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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영국여행이야기

영국 여행 이야기, 어쩌다 보니 문학 기행(4)입국에서 숙소까지

by 길철현 2022. 10. 2.

사람들의 뒤를 따라 입국 수속을 밟으러 갔다. 수하물을 먼저 찾는 줄 알고 심사대를 좀 지났다가 직원에게 물어보고는 다시 돌아왔다. 공항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인도 쪽 사람들인 듯했고, 머리에 터빈을 두른 시크 교도도 눈에 띄었다. 대기줄이 길어서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증빙 서류를 준비하라는 안내 문구가 보였는데, 숙소 주소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고, 비행기표는 이메일에 그대로 있는 데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간당간당해서 좀 긴장을 했다. 거기다 입국 심사장 내에서는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연결할 수도 없었다. 내 앞에 있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애들은 여권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등 긴장을 풀려는 방편인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입국 심사대의 직원은 처음에는 내가 숙소를 5일밖에 예약하지 않을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을 듯했으나, 영문학을 가르친다고 하니까 대단히 우호적인 태도로 간단하게 통과시켜 주었다. 다음은 좀 검은 피부에 몸집이 좀 있던 여자 직원(여자라는 것 외에는 기억이 너무 어렴풋해 확신할 수는 없다)과의 대화 내용이다.
 
What is your purpose of visiting? 
Mainly to do some sightseeing and to buy some books for my dissertation. (이 말은 몇 번 연습을 해두었다.)
You are staying 2 weeks? (나는 입국신고서[Landing Card]를 다 적고 난 다음에야 대문자로 적으라는 문구를 발견하고는 다시 써야 했다. 13일이라고 썼는데 직원은 2주라고 바꿔서 말했다.)
Yes, I will visit Lake District and Haworth.
Haworth. Where is that? 
You know Emily Bronte's place. (좀 부정확하게 말했다. It is where Emily Bronte lived[에밀리 브론테가 살던 곳이다]가 좀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아니 브론테 자매들이 살던 곳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직원이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넘어갔다.)
You are a Lecturer. What do you lecture?
English Literature.
Have you been to England before?
This is my first time. 
OK, have a nice trip. 
 
(여행의 목적이 뭔가요?
주로 관광을 좀 하고 또 논문에 필요한 책들을 몇 권 사려고요.
2주간 머문다고요.
예, 호반 지역과 호어스를 찾으려 합니다.
호어스. 거기가 어디죠?
에밀리 브론테의 장소지요.
강사라고 했는데요. 뭘 가르치나요?
영문학요.
영국에 온 적이 있나요?
이번이 처음입니다.
좋아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수하물인 트렁크는 이미 나와 있었다. 이제야 진짜 영국 땅으로 들어온 느낌이 났다. 첫 번째로 해결할 일은 지하철을 타는 것이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으니까 지하로 내려가라고 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니 올라가기만 했다(나는 Where can I take tube or subway?라고 물었다. 영국에서는 지하철을 가리킬 때 underground를 많이 쓴다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그렇게 말이 나왔던 듯하다. 하긴 tube라는 용어도 자주 쓰는 편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 모르는 것 투성이라 끊임없이 물어야 했고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만큼 낯선 환경에 처한 것이다). 어떤 여자분이 집채만 한 가방을 카트로 옮기려다 나 때문에 엘리베이터로 들어오지 못했다. 다시 내려와 옆 쪽으로 갔더니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었고, 자동 발매기도 있었다. 여행안내 책자에서 읽은 대로 교통카드인 '오이스터 카드'(Oyster Card)를 구입했다. 구입 비용 5파운드(상당히 비싼데 돌아올 때 환불을 하지는 못했다. 다시 영국에 가면 사용해야지 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에 충전 30파운드. 충전은 'topup'이라는 생소한 영국식 영어 단어였다.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지하철이 와 있어서 일단 타고 보았다. 히스로 공항에는 5개의 터미널이 있는 듯했는데, 내가 있는 곳은 4터미널이었다. 공항이 시 외곽에 있으니까 시내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 지하철이 숙소가 있는 패딩턴(Paddington) 역으로 가는가를 물어보았더니 모른다고 했고, 지하철 안내도를 보아도 히스로 공항을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역이 너무 많아서 외곽에 있는 역들은 표시를 못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함과 답답함에 불쾌지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하철의 높이와 플랫폼의 높이가 안 맞는 것도 불만이었고, 지하철의 객차도 너무 작았다. 무엇보다 외부온도가 10도가량인 데다, 지하철 안에 있으니 내 두터운 파카가 나를 너무 답답하게 해 땀이 삐질삐질 날 정도였다. 여행안내 책자에 실린 지도책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일본인이 나를 좀 도와주었고, 좀 뒤에는 한국 사람도 도와주었다. 그들은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이 지하철이 '피카딜리 노선'(Piccadilly Line)이니까 '얼즈 코트'(Earl's Court) 역에서 갈아타면 된다고 했다(영국의 지하철 노선은 우리처럼 숫자로 된 것이 아니라 각 노선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여행 전 안내 책자에서 읽어서 알고 있었다). 

지하철의 본고장이자 국제적 대도시답게 런던의 지하철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일단 내려야 할 역을 알고 나니 좀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맞은 편 나와 좀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 나를 보고 웃어서 엉뚱한 상상력이 발동했다. 고급 매춘부인 그녀는 나를 유혹한 다음 내 돈을 모두 뺏아간다. 그녀는 영화 [테이큰]에 나오는 주인공의 딸을 연상시켰다. 
 
얼즈 코트 역에서 패딩턴 역으로 가는 플랫폼까지는 쉽게 이동했는데, 어느 쪽에서 타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일단 오는 지하철을 타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했고, 그럼 다른 쪽이어야 하는데, 거기도 아니라고 했다. 한 흑인 여성에게 물어보았더니 처음 물었던 곳에서 타라고 했다가 갑자기 반대편에서 오는 지하철을 타라고 했다. 뭐가 뭔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어쨌든 그녀의 말을 좇아 지하철을 탔고, 얼마 뒤 패딩턴 역에서 내리 수 있었다(이건 방향이 같더라도 중간에 갈라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종착역이 어디인지를 잘 봐야 했다. 나는 피카딜리 노선에서 디스트릭트 노선(District Line)으로 건너왔고, 그중에서도 '에지웨어 로드'(Edgware Road) 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야 했던 것이다. 런던에 머무는 5일 동안 주로 지하철로 이동을 했는데 한 동안은 계속 어려움을 겪다가 나중에는 좀 익숙해졌다. 하지만 마음을 놓는 순간에 또 한 번 실수를 해서 다른 곳으로 가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패딩턴 역에서 숙소인 'ABC 하이드 파크'(Hyde Park) 호텔까지는 4백 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인데다 휴대폰에 저장해 둔 안내도로 보아도 찾기가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듯했다. 하지만 지하철 역을 찾고 환승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런던 스트리트를 거쳐 서섹스 가든스(수섹스, Sussex Gardens)까지 별로 헤매는 일 없이 한 번에 도착하자 이렇게 쉽게 찾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도로명이 나와 있지 않은 아랫길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옛날식 판석(flagstone)이 깔린 아랫길 어디에도 ABC 호텔은 없었고 서섹스 가든스에는 아예 건물이 없었다.

판석이 깔린 길

상황이 혼란스러운 대로 좀 헤매다가 옆에 지나가는 중동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그 근처가 맞긴 한데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지도에 나온 대로라면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했는데, 간당간당하는 배터리에 가슴을 졸이면서 트렁크를 끌었다. 비슷비슷한 건물이 옆 건물과 틈도 없이 붙어 있었고 거기다 호텔 밀집 지역인지 수십 개가 넘는 호텔들이 열 지어 있어서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헤매고 헤맨 끝에 호텔을 찾게 되었는데 내가 길을 물었던 곳에서 불과 20미터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혼돈이 일어난 것은 지도가 너무 상세했던 탓이었다. 호텔 앞에 있는 진입도로까지 표시해 둔 걸 나는 뒷길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한 번 꼬여 버리자 풀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도로명이 없다는 것에 좀 더 주목을 했더라면 시행착오를 줄 일 수도 있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