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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여행(90년대이전)

제주 기행 (2) 90년 8월 14일 - 20일. 성장이냐, 방탕이냐? [첫째 날, 8월 14일]

by 길철현 2016. 6. 21.

 

 

 

"그럼, 서울 올라갈 께."

"말라고 이렇게 빨리 올라갈라 카는지 모르겠대이. 집에 좀 있다가 가면 될낀 대."

 

나는 엄마에게는 서울로 올라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말하면 괜히 걱정하실 것 같고, 무엇보다 구속을 받지 않고 훌훌 떠나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 바로 옆에 있는 서부 정류장으로 갔다. 아직 휴가철이 끝나지 않아서인지 정류장은 붐볐다. 방학의 끄트머리를 멋있게 장식해야 방학이 멋있어 진다고 믿는 대학생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대학생은 우리 사회에 있어서 특권 계급이라는 생각이 요즈음엔 자주 든다. 소비할 시간도 많고, 부모로부터 용돈도 받지. (물론 풍족하지는 않겠지만.) 나 또한 그런 특권을 철저히 누리고 있지 않은가? 나의 여행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할 순 있겠지만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그러한 느낌을 버릴 수 없다.

 

별 망설임없이 나는 진주행 표를 샀다. 진주는 예전에 집안 일로 거창에 갔다가 대구로 그냥 오기가 서운해서 한 번 들러보았던 곳이다. 그 유명한 촉석루, 논개, 남강, 그러나 진주가 내 목적지는 아니었다. 나는 어딘가 먼 섬으로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서해안의 어느 섬에 가서 해가 지는 것, 일몰을, 아름다운 일몰을 구경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혼자 되어서 혼자 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개표구를 지나 차에 오르자마자 차는 출발했다. 떠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인간에겐 뿌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자기가 서 있어야 할, 그리고 자기가 지배해야 할 최소한의 공간이.

 

차는 구마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휴가객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고속도로가 밀릴 만큼은 아니었다. 몇 개의 낯익은 풍경들이 눈에 띈다. 광양에 있는 이모집에 갈 때, 부산 태종대에 갈 때, 그 때에도 나는 이 길을 달렸던 것이다. 창녕 근처의 커다란 못, 부산으로 가는 차가 중간에 들렀다 가는 남지.

 

구마고속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버스는 다시 남해고속도로를 탔다. 깜박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버스는 어느 새 진주로 들어서고 있었다. 버스를 내리자 말자나는 다시 삼천포 행 버스를 탔다. 삼천포가 나를 유혹한 것은 박재삼 시인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 나는 무슨 기대를 한 것일까? 길을 걷다가 우연히 그를 만날 것, 혹은 그를 찾아가는 나.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생각일 뿐,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생각일 뿐.

 

버스가 예정된 노선을 가지 않고 둘러서 가는지 사람들이 말이 많았다. 나는 지금 가고 있는 노선이 돌아가는 것이든 아니든 해변을 끼고 도는 코스가 마음에 들었다. 뱃사람 몇이서 "이리로 돌아가면 시내로 들어갈 필요없이 바로 부두로 가면 되겠네. 중간에 세와 돌라 그러자"라고 수근거렸다.

 

삼천포 시는 생각보다 훨씬 자그마한 도시였다. 내가 둘러본 몇몇 소도시들 중에서도 작은 축에 드는 그런 도시였다. 그렇더라도 내가 박재삼 시인을 만날 가망성은 희박한 것이고, 설사 만난다 해도 무슨 말을 할 것이냐? 목적 없는 떠돔이 항상 그렇듯이 나는 시외버스터미널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어디로 간다는 뚜렷한 의식도 없이, 그런데 흐린 날씨가 기어코 일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수퍼마켓으로 가서 우산을 하나 골랐다. 우산을 사기만 하면 잃어버리기 때문에 '싸구려' 우산 외에는 살 엄두도 못 냈는데, 내가 들어간 곳엔 천팔백 원이나 이천 원 하는 우산은 없고 비싼 것 뿐이었다. '왜 나라고 싸구려 우산만 사야 할까? 그래, 비싼 걸로 하나 사자. 좋은 걸 사면 우산을 잃어버릴 확률이 좀 줄겠지.' 협립양산, 그것도 자동으로 골랐다. 오천 원. 싸구려라면 두 개 사고도 돈이 남는다. 우산을 사가지고 나와 보니, 그새 빗방울은 멈췄다.

 

넓은 간선 도로를 걸었다. 내 앞에는 여학생 두 명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길 건너편에 있는 친구들에게 무어라고 고함을 쳐댔다. 그리곤 깔깔 댔다. 제법 큰 교회당을 지났다. 그 옆에는 조그마한 원불교 건물이 있었다. 두 종교의 건물이 나란히 있는 모습은 불협화음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얼마쯤 걸어갔을까? 내 앞에 가던 두 여학생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흘러가 버린 시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도로를 검은 자가용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갔다. 횡당보도 위에 사람이 있다는 걸 보지 못했는지 운전수는 차의 속력을 줄일 생각도 않고 그냥 달렸다. 급 브레이크. 바퀴가 도로면과 마찰하면서 내는 소리. 놀란 여학생 한 명은 피한다는 것이 옆으로 넘어졌다. 차가 친 것 같지는 않았다. 사고가 난 지점 바로 옆이 파출소라 두 명의 경찰관이 뛰어나왔다. 그들은 이런 사건이 생긴 것이 신이 난다는 투였다. 뭔가 돈 뜯을 데가 생겼다는 듯한 인상이었다. (이건 나의 지독히 심한, 편협한 선입견 때문이다.) 괜찮다는 듯한, 혹은 병원에 가는 것이 두렵다는 듯이 몸을 사리는 그 여학생을 지나가는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자가용 운전사도 "병원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여학생의 친구는 혼자 남겨졌다. 그녀는 병원까지 뛰어가기라도 할 듯이 혼자 인도를 달렸다. 운전사는 이런 사건(혹은 사고)이 일어난 것이, 파출소 바로 옆이었다는데 울분을 터뜨리고 있으리라. '쾅'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두 대의 차가 충돌한 직후였다. 뒤에 오던 차는 뒤집어져 쳐박혔다. 순간적인 정적이 흘렀다. 그러자, 지나가던 차들이 멈춰서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차문을 뜯어내고 사람들을 꺼집어내 차에 태워서는 병원으로 향했다. 앞의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왔다.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었다. 무서움, 무서움. 교통 사고, 삶과 죽음의 교차.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다는 게 웬지 두려웠다. 별달리 할 일을 찾지 못한 지금 해수욕이나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으나 해수욕장을 찾을 수가 없었다.

 

버스를 탔다. 버스 안내도엔 해수욕장이라고 표시된 곳이 있어서, 내 나름대로 거리를 추측해 보았으나 짐작이 가지 않았다. 얼마를 가다 내렸다. 시외버스 터미널 아랫쪽에 해수욕장 표시가 있었으므로, 부두 쪽(오른편에 있는)으로 버스를 탔던 나는 왼쪽으로 계속 걸었다. 안내표대로라면 분명히 눈에 띄어야 할 해수욕장이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묻는다는 것도 어색해서 물을 수도 없었다. (왜 길을 묻는다는 걸 그렇게 쑥쓰러워 했을까? 낯선이, 이방인이라는 게 나에겐 그렇게 두려운 존재인가?)

 

한쪽 어깨에 맨 가방이 점점 무거워져, 나는 그걸 등산용 배낭처럼 양 어깨에 매었다. 그래도 끈이 팽팽하지 않고 밧줄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어깨는 아팠다. 길을 잘못 들어 (나는 그곳이 꼭 해수욕장으로 가는 도로인 것만 같았는데) 한 시간 가량 헤매던 나는 이 지긋지긋한 삼천포를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삼천포를 벗어나서 갈 곳이라곤 없었다. 내가 바라던 서쪽은 이곳에서는 갈 수가 없었다. "남해"라는 지명이 내 눈에 띄었으나, 그곳에 가는 버스는 두 시간 정도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지도책을 펼쳤다. 자유롭다는 것은 선택을 요구한다. 이성복 씨의 시집 제목인 "남해 금산," 그리고 상주 해수욕장. 이 정도면 내 욕구를 만족시켜 주지 않을까?

 

일단 나는 진주로 향했다. 진주로 되돌아가서 한 번 살펴보는 거야.

 

남해 고속도로는 4차선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발파시 지시를 따르시오'라는 푯말이 눈길을 끌었다. '폭파, 바위가 깨어지고 산이 무너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면.' 진교 인터체인지를 지나 버스는 좁은 도로를 쉴 새 없이 달렸다.

 

끝없는 버스 여행이었다. 바다가 얼핏얼핏 보이는가 싶더니, 남해 대교가 눈 앞을 가로막았다. 책이나 잡지, 텔레비전에서 수 없이 봐온 탓인지 처음 보는대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상주 해수욕장에 도착한 것은 여섯 시 가량이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벌떼처럼 차에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난 꼭 무슨 일이 일어났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까 그들은 민박을 하는 사람들로 민박객을 구하는 중이었다. 휴가철이 끝나가는 지라 예전처럼 방이 차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끌어보려고 악을 쓰는 그들을 보며, 짜증이 먼저 치밀었지만 연민의 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돈'이란 것이 무엇인지, 우리들은 왜 거기에 목을 매는가? 붙잡는 손을 뿌리치고 나는 해수욕장으로 걸어나갔다. 해수욕장의 양쪽을 튀어나온 해안선이 감싸고 있어 포근한 느낌을 주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에서 일박을 하고 내일 아침엔 금산에나 올라가 봐야겠다'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민박객을 구하는 새카맣게 그을은 아주머니가 한 명 눈에 띄었다. 그녀는 내가 혼자 해수욕장에 온 게 의아하다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나에게 '민박 할 거냐'고 물어왔다. 나는 가격을 물었다. 오천 원. 적당한 가격이었다.

 

그 아주머니(할머니라고 부르기엔 좀 젊어보였다)의 집은 해수욕장으로부터 꽤 멀었다. 할머니는 "왜 혼자 오셨수, 예쁜 아가씨라도 데리구 오시지?"라고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누가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단 말인가? 혼자 되기 위한 여행, 홀로 떠나는 여행인데. 가게 앞 파라솔 아래 앉아 있던 젊은 사람이 나를 데리고 가는 여인을 보더니만 "할머니, 오늘은 많이 잡았소?"라고 말했다. 이 말은 내 기분을 퍽 나쁘게 했는데, 그건 내가 꼭 미끼에 물린 고기와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그녀 집에 있는 민박객들 모두는 그녀를 할머니라 불렀다)의 집은 전형적인 시골집인데, 민박을 위해 약간 개조한 것이었다. 문을 열고 그녀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가는데, 마당에 있던 사람들의 눈초리가 너무나 따가워 혼이 났다. 나의 자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혼자 여행한다는 건 이상한 일임엔 틀림이 없었다. 나는 할머니가 주는 방(그 방은 단체로 온 사람들이 자리잡은 방의 중간에 있었다)을 마다하고, 문 옆에 있는 조그마한 방으로 들어갔다. 여인숙이나 여관으로 가지 않고 민박을 잡은 것이 후회가 되었지만 지금에 와서 물릴 순 없었다. (민박을 온 사람들과 너무나 큰 이질감을 느꼈기 때문에.)

 

할머니는 '오늘은 늦어서 물에 못 들어갈 거다'라고 했지만, 내일 해수욕을 할 시간이 따로 있을 것 같진 않았기 때문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나갔다. 요번에도 나는 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했다. 만원 권 몇 장은 녹음 테이프 곽 속에 넣었다. 그러나, 세상은 아직 그렇게 흉흉하지 않았고, 이곳은 그래도 시골인 것이다.

 

물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동해안처럼 이곳도 밤이 되면 물에 못 들어가는 게 아닌가 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누군가 호각을 불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쨌다는 거지. 호각 따위가 뭐란 말인가? 길들여진 인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호각 소리.

 

물은 별로 차지 않았다. 얕은 곳엔 해초가 많아 물이 더러워 보였으나 조금 더 걸어나가자 물은 맑았다. 그리고 짰다. 깊은 곳으로 헤엄쳐 갔다.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물은 한 길을 넘고, 바다에선 평형이 가장 편했다. 고개를 내밀고 유유히 헤엄쳐 나가는 것. 파도도 별로 심하지 않았다. 만약에 쥐라도 나서 물에 빠져 죽게 된다면, 죽음을 두려워 말자. 미지의 공포에 맞서 나가자.

 

삼십 분 정도 수영을 하다가 나는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왠지 식사대가 비쌀 것 같다는 생각과 젖은 수영복 차림으로 밥 먹으러 들어간다는 게 쑥쓰러워(이 나의 지랄같은 과민증) 가게에서 빵과 음료수 등을 사가지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민박집으로 가는 어귀에서 뭔가 주먹보다 큰 것이 길을 떡하니 막고 서 있어 흠칫 놀랐으나, 나는 그게 두꺼비란 걸 이내 알아차렸다. 엄청나게 큰 놈이었다.

 

민박집에서는 단체로 놀러온 이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부른다면 나는 그들의 선배로서 차분히 한 마디 하리라. 나도 여러분들 같은 때가 분명 있었을텐데.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가고. 헛된 망상, 내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잠자리에 들기엔 이른 시각이라, 샤워를 한 나는 산책을 나섰다. 해수욕장 부근의 풍경은 어린 시절 자주 가던 유원지를 방불케 했다. 야구장(타격 연습장), 사격장, 링 걸기, 당구장, 탁구장 등등 없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피서객의 주머니를 노린다. 나는 오락실에 들어가 오락을 몇 판 했다. 어슬렁어슬렁, 이 골목 저 골목을 두리번 거리고, 이딘가에서는 '누굴 찾으시냐'고 나에게 묻기까지 했다. '아니요'라는 대답. 쑥스러워지는 발걸음. 그렇게 내 여행의 첫날 밤은 깊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