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지역에서 전개된 3·1운동을 주도하였던 박용화(朴容和)·박성요(朴性堯)·황우경(黃宇京)·황금채(黃金彩)·문재동(文載東)·정판동(鄭判同)·최용철(崔容澈) 등 애국지사 7인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이 기념비는 원래 충화면의 박영규(朴榮圭)가 충화면 출신인 박용화·박성요·최용철을 비롯한 애국지사 7인의 행적이 사장되는 것을 우려하여 1972년 3월 6일 자신의 소유지에 작은 규모로 세운 것으로 시작되었다. 1986년 박영규가 충화면 복지회관 신축 부지로 기념비를 세운 땅 300여 평을 부여군에 희사하여 복지회관을 건립한 뒤 기념비를 그 맞은 편으로 이전하였고, 1998년 2월 박영규의 장남 박종련(朴鍾連)이 다시 자비로 기념비의 규모를 확대하여 재건립하였다. 이후 관리 소홀로 방치되었던 것을 2005년 12월 충화3·1독립운동의거선양위원회가 주관하여 기념비와 좌대를 다시 높게 개조하고 좌우에 원래의 기념비와 안내비를 배치하는 등 주변을 정비하여 지금에 이른다. 2016년 4월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충청남도의 3·1운동은 충화면에서 시작되었다. 천도교 교도였던 박용화 등은 교주 손병희가 서울에서 3·1운동을 주도하다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팔충리의 박용화 집에 모여 만세 시위를 함께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1919년 3월 6일 오전 7시경, 부여군 임천면 읍내로 가서 박성요는 곳곳에 선언서를 붙이고 황우경은 시장 곳곳에서 연설을 하며 주민들에게 독립만세를 함께 부를 것을 권유하였고, 이에 호응하는 주민들과 함께 면사무소와 임천공립보통학교로 이동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들은 재판에 회부되어 박성요·황우경은 징역 1년, 박용화·문재동은 징역 7월, 최용철은 징역 6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정판동·황금채는 태형 60대의 형벌을 받았다. 후에 박성요·황우경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박용화·문재동·황금채·정판동에게는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두산백과)
[탐방기] 부근에 있는 복심저수지에 들렀다가 충화면으로 아점을 먹으러 가는 길에 발견한 곳이다. 전국적으로 임진왜란과 3*1운동과 관련된 유적들이 많이 있는데(우리나라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 이곳은 충청남도에서는 최초로 3*1운동 일어난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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