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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영국여행이야기

영국 여행 이야기, 어쩌다 보니 문학 기행(2) 책 정리

by 길철현 2022. 9. 26.

- 책 정리

 

여행기인데 책 정리라니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영국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이라 간략하게나마 적어본다. 

 

이 당시 나는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한 필수 과정인 종합 시험과 제2외국어 시험 등을 마치고, 콘래드의 작품들을 꼼꼼히 읽어나가고 있었다. 나의 과도한 '책 수집벽' 때문에 내 좁은 아파트가 감당하지 못하는 책들을 2009년부터 근처 주택가에 전세를 얻어 보관해 오고 있었는데, 이곳이 재개발되어 책을 옮겨야 했다. 처음에는 책을 보관할 다른 곳을 물색해 보았으나 그 사이에 전세가 많이 올랐다. 게다가 책을 갖고 있다는 것이 나의 수집벽과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는 면과는 반대로 실제로 그 책들을 이용하는 빈도는 낮았다. 한 마디로 가성비가 너무 떨어졌다. 그럼에도, 주로 이곳저곳 헌 책방들을 돌아다니며 산 책들을 떠나보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깊어지던 가운데,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결정적인 한 마디를 했다. 다양한 이력을 지닌 그는 경영학을 전공하기도 했는데, "니가 책을 보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매달 새 책을 최소한 열 권 이상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비용 효용성의 측면에는 내가 얻는 심리적 만족감이 잘 반영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 책 보관방에는 대략 7천 권 정도의 책이 있었는데, 그 중 3천 권 정도를 처분하고 나머지 4천 권 중 2천 권 정도는 다시 아파트로 올리고, 또 2천 권 정도는 대구의 어머니 집으로 보냈다. 폐지 수준을 약간 상회하는 헐값에 책들을 처분하고, 또 이리저리 옮기고 하는 일들은 생각보다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다. 책을 옮기느라 허리에 부담이 많이 간 탓인지, 아니면 내 경제적 능력의 부족으로 책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처지에 대한 불만이 작용한 것인지 급기야는 허리를 삐끗하고 말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 전세금을 돌려받으면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구체화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