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날
하늘엔 흰 구름 두어 점 떠있을 뿐으로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봄날의 햇살이 따사로이 내리쬐는 4월의 어느 날. 소풍의 날이 있다면 이런 날이 틀림이 없을 텐데도 재잘재잘 웃고 떠드는 한 반 아이들 옆에서 수람이는 자꾸만 어깨가 움츠려 드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람이 어머니는 수람이가 일어나기도 훨씬 전, 수람이가 꿈나라를 거닐고 있을 적에 서둘러 김밥을 싸두고는 나가셨다. 시장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셨던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에 소풍날이라고 쉴 수는 전혀 없었다.
학교에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해보았으나 어머니와의 약속을 어길 순 없었다. 한 달 전쯤의 일이다. 수람이는 친구와 함께 수업을 빼먹고 산으로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어떻게 알았는지 어머니는 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굵은 회초리로 수람이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때리셨다. 아파서 엉엉 우는데 보니까 어머니도 소리 없이 울고 계신 것이 아닌가? 수람이는 어머니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맹세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는 꼭 나가겠다고.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들이 싸온 과자 나부랭이며, 엄마나 아버지로부터 받은 용돈을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풍이라는 것도 모두에게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일찌감치 알아버린 수람이는 자꾸만 아뜩해지는 지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만 했다.
보물찾기 시간. 아이들은 숨겨진 종이쪽지 찾기에 분주했지만, 아이들로부터 떨어지고 싶었던 수람이는 혼자 도랑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꽤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있을 수 있었다.
그 때, 물속에서 헤엄치며 놀고 있는 어린 물고기들이 눈에 띄었다. 그 물고기들이 너무나 귀엽고 신기해서 잡아보고 싶어졌다. 바지를 걷고 물속으로 들어간 수람이는 우울함도 잊어버리고 물고기 잡는 일에 정신을 몰두했다.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것 같아서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 사이엔가 같은 반 부회장인 은영이가 자기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얘, 고기 잡으면 나에게 한 마리 줄래.”
유난히 희고 고은 이를 살짝 드러내며 은영이는 애교 있게 말했다.
공부도 여자 중에서는 제일 잘하고 얼굴도 참 예쁜 은영이. 맵시 있게 빼입은 옷만 봐도 부잣집 아이라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는 그런 아이. 그런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보기에는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 같았으나 실지로는 몸놀림이 무척이나 빨라서 아직 한 마리 제대로 건드려 보지도 못했지만 수람이는 그때부터 더욱 더 기를 쓰고 매달렸다. 등에 연보랏빛 선이 나 있는 한 마리 작고 귀여운 놈을 손에 넣었다 싶은 순간 너무도 허둥댄 나머지 몸의 균형을 잃고서는 “풍덩”하고 그대로 물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 물고기도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고.
은영이는 무엇이 그리도 우스운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커다랗게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가슴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은영이의 웃음소리가 송곳처럼 수람이의 가슴을 쑤셔대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슨 커다란 구경거리라도 난 듯 우르르 도랑가로 몰려들었다. 수람이는 도저히 자기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리로 “꺼져”하고 고함을 질러버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따뜻한 봄 소풍날, 수람이는 도랑 속에서 석고상처럼 굳어가고 놀란 은영이는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1989년 1-2월로 추정)
(2009년 5월 20일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