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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호수행

연화지[경북 김천시 교동](20220818)

by 길철현 2022. 9. 4.

[소개] 경부고속도로에서 바로 보이는 '김천대학교'와 '경북보건대학교' 인근에 있는 이 소류지는 조선시대 초기에 조성된 아주 유서 깊은 곳이다. 저수지에 연을 가득 심어 놓아 연화지라는 이름이 연꽃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연화지(鳶嘩池, 솔개 연 바뀔 화)라는 이름은 1707년부터 11년까지 이곳 김산군의 군수였던 윤택이 솔개가 봉황으로 변해 날아오르는 꿈을 꾸고 나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연화지 내 북쪽의 섬에 위치한 봉황대의 원래 이름은 '읍취헌'으로 김산 관아의 북쪽 구화산에 위치하고 있었다. 윤택의 꿈에 등장한 봉황의 방향이 흡취헌 쪽이라 그 이름을 '봉황대'로 바꾸었다. 그러다가 1838년 군수 이능연이 봉황대를 연화지 내의 섬으로 옮겼다.

 

연화지는 1993년 김천시가 시민 휴식 공간으로 조성하여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저수지 주변에는 카페와 맛집들이 즐비하며, 넉넉잡고 20분이면 둘레길을 따라 저수지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또 오전 9시부터 5시까지는 돌다리를 건너 봉황대로 들어갈 수도 있다. 저수지 둘레에는 벚나무를 많이 심어두었는데 요즈음에는 벚꽃이 더욱 명물이 된 듯하며, 특히 야간에 조명을 받은 벚꽃이 아름답다. 

 

[두산백과]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에 있는 연못이다. 조선시대 초기에 농업용수 관개지로 조성된 저수지였다. 1707년 군수였던 윤택(尹澤)이 솔개가 봉황으로 변해 날아오르는 꿈을 꾸고나서 이러한 이름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물이 맑고 경관이 좋아 풍류객들이 저수지 한가운데에 섬을 만들고 정자인 봉황대(鳳凰臺)를 지어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 그 후 농업용 관개시설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었다가 1993년 김천시가 8,885평(29,372㎡)을 시민휴식공간으로 조성하였다. 

 

[탐방기] 직지저수지와 직지사를 찾아가는 길에, 경부고속도로를 지날 때면 내비에 늘 뜨는 저수지라 한 번 둘러보았는데, 뜻밖에도 조선시대 초기에 조성된 유서 깊은 곳인데다 김천의 명소 중 한 곳이었다. 평일인데도 주차한 차량들이 많아 길 끝에다 차를 세우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를 돌았다. 연꽃은 이미 거의 지고 연이 저수지를 가득 메우고 있어서 저수지 본연의 매력을 크게 느낄 수는 없었으나 저수지 중앙에 조성한 인공섬들과 봉황대는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그 역사가 오래된 것이나 인공섬 등은 경남 창녕군 영산면의 연지를 떠올리게 했다. 이안눌의 시, 그리고 김천 출신의 현대 시조 시인인 장정문의 시 몇 편, 또 연화지 바로 옆에 위치한 김천예술고등학교 출신의 김호중 등을 이곳에서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조금 덥긴 했지만 태양이 뜨거운 때를 좀 지난 오후라서 걸을만 했다.

이안눌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시인인데, 시에 나오는 금릉은 이곳 교동을 포함한 인근 지역을 가리키는 옛지명이다. 연화지 바로 옆에는 금릉초등학교가 있다. 위의 시는 밤 시간에 연못을 대한 느낌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김호중은 연화지 옆에 위치한 [김천예술고등학교] 출신이다.
장정문은 김천 출신의 현대 시조 시인으로 2019년에 타계했다.

[원문] 

김산읍내 십리길에 눈이 내리면
날 저무는 눈길 따라 밟아 오셨을 우물가
그 자욱을 찾아 혼자 나가보았지요
해종일 기다려도 오지 않는 십리길에
소록소록 그리움이 흰눈으로 쌓이는 밤
문풍지 흔들어 깨면 찬 바람만 왔다가네

김산읍내 십리길에 눈이 내리면
그 님을 찾아서 길 떠나는 어두운 밤
꿈길은 자취 없네 더욱 아득하여라
이 밤도 헤매다가 놓쳐버린 소매자락
눈물로 잡고 보니 싸늘한 새벽하늘
오늘도 애태우며 눈길 따라 찾아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