붕제(大鵬堤), 저수지를 ‘대붕호’라고 불렀다고 일부 인사들은 주장한다. 일제가 공식적으로 사용한 명칭은 대명제(大䳟堤), 대명호였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은 ‘화천저수지’였다. 그러던 것이 이승만 대통령이 국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거둔 승리를 기념해 ‘파로호(破虜湖)’라는 휘호를 내리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미래한국)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중공군을 괴멸시켜 더 이상의 남진을 저지하는 전과를 올리자 1955년 11월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쳐부순 호수’라는 뜻에서 ‘파로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탐방기]

 

- 기억을 되살리며

 

파로호는 예전에 화천에서 대붕교를 건너 461번 지방도로를 타고 달리다 숲 너머로 얼핏 보았다(1990년대 말 쯤이었으리라). 그 당시에는 호수에 그렇게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호숫가로 내려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기억이 분명하지는 않은데 대붕교가 준공되기 이전인지 구만교를 건너다가 좌측에 '화천수력발전소'를 보고는 그것을 댐이라고 오인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도 불분명한 기억이지만) 파로호의 물이 지류인 간척천까지 넓게 채우고 있는 것을 보고 파로호가 엄청 크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했다.

 

그렇긴 하지만 파로호는 나에게는 여전히 전체적으로 미지의 곳이었고,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탐방을 해보기로 했던 것이다. 탐방 전에는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예상 외로 파로호는 곳곳에 볼거리를 선사하였으며, 산과 호수가 잘 어울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거기다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파로호 주변의 화천과 양구 지역에 대한 기억들도 좀 더 통합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 하루 전

 

오후에 서울을 출발하여 철원군의 [학저수지]로 향했다. 43번 국도를 타고 포천군 영북면을 지날 때 [타일랜드 참전기념비]를 다시 보게 되었다. 몇 번 그냥 지나쳤는데 이번에는 한 번 둘러보자는 생각에 계단을 올라가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먼 이국 땅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천 명이 넘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태국식 불교사원

철원군의 [금연저수지], [학저수지]에 들른 다음 화천으로 향했다. 56번 국도를 타고 수피령을 넘어 461번 지방도, 5번 국도를 타고 화천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나들이 삼아, 혹은 심란할 때 이쪽으로 차를 몰고 자주 나왔는데 오랜만에 들르니 감회가 새로웠다. 

화천에 도착하니 8시 반이 다 되어서 식당들도 거의 문을 닫은 상태였다. 다행히 늦게까지 하는 뼈다귀해장국집을 찾아 민생고를 해결하고, 조용해 보이는 곳으로 숙소를 잡았다. 

조명을 밝힌 [화천국민체육센터]

 

- 첫째 날

7시 30분 경에 숙소를 나서 화천읍내의 북한강변에서 사진을 두 장 찍었다. 5월로 들어섰지만 이른 아침의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다. 

화천대교

461번 지방도로를 타고 달리다 대붕교를 건넌 다음 좀 더 나아가다 [파로호유원지선착장]으로 들어섰다. 이 선착장으로는 처음 들어섰는데, 구름에 산봉우리가 가린 채 파로호가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곳은 육로로 갈 수 없는 오지 마을로 들어가는 선착장 역할을 하는 곳으로 파로호의 입구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측 상류 쪽으로는 조그만 섬도 하나 보였다. 행정구역상 이곳은 구만리에 속하며, 이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북한강의 구석에 있으므로 구마니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화천댐 완공 이전에는 화천-양구간에 골짜기가 많고 구비구비 돌았다하여 아홉九자와 일만萬자를 따서 구만리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구만리라는 명칭은 이 호수의 원래 이름으로 제안되었던 대붕호와 잘 어울린다. 그리고, 올해 6월부터는 이곳에서 평화의 댐까지 운항하는 유람선이 정식 운행을 시작한다고.

이곳에 있는 식당 중 한 곳에서 기르는 듯한 이 개는 붙임성이 워낙 좋아서 처음보는 나에게도 경계심을 드러내기는커녕 내 앞에 와서 친근감을 표시했다. 발 부분의 털 색깔이 다른 것이 특이했다.

선착장을 벗어나 좀 더 차를 몰고 가자 도로공사가 한창이었고, 터널까지 뚫고 있었다. 이 쪽에는 좌대들이 많이 떠 있었다.  

중간에 보이는 제방(말골수중보)은 간척천이 파로호로 이어지는 곳에 조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