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나 파키스탄 쪽 출신인 듯한 여성이 나를 맞아 주었다. 싱글룸인 내 방은 조그만했지만 그런 대로 깔끔한 편이었다. 텔레비전이 높은 곳에 달려 있고 책상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사실 시설은 며칠 전 경기도의 전곡에서 들렀던 모텔보다도 못했다. 친구가 운영하는 여행사에 부탁을 해서 저렴한 곳을 얻은 것인데, 조식을 포함하여 8만 원 정도였다(이것도 비수기라 이 정도라고 했다. 영국의 물가는 확실히 우리보다 많이 비쌌다). 무엇보다 충전이 급선무였는데, 변환기를 꽂는데에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 이 때 시각은 영국 시간으로 저녁 8시(한국 시간 오전 5시) 경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났으니 24시간 이상이 지나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 할 듯해 거리로 나갔으나 마땅한 식당을 찾을 수가 없어서 가게에서 맥주만 하나 사가지고 들어왔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햇반을 하나 꺼내 커피포트로 끓인 물에 10분 이상 담궈 두었지만 전자레인지에 돌렸을 때처럼 먹기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햇반에다 컵라면, 참치, 김 등으로 포식을 한 뒤 가족 밴드에 간단하게 도착 소식을 알리고 텔레비전을 좀 보다가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10시(표시가 없으면 영국 시간) 경에 잠이 들었는데 1시 반 정도에 깼다. 꿈에서는 아직도 책을 이리저리 옮기며 정리를 하고 있었고, 어디에 부딪히기라도 했는지 왼손이 좀 부어 있었고 구부리려니까 통증이 심했다. 한 번 깬 잠이 다시 오지 않고 해서 새벽 2시가 넘은 시각에 거리로 나가 보았다. 이 부근에는 고층 건물은 없었고 5층 내외의 다소 고풍스러워 보이는 전형적인 서양식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쪽 거리가 번화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역에서 내렸을 때, 또 저녁을 먹으로 나왔을 때에는 펍과 식당에 사람들로 넘쳐났다. 금요일 저녁이라 더 그랬는지도. 게다가 새벽 2시가 넘은 시각에도 여기저기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거리를 좀 걷다가 숙소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좀 시청했다. 컨테이너 창고에 든 물건을 통째로 사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대체로 수익을 내는 가운데 잃은 사람도 있었다.
한국을 떠나 머나먼 영국에서의 첫 날, 길고 길었던 하루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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