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매미
그리하여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날까지
흙 속에 날개가, 입이 부서져
푸른 등을 땅에 대고 눕는 날까지
이 땅에 올라온 한 마리 매미가 우는 것은
짧고 단단한 목숨 때문은 아니다
한줄기 빛도 없는 흙 속에서
나무뿌리에 입을 대고 목청을 기른 시인,
벗겨진 허물들이 습작기의 원고로 쌓이고
음지에서 올라온 그는
남은 젖을 빨다 지친 아기처럼
마침내 나무등걸을 타고 오른다
그때 매미는 거칠은 나무껍질에서
부드러움을 발견하고 만 것일까
여섯 해의 긴 침묵을 견딘 자에게만 목청을 주는 세상.
신록의 이 거친 물결 위에 누워
마지막 허물을 벗기 위하여
그는 나무등걸을 오르게 된 것일까
매미는 목청으로 다른 매미들을 모으고
그 울음소리에 암매미떼 날아온 저녁
사랑은 짧고,
새로운 애벌레들의 행진,
그리하여 나무에서 떨어져 눕는 날에는
가장 부드러운 목청을 얻는 것이다.
[뿌리에게], 창비
(감상)매미의 일생과 그 대물림을? 존재의 신고와 탈각으로 해석하고 있는 이 시는 그 해석이 작위적인 냄새가 나는 것이 아쉽다. 이 시를 읽고 나는 다음과 같이 책에다 써놓았다. ‘시는 상상력의 힘으로 나아간다. 그 상상력이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시적인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 상상력의 “그럴 듯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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