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와 잠을 잘 땐 대부분 그렇지만 이 날도 일찍 잠을 깼다. 어제의 내가 아니라는 생각, 그것이 허탈하게 끝났던 아니던 이제 나는 성년의 문을 들어섰다는 생각이 내 머리속에 꽉 들어박혔다. 좀 더 잠을 잘까 하는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그 보다는 책을 읽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는 노신의 [아큐정전]을 폈다.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이 길로 내몰았을까? 이것은 지극히 타락한 생활이 아닐까? 아니다, 이건 하나의 경험이다. 작가에겐 온갖 종류의 경험이 필요하며, 닥쳐오는 하나하나의 경험을 세심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제 너의 꿈은 무너졌고, 신비는 허무함으로 판명났으니 네 발길을 돌려라. 서울로. 더 이상의 방황은, 네 보답받지 못할 사랑도 이젠 그만이다. 그래, 침잠, 침잠, 침잠, 수백 번 되풀이 한다 해도, 너는 그 말 이외에는 다른 대답을 찾을 수 없을지니. 아니, 떠나자. 홍도나 흑산도 정도가 아니라. 더욱 먼 곳으로. 석양을 노래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래, 떠오르는 태앙을, 희망을 노래하자. 그것으로 나는 새로운 생명을 얻고, 복음을 (무슨 복음, 혹시 볶음을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 전하는 것이다.
9시 조금 넘어서 나는 여관을 나섰다. 누군가 내 정사를 엿본 것 같은 기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래, 비싼 걸로 먹자. 돈 걱정은 하지 말자. 이번과 같은 여행을 언제 다시 할 수 있을런지. 어제 봐둔 삼계탕 집으로 향했다. 아직은 이른 시각이어서, 또 아침부터 삼계탕을 먹는 게 맞는지 아닌지가 신경에 쓰였으나, '이제 난 성인이다. 그러한 소심증으로부터 벗어나 당당히 행동하자'라는 속삭임이 어디선가 들려와, 과감히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벌써 두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반찬이 굉장히 푸집했다. 열 가지도 넘는 반찬에다, 마른 인삼, 디저트로 수박까지 곁들여서 나왔다. '이래도, 여긴 얼마 안 하겠지. 만약 대구나 서울에서 이렇게 차린다면 얼마나 받을까?'
삼계탕 맛을 안진 얼마 안 되었지만 내 구미에 잘 맞았다. 비싸지만 않다면 자주 사먹고 싶은 음식.
다 먹고 계산을 하려고 하니 콩을 간 물을 유리잔에 담아 가지고 나왔다. 가격은 오천 원, 싼 가격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음식을 생각해 볼 때 결코 비싼 편이 아니었다. 너무 잘 먹어서였는지 나는 우산을 잊어버리고 그냥 나왔다.
제주도 행 배를 타기 위해 [목포 여객 터미널]로 갔다. 오전에 출항하는 배는 9시에 떠나 버렸고, 그 다음은 오후 네 시에 출항하는 페리 2호였다. 제주도에 간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가보지 못한 도. 신혼 여행지로 점 찍은 곳. 그러나, 나에겐 결혼이란 없다.
먼저 나는 114로 [상업 은행] 전화 번호를 알아내, [상업 은행]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알아냈다. 당당하게.
4시까지의 시간을 땜질하기 위해 나는 다시 남일 극장으로 향했다. 어젯밤의 첫경험이 너무나도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인지 나는 완전히 독오른 색마가 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자기 전에 한 번, 또 아침에 일어나서도, 그녀가 나의 자지를 애무해주던 모습을 상상하며, 또 나의 자지가 한 번 파묻혔던 그 깊고 넓은 동굴을 그리며, 또 어제는 극장 화장실의 낙서를 보며, 미친 것일까? 나의 욕구, 성적인 욕구가 이다지도 강하단 말인가? 왜 나는 이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는가? 왜 욕구는 억제되어야 하고, 노출시켜서도 안 되고, 말해서도 안 되는가? 독오른 짐승, 열망, 결코 채워지지 않는.
영화는 단순한 스토리를 아주 재미나게, 첨단 기술과 돈의 위력을 살려 만든 것으로 별 부담없이 즐길만 하였다. 이 영화에서도 사랑을 노래했다. 우리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아니 악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사랑이리니, 오 사랑이여, 거룩한, 그러나 너무도 거짓과 밀접한.
영화를 보고 나와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요번 여행을 나는 되도록 즐기면서, 그리고 돈의 구애를 받지 않고 보내려고 했기 때문에 볼링장으로 갔다. 혼자 들어설 때의 어색함이 나를 약간 망설이게 했으나, 이내 그 기분, 부딪혀 보자.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나는 새로워진 나다. 손님은 별로 없었고, 아가씨 한 명이 젊은 남자에게 점수 계산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처음엔 점수가 78점밖에 나오지 않아 남들 보기가 부끄러웠다. 종업원 아가씬 나에게 폼을 제대로 하라고 이야기 했다. 그 말에 오기가 생겼던 것일까? (종업원 아가씨의 말은 옳은 것인대도, 그래 나의 폼은 엉망이야, 그런데도 왜, 왜, 화가 나는 것일까? 일깨움에 대한 화. 너는 못 생긴 놈이야. 그래 그렇다. 왜?) 연거푸 네 게임을 더쳤고, 마지막 게임은 154점으로 나의 신기록이었다.
수면 부족, 과도한 자위행위로 몸이 피곤할 만도 했는데 별로 고단함을 느끼지 못했다.
배를 타는 데는 신분증이 필요하다. 신분증. 그래 언젠가 강화도에서 석모도에 갔을 때, 그 때는 필요 없었는데. 그건 참 우스운 경험이다. 배삯이 오백 원밖에 안 하길래 얼마되지 않는 거리를 갈 거라는 건 미리 예측했지만, 30분 이상을 기다린 다음에 탄 배를 오 분도 안 되어서 바로 코 앞에 있던 섬에 내려주다니. 왜 헌병이 신분증을 검사하지? 당신은 군인들이나 감시하지, 왜 민간인까지. 물러나요. 그러나, 난 얌전히 학생증을 꺼내 주었다.
여행을 위해 배를 탄 것은 몇 번째인가? 강화도에 갔을 때, 중학교 수학 여행 때 한산섬으로 가기 위해. 그러나, 한 시간 이상 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내가 탄 페리2호는 그 때 탔던 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군함과 소형 보트의 차이랄까?
아기를 두고 여행을 떠나는 젊은 부부가 처음엔 아기가 자기들을 보면 울까봐 모습을 감추더니만, 나중에는 아기에게 손을 흔들어댔다. 아기는 자신과 부모와의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에 인식을 할 수 없었는지, 아니면 아마도 처음 보았을 부둣가 낯선 풍경이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해서인지 (아, 얼마나 어른의 입장에서 보는 것일까?) 부모의 손흔듬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선실로 들어가지도 않고 갑판 위에서 바다를 보며 가기로 마음 먹은 나는, 장장 일곱 시간 동안을 갑판 위에서 바닷바람을 쏘이며 가야한다, 갑판의 돌출부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내 옆에는 중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배가 출항하자 가부좌를 틀고 수도하듯 앉았다.
미지의 세계, 지금부터는 모두 새로운 것이다, 새로운 경험이다. 받아들이자, 마음을 열고, 하나도 놓치지 말고.
배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일정한 속력으로 제주를 향해 나아갔다. 아물아물하던 유달산도 시야에서 사라지고, 몇몇 신기한 암석들과 무인도들. 섬이 보이지 않는 바다 한 가운데 서면 바다가 똥그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확인할 곳은 없었다. 어딜가도 섬, 섬, 섬에 연이은 섬이.
한두 시간 그렇게 갑판 위에 있었을까? 바다의 풍경에도 싫증나기 시작해 나는 선실로 내려왔다. 시집을 꺼내 좀 읽으려고 했지만, 움직이는 물체 속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역시 어려워, 잠을 청했다.
여행의 후반부는 다소 지루했다. 단체로 관광 나온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대고, 고스톱을 치고, 술을 마시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뭔가를 같이 할 사람이 없었다.
열시 반 쯤 되었을까? 마침내 배는 제주항에 도착했다. 밧줄이 부두에 던져지고, 서너 명의 사람이 달려들어 그 밧줄을 당기고 묶고 하는 모양은 나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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