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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여행(90년대이전)

제주 기행 (3) 90년 8월 14일 - 20일. 성장이냐, 방탕이냐? [둘째 날 - 8월 15일]

by 길철현 2016. 8. 5.

 

[둘 째 날] (8월 15일)

 

밖에서는 노래를 부르며 떠들어 대고, 방안에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지 온 몸이 가렵고 이래저래 잠을 설친 밤이었다. '파도'에 대해 뭔가 시상이 떠오를 듯도 했는데, 막상 펜을 들자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시계를 보았다. 일곱 시가 조금 못 되었다. 세수를 하러 문을 열고 나오니, 다른 사람들은 아직 자고 있었다. 주인 할머니만이 마당을 쓸고 있었다.

 

주인 할머니 말로는 한 시간만 하면 금산에 오른다고 했다. 해발 666미터. 육육육이란 숫자가 [오멘]에 나오는 마귀 꼬마를 연상시켜 약간 불길한 느낌도 없진 않았지만, 그 보다는 이성복의 시집 제목 [남해 금산]이 나를 더 사로잡았다. 물론 나는 이 시집을 아직 읽진 않았지만, 이렇게 직접 금산을 다녀간 뒤에 그의 시를 읽는다면 뭔가 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았다.

 

금산으로 가는 차가 자주 있을 것 같지 않아, 걸어가다가 차가 오면 타고 안 그러면 금산까지 그냥 걸어갈 양으로 정거장을 지나 가는데, 차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되돌아가 버스에 올랐다. 아침 일찍부터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금산은 한려해상 국립 공원 중 유일한 산악 공원으로써 . . . .'라고 적힌 안내문은 별로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런 안내문은 어느 공원에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고 색다른 점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제 지나올 때 보니까 정상 부근의 바위들이, 물론 버스가 금방 지나가는 바람에 제대로 볼 순 없었지만, 멋있었는데, 오늘은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아서 봉우리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산길이었다. 제법 길이 넓었지만 처음부터 가파른 게 사람의 진을 빼놓을 것 같았다. 내 예측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덜어졌다. 처음부터 가파르던 산길은 그 기울기를 수그러트리기는커녕 산 정상 가까이까지 계속 가팔랐다. 몇십 분 걸은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혀 입으로 하하 소리가 새어나오고 윗옷은 온통 땀에 젖어 버렸는데 실지로 걸은 시간은 십 분 조금 더 지났을 뿐이었다. 나는 나와 같이 버스를 내린 누구보다도 빨리 정상에 올라야겠다는 쓸데 없는 일념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것도 참으며 악을 써서 걸었다.

 

무슨 놈의 산이 그런지,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난 것도 아니고 물이란 것은 구경할 수도 없었다. 섬이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계곡과 한 번도 만나지 않는 등산로는 처음이었다. 한 삼십 분 쯤 걸었을까? 샘터가 눈에 띄었다. 구세주를 만난 양 관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물을 마음껏 들이켰다. 단체로 올라가는 젊은 남녀들이 나보다 먼저 와 쉬고 있었다. 그들 말로는 앞으로 반만 더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여자란, 남자에 있어서 여자란? 여자에 있어서 남자란? 샘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 곳곳에는 커다란 바위들에 대한 안내문이 있었으나 자욱한 안개에 가리어 보이지 않았다.

 

옛날에 부처님이 남해를 건너갈 때 뚫고 지나가 생겼다는 쌍홍문은 그 모양이 기괴했다. 바위에 구멍이 두 개가 나 산 이편과 저편을 이어준다고나 할까? 왼쪽의 것이 더 커서 거기가 통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쌍홍문을 지나고 나자 한 방울 두 방울 듣던 비가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었는데, 어느 쪽으로 가도 정상으로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왼쪽 길을 택했다. 나이 든 할머니들이 언제 올라갔던지 벌써 내려오고 있었다. 빗방울이 굵어지고 바람까지 몰아쳤다. 정상 근처에서 행상을 하는 할머니 - 왜 이렇게 나이든 여자 투성인지 - 에게서 밀키스를 하나 사 목을 축이고 정상까지 내달았다. 상주 해수욕장과 다도해의 여러 섬들이 보일 곳이었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는 속에 구름인지 안개인지 만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정상에서 얼마 머물지도 못하고 내려온 나는 행상을 하는 할머니의 파라솔 밑으로 비를 피했다. 빗줄기는 좀처럼 가늘어질 줄을 몰랐다. 나와 같이 비를 피하던 사람들은 빗줄기가 가늘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냥 비를 맞고 내려갔다. 올라오는 사람도 없었다. 행상을 편 할머니도 비를 피해 약간 떨어져 있는 집에 (정상 가까운 곳이었는데도 집이 한 채 있었고 조그마한 밭도 있었다) 들어가 버렸다. 졸지에 나는 혼자가 되어 버렸다. 그냥 비를 맞고 내려가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신고 있는 신발이 완전히 젖어버리면 곤란하였으므로 비가 약해질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산에서 내리는 비는 금방 멈춘다는 믿음뿐만 아니라 나는 바쁠 것 하나 없는 처지였다.

 

나는 이러한 기회를 노려오지 않았던가? 완전히 혼자가 되어, 파라솔은 그러나 옆으로 들이치는 비를 막기엔 작았다. 바지 아랫부분은 흠뻑 젖었다. 신발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돌 위에 올라섰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것은) 어쩌면 이런 것이 절대 고요이리라.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빨리 비가 멈춰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머릿속엔 고등 학교 국어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춤을 추고, 원두막에서 비몽사몽 헤매는데, 물보라 이는 논둑길에서 이별하는 젊은 남자와 여승의 이야기. 

 

(덧붙임 : 이 때의 경험은 내 마음에 가라 앉아 있다가 8년 뒤 시 한 편이 되었다.

 

 

             

남해 금산

 

 

이성복과 엄원태가 찾았던 남해 금산

그 산을 나도 오르네

이성복은 깨어진 사랑으로 울음 속에 잠기고

병에 겨운 엄원태는

아름다운 어깨의 금산을 끝내 올려다만 보았다지

깨어질 사랑도 없고

두 다리엔 힘만 끓는 나는

호흡 채가는 경사를

남보다 몇 걸음이나 앞서 뛰어 오르네

쌍홍문 지나 정상 부근

불현듯 쏟아지는 소낙비에

사람들 물에 물 풀리듯 녹아들고

졸지에 혼자 버려지네

굴참나무 이파리는

튀어 오르는 빗방울까지 막지는 못해

신발 젖고 바짓가랑이 젖고

내 마음 한 켠도 젖어 떤다네

스물다섯 해, 짧지 않은 시간

사람들 사이, 그 사이에서 헤매이고

돌아오지 않는 짝사랑만 내 연인이었네

비는 자꾸 몰아쳐 비보라로 몰아쳐

나무며, 바위며 자꾸 갇히고

그 가운데 나도 자꾸 갇혀가네

 

                                      

                      (98년 6월 6일)

                      (00년 3월 16일)  )

 

비가 약간 사그러졌다. 할머니가 있다면 이럴 때 컵라면이나 하나 사먹으려 시간을 보낼 텐데, 그런데 진짜 행상 할머니가 나왔다. 맛도 모르고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는데 (내가 라면을 시키고 나자 비가 그쳤다.) 초록 상의를 입은 여인이 정상으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산을 오를 때 지나쳤던 여자였다. 혼자서 산을 오르고 있어서 나의 음험한 마음을 슬쩍 건드렸던 여인, 그녀와 나의 거리가 멀었지만 나는 그녀가 삼십은 넘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핸드백에서 사진기(그것도 고급이었다.)를 꺼내는 걸 보고 나는 문득 텔레비전에서 나온 한 여인을 상기했다. 사진 촬영이 취미라던 그 여인, 그 여인과 너무나 이미지가 비슷했다.

 

다시 비가 오기 전에 서둘러 내려가야지. 우산을 사놓고도 번번이 비를 맞는 바보가 이 세상에 또 따로 있을까? 비가 개이자 그 동안 봉우리를 감싸안고 있던 안개들도 걷혀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앞에 있는 꽤 높다란 바위로 올라갔다. 옆산의 기암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상주 앞바다도, 이름 없는 조그마한 섬들도. 고개를 돌리는데 예의 그 여자가 저만치 먼 곳에 있는 다른 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보다 좋은 전망을 얻기 위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바위 끝으로 나아갔다. 나는 저러다가 떨어지면 어떡하려구, 하는 조바심이 났으나, 한편으로는 떨어져라 떨어져라 외쳐대고 있었따. 그녀도 나를 본 것 같았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오는 길보다는 몇천 배 쉬웠다. 쌍홍문에서 오른쪽 갈림길으로 가 두 개의 굴을 보았는데 별로 신통한 것은 없었다. 올라갈 때는 그리도 아득해 보이던 길을 순식간에 내려왔다.

 

상주로 가는 버스가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광복절 휴일을 즐기기 위해 차를 몰고 속속 해수욕장으로 가고, 금산 입구 주차장에서 산봉우리 구경을 하고, 산밑에서는 내가 본 기암들이 어느 게 어느 것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자가용은 어느새 필수품이 되어 버린 것일까? 차가 있다면 여러 모로 편리한 점도 많겠지. 활동의 범위가 넓어지고 자유스러워지니까, 차는 급한 경우에는 침소로도 사용할 수 있겠지. 꽃 같은 아내를 태우고, 인형 같은  자식을 태우고 훨훨 나비처럼.

 

상주로 들어가는 사람은 나 말고도 또 한 사람 있었다. 그는 기다림에 조바심이 나는지 자가용을 탄 사람에게 상주로 들어가느냐고 묻고 있었다. '무언가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과감히 나서야 한다. 위축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걸 보여주는 표본이었다. 그는 상주로 들어가는 봉고차를 한 대 잡았다. 그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이 나오는 찰라 운전수는 오백 원의 돈을 요구했다. 그가 떠나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버스가 왔다.

 

11시 50분에 나는 순천행 버스를 탔다. 여행의 다음 목표지로 목포를 택했다. 거기서 홍도 쪽으로 구경 가 볼 예정이었다. 순천에 간다는 건 약간은 겁이 나는 일이었지만. (혹시라도 광양에 사는 이모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번 여행은 비밀스런 것인 만큼 이모라도 만나면 - 물론 그럴 확률은 아주 희박한 것이었지만 - 내가 서울로 가지 않고 이런 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게 금방 들통날 일이었다.)

 

버스 안이 약간 후덥지건한 느낌이 들어서 좌석 위에 달려 있는 에어컨(적당한 말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을 만져 보니 찬바람이 나오지 않는다. 고장이 난 모양이었다. 운전수 아저씨가 일어나 뒤쪽으로 왔다. 버스 바닥에 달린 두껑을 열고 이것저것 조사해 보았으나 한 번 꺼진 에어컨은 다시 작동될 줄을 모른다. 새마을 호의 에어컨이 (냉방 장치가) 작동 되지 않아 찜통 속 여행, 승객 이십 여명 환불 소동. 며칠 전 신문에서 본 그러한 사태가 재현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으나, 버스 천장에 달린 덮개를 열고 달리자 더운 대로 견딜만 했다.

 

남해 대교를 건넌 버스는 어제와는 다른 길을 달려 다시 남해 고속국도와 만났다. 이모부가 근무하고 있는 광양 제철소 옆을 지나 버스는 거침없이 달려나갔다.

 

순천에 내린 나는 점심이나 먹고 갈까 했는데, 목포로 가는 버스가 금시 출발이다. 빵과 우유, 신문 등을 사가지곤 버스를 기다리는 줄에 섰다. 전라도 쪽의 시외버스 터미널은 우리 지방과 좀 달랐다. 경상도 쪽에서는 개찰구를 지나서 버스를 기다리는 데, 이쪽에서는 개찰구 밖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순천은 만나자 마자 이별이었다. 이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다. 헌 책을 안 사기로 결심하고 나니까 헌 책방이 왜 그리도 눈에 많이 띄는지. 진주에도, 또 여기 순천에도 꽤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 듯한 책방이 눈에 띄었다.

 

빵과 우유를 먹으면서 생각해 보니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한 끼도 제대로 먹은 게 없다. 목포에 도착하는 즉시로 식당을 찾아야지. 아침에 등산을 했던 피로가 이제 밀려오는 것 같았다. 광양을 지나면서부터는 새로이 달려보는 길인데도 피로한 눈은 되뜨지지 않았다.

 

목포는 이번이 세 번째다. 군대 있을 때 고참이었던 장문옥 씨로 인해 인연을 맺은 도시. (문옥 형은 목포 시에 인근한 무안군 몽탄면이 고향이었고, 목포 대학을 다녔었다.) 유달산에서 바라본 다도해는 한폭의 수채화처럼 다정다감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름을 잊어버렸지만 유명한 동양 화가인 허 _ (건) 씨가 활동하기도 한 도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리자 마자 찾아간 곳은 식당이었다. 세 끼나 제대로 먹지 못한 배는 아우성을 쳤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종업원 아가씨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김치찌개 하나요."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표준말을 썼다. 지역 감정이란 말이 알게 모르게 나를 주눅들게 한 것이었다. 이래선 안 되는 데 하면서도 내 약한 성정은 가장하려 들었다. 그런데, 주문을 한지 한 참이 지나도 내가 주문한 김치째개는 나오지 않고, 나보다 늦게 온 사람의 음식이 먼저 나왔다. '이들이 내가 경상도 사람이란 걸 눈치채고, 나에겐 음식마저 팔지 않으려는 것이 아닐까? 혹시 이들은 경상도 사람에게 커다란 원한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력이 뛰어난 탓일까? 아니면 정신병적인 이상 성격 때문일까? 나에겐 터무니 없는 생각이 머리 속에 자리잡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근거 없는 이야기인지는 쉽게 말할 수 없으리라.

 

식사를 마친 나는 목포 시내로 향했다. 여관에 들기엔 이른 시각이었으므로, 밤 까지는 무엇을 하든지 시간을 때워야 했다.

 

여기서 잠깐 나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시간을 거슬러서 기술해야겠다. 그것들이 몹시도 중요하고, 이날 밤의 일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데도 빠트려 버린 것은 아무래도 "의식의 억압"이 아니었던가 싶다. 목포 시내에서의 일을 잠시 미루고, 그 몇 가지 심리적인 사실들을 기록해 보자.

 

먼저 언급해야 할 일은 진주에서 남해로 가는 길이다. 그 때 내 옆에는 십 대 후반 내지는 이십 대 초반의 여인이 앉았다. 내 자리는 버스 맨 뒤편의 차창 가였고, 그녀는 내 옆에 앉았다. 그녀 옆에는 내 또래의 청년이 앉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나의 쪽으로 밀착해 왔다. 그건 자리가 좁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일 수도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창밖을 보는 척 했지만, 내 전 신경은 그녀의 다리와 마주대고 있는 내 왼쪽 다리에 가 있었다. 나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진 못했다. 그것만으로 내 신경은 팽팽해졌기 때문이었다. 만원 버스나 기차에서 여성을 페팅하는 데 능숙했던 졸병 한 명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니, 보다 직접적인 나의 경험. 중학교 때 만원 버스 간에서 있었던 나의 경험, 나는 내 앞에 있던 여성을 나의 그것으로 끝임없이.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없었지만 나의 상상은 끝을 모르고 펼쳐졌다. '물론 이 여자가 예쁜 건 아냐. 그저 평범한 시골 여인에 지나지 않지.' 나는 그녀에게 몇 가지 말을 묻는다. 그게 무슨 말이든 상관이 없다. 그녀는 대답을 할 것이고, 나는 그녀와 여관으로. 혹시 비라도 온다면, 나는 오늘 산 내 우산의 위용을 보여줄 것이다. 그녀는 나를 좋아할 것이다. 나의 진심을 알아 준다면, 그래, 육체적인 접촉만을 바라는 건 아니지. 아름다운 추억. 커피숍에서의 이야기.' 궁금한 것은 그녀가 나의 이런 심경을 조금이라도 눈치 채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진정 남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우리가 남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말'인데, 상대방이 가장을 해버린다면, 아니 상대방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그러나, 남해에 버스가 도착했을 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나의 옆자리를 벗어나는 게 속이 시원하다는 듯, 혹은 탈출이나 하는 듯 재빨리 버스를 벗어났고, 나는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왔다.

 

이번에는 순천에서 목포로 가는 길에서다. 여기서 일어난 나의 생각들이 이날 밤의 행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곤한 나머지 얼마간 잠을 잔 뒤 눈을 떴따. 그러자 상황은 89년 3월과 똑같았다. 말년 휴가를 받은 나는 부산에 있는 친구와 후배를 만나보기 위해 열차를 탔다. 그 때 나는 '과연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될 수 있을까?'하는 관념적인 유희(?)에 빠져들었었는데, 그것과 함께 거세게 불타올랐던 것은 여자에 대한 욕망이었다. 과연 여인은 인생을 다르게 만들 것인가?

 

상상은 매혹적이고 부드러우며 아름다웠다. 내가 손에 넣은 여자는 창녀에 지나지 않지만(나는 현실과 상상과의 괴리에 대해 너무 무감각하다.) 나는 상상속에서 그녀를 이상화해 놓았다. 그녀는 나의 도덕적 관념과는 무관하게, 회의적 기질에는 반대되게, 아름다웠다. 애무하고, 입술을 주고받고, 그녀는 초보자인 나를 부드럽게 인도한다. 그 다음엔 소설 책에 나오는 쾌락의 극치, 천국과 지옥의 결혼, 끝없는 추락. 나는 은행에서 돈을 찾아 그녀와 제주도 관광을 떠난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머리 속에 떠올랐던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은 어렵다. 그것은 찰나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껍질 밖에 남지 않는다. 어쨌거나,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현실과 상상의 괴리를 정확히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

 

다시 목포 시내에서의 일이다. 목포 역에 내린 나는 시간을 땜질하기 위해 영화관을 찾아 헤맸다. 어느 극장에선가 "로보캅 2"를 하고 있다는 포스트가 붙어 있어 그 극장을 찾아 헤매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홍콩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몇 군데 있었으나, 아무리 시간 땜질이라도 그 영화들을 볼 순 없었다. 남일 극장이란 곳에서 "고스트 버스터즈 2"를 하고 있었는데, 이 극장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할 수 없이, 라니, 나는 왜 이다지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미워하고 있는가?)

 

남일 극장은 목포 역 옆에 있었다. 목포 역 옆은 여관들로 뒤덮여 있었는데, 거기엔 사창가도 (소규모로) 끼여 있었다.

 

개봉관인데도 서울의 극장과 비교해 볼 때 엄청나게 싸서 대학생은 이천 원밖에 받지 않았다. 극장 시설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지역의 차이라는 것이 이렇게 가격의 차이까지 낳은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극장에 들어간 시각이 어중간 한 때라서 나는 테레비를 봤다. 멀리 사할린에서 고국의 가족을 찾는 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때때로 그곳으로 위문 공연을 간 연예인들의 모습도 삽입한 특집 프로였는데, 뭔지 알지 못할 기분이 나의 감정을 자극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나는 남은 공포의 음료수를 처치했다. (이건 어젯밤 상주 해수욕장에서 야구공 던지기로 받은 상품이었다. 짐승의 가슴 정도에 구멍을 뚫어 거기에 공을 정해진 갯수 이상 집어 넣으면 상품을 주는 게임이었는데, 이 게임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에서 던진 것이, 첫 번째는 열 개 던져 두 개 밖에 못 넣었지만, 두 번째는 다섯 개를 집어 넣어 음료수 세 병을 상품으로 탓던 것이다. 이걸 가방에다 넣고 다니는 것도 고생이었지만, 미지근한 음료수를 마시느라고 고생을 했기 때문에 나는 아주 질려버렸다.)

 

한 삼십 분 쯤 영화를 보았을까?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극장 안은 그야말로 깜깜 지옥이었다. 난 곧 영화가 들어오리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십분 쯤 지났을 때 누군가 촛불을 통로 위에 설치해 놓았을 뿐, 아무런 해명도 없었다. 나는 극장 사람들의 무성의함에 짜증이 났다. 극장 안 사람들의 묵중함에 놀랐다. 서울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에 어떡했을까?

 

관람실 밖으로 나와보니 (기다리다 지쳐)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정전은 극장 내부의 원인이 아니라, 전력 공사의 문제였다. 언제 전기가 들어올 지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내일이나 모레 볼 수 있는 표로 바꿔서 나왔다.

(덧붙임 : 몇몇 사람들은 이 날 목포를 떠나기 때문에 돈으로 환불해 달라고 목청을 높였는데, 극장 측에서는 난색을 표하며 환불을 미뤘다. 좀 기다린 다음에 돈을 받지 않았을까?)

 

아직 여관에 들기엔 이른 시각이었기에 나는 만화방으로 향했다. 만화방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소설에 길들여진 나는 만화의 황당무계함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만화방에 손을 끊었던 것인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몇 번 만화방에 들러게 되었다. 이날 내가 본 것은 허영만의 '질 수 없다.'라는 장훈의 전반부의 생을 그린 작품이었다. 이 만화는 나의 의욕을 크게 자극했다. 그러나, 나를 괴롭힌 것은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무리한 노력'이 바람직한 것이야 하는 점이었다. 나는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 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은 절실함을 느끼는 손짓에 응답하게 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힘든 일이다.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은.

 

여관을 찾아 어슬렁거리는데, 나이 든 아주머니가 다가섰다. 쉬었다, 가라는, 오천 원밖에 안 한다고 말했다. 돈이 없다고 잡아 떼자 그녀는 순순히 물러섰다. 왜 나는 상대편에서 적극적으로 나올 때 자라처럼 목을 움추려 버리는지, 고치기 힘든 버릇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엔 내 나름의 계획이 서 있었다. 혼자 자러 가는 것이니까 필경 여관 주인은 나에게 여자가 필요하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그 땐 점잖게, 이런 이중적인, 기만적인, 대답하면 된다. 하지만 사회는 변했다. 여관의 퇴폐 영업 행위는 어느 정도 자취를 감추었다.

 

떨리는 가슴으로 들어간 곳은 남일 극장 옆의 온천장 여관이었다. 나는 숙박계를 적으며 주인의 입을 쳐다보았다. 그 입에서 한 마디 말이 떨어지길, 내 스스로 요구할 그런 용기는 나에게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관해선 일언반구도 열지 않았다. 502호입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의 계획은 무너졌다. 그러나, 나는 비겁자이며 나약자일 뿐이었다. 내가 부담하게 될 도덕적 책임감을 그에게 넘기려는 얄팍한 의도에 지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텔레비전을 틀었으나, 유선 방송으로 홍콩 영화를 방영할 뿐이었다. 더 이상 포르노의 시대는 아니었다. 요번 여행을 통해 나는 다섯 밤이나 장급 여관에서 잤지만, 포르노를 틀어주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그렇고 그런 홍콩 영화를 다 보고 나자, 또 다른 홍콩 영화를 했다. 나는 억제하기 힘든 성적 욕구 때문에 거의 욕구불만이 되다시피했다.

 

테레비를 끄고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올리 없었다. 나는 옆 방에서 혹시라도 신음 소리가 나는가 해서 귀를 기울였지만 (나는 한 마리 독오른 짐승.)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다. 시간은 이럭저럭 두 시가 넘었다. 여자와 잘 수 없다면, 자위 행위라도 한 번 하고 싶었으나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갑자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수동적으로 살아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과감히 뛰어들어라."하는 울림이 들려왔다. 금산에서 상주갈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저 전화기를 들기만 한다면, 든다면, 그것으로.' 그러나, 가슴의 고동을 멈출 순 없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해야할 말을 정리해 보았다. "저, 아가씨 한 명 부탁드릴 수," 아니다, 이건 너무 공손한 말투다. 아가씨, 한 명 올려보내 주세요.

 

손이 전화기에 닿는 순간은 길었다. 몇 번이나 전화기 앞에 까지 갔던 손을 뺐다. 그럴 순 없어. 아니다. 이건, 단지 하나의 체험, 인생에 남겨진 마지막 비밀의 문을 여는 것이야. 상조는 첫 경험이 그렇게 기분이 좋았대잖아, 기요도. 아니 강병장과 김병장은 별루라 그랬어. 어느 쪽일까? 과연 사람들의 말은 진실일까? 나에게도 그렇게 다가올까? 총각이 아니잖아? 나는, 어릴 적에 너는 너의 총각성을 옆집 애에게, **에게. 이건 단지 하나의 체험이야, 나는 이 체험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거야. 5cc의 정액을 여성의 질 안에 사출함을 통해.

 

두려움과 불안이 내 손을 자꾸만 움츠려 들게 했지만, 타오르는 욕망과 끊이지 않는 호기심, 그리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다시 갈등에 쌓일 것이라는 생각 등이 드디어 전화기를 집어 올리게 했다. 그러나, 전화기 저 쪽 편에선 응답이 없었다. 잠이라도 든 것일까? 전화기를 들고 있는 그 시간 동안에도 내 생각은 수십 차례나 오락가락 했다. 빨리 들어주었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오, 주--여. 응답이 없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그것 봐, 그것 봐, 제대로 안 되지, 안 되지, 메롱. 문득 전화기 위에 씌어 있는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안내를 원할 때는 0번을 누르세요. 요건 몰랐지다. 여보세요, 저 502혼데요.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나는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몸을 떨었다. 한편으론 이제 나의 젊음이 일막을 내린다는 서운함이 휩쌌다. 웃통을 벗었다. 누군가 노크를 했다. 이렇게 빨리. 전화 건 지 일 분도 안 됐는데. 문을 열자 밖에 서 있는 건 웬 아주머니, 이런 나이든 아주머니와, 그렇겐 안 돼, 안 된다. 아저씨, 화대 주세요. 예? 아, 카운터의 아주머니는 (내가 들어올 때는 아저씨였는데, 어느 새 아주머니로 바뀌었다.) 긴 밤은 안 되고 타임으로 밖엔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이만 원을 건네주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타임이라는 것이 무얼까 생각했다. 사창가에서 타임이라는 것은 사정 횟수인데, 나는 그걸 시간으로 (끊어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경험에 보지 않고는 잘 알 수 없다는 것, 그게 사실일 거다.

 

노크 소리, 이번엔 진짜인 모양이다. 조금 전에 웃통을 벗고 문을 연 게 마음에 걸려서 옷을 입고 있는데 내가 부른 아가씨가 불쑥 들어왔따. 조금 전에 돈을 줄 때 문을 잠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옷을 입으려고 허둥대는 나를 보고, '벗을 옷을 뭐 하려고 입으세요?'라고 했다. 그녀는 더워서 샤워부터 해야겠다고 하면서, 입고 있는 옷을 벗어 놓고 욕탕으로 갔다. 그녀가 입고 있는 잠옷 비슷한 옷을 벗고 나자 곧바로 브라자와 팬티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도 팽팽하던 나의 자지가 이런 순간에 죽어 있다니. 실없이 멍하니.)

 

그녀는 별로 예쁘다고 할 순 없었다. 좀 못 생긴 편이라고나 할까? (왜 이따구로 밖에 글을 쓸 수 없는지.) 아랫배가 약간 나온 게 약간 뚱뚱한 편이었다. 나의 아름답던 상상들은 날아가 버렸지만, 그녀는 내 유년의 분탕질을 제외한다면 첫 여인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할까? 당신을 잊지 않을 거예요.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엔 그렇게도 팽팽하던 나의 자지가 이런 순간에 죽어 있다니. 어색한 분위기를 감추기 위해 실없이 웃었지만 분위기를 더욱 어색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녀도 "왜 자꾸 실없이 웃기만 하세요, 괜히 어색하게"라고 말했다.

 

그녀와 나는 마주보고 누웠다. 얼굴을 마주 대하고 보니, 나는 그녀가 어쩌면 추녀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이랑 주근깨가 난 얼굴을 그녀는 화장으로 감추고 있을 뿐인지도. 아가씨 몇 살이에요? 한 번 맞춰 보세요. 스물 둘 셋. 그녀는 가볍게 웃음 지을 뿐 별 말이 없었다. 이불 밑으로 몸을 숨긴 그녀는 이불 속에서 팬티를 벗었다. 그래, 이런 여자에게도 수치심이란 게 있는 거야. 그렇고 말고. 그녀와 나는 똑같은 인간. 그녀와 나는 하나의 여자이자 남자, 그러나 그녀와 나의 결합엔 너무나 큰 난관이 있는 것.

 

그녀는 나의 그것을 잡고 부드럽게 흔들어 주었다. 완전하게 발기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적당한 크기에 이르자 그녀는 나를 그녀의 배 위로 올라오게 했다. 브라자를 벗기려는 데 손이 떨려 제대로 되지를 않아, "이거, 어떻게 열죠"하는 어리석은 질문까지 했다. 그녀는 나의 자지를 그녀의 손으로 구멍 속에 삽입시켰다. 그녀는 이게 나의 첫 경험이라는 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그것은 한 없이 넓었다. 나의 자지 같은 것은 몇 개라도 넣을 상 싶었다. 나는 그녀의 젖을 주무르며 허리 운동, 허리 운동을 했다. 비디오에서, 친구들과 비디오에서 본 대로. 보지 않았더라도 못할 건 무엇이 있으랴. 이건 거의 본능적인 것인데. 그녀는 거의 반응이 없었다. 내가 하는 행동이 그녀에겐 무의미한 모양이었다. 로렌스의 이야기는 여기서는 하나도 맞지 않았다. 그녀와 나는 육체적으로 결합하고 있었으나, 전혀 별개의 존재였다.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애처럼 되었다. 화가 치밀었다. 나는 그녀에게 "좀 안아줘요"하고 투정을 부렸다. 너무도 빨리,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지듯 나의 정액은 그녀의 질 안에 뿌려졌다. 허전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설마 이것으로 끝내는 것은 아니겠지 하였다. 이만 원이나 치뤘는데, 이것으로 끝낼 수야. 설사, 끝난다 해도 어쩔 수 있을까? 비굴하게 애원할까? 그녀가 일어설 기색을 보여, 나는 그녀의 배 위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오래 참은 모양이죠?"하며 나의 조루를 비웃었다. 슬펐다. 감춰진 비밀의 결과가 이 따위 였다니, 프롬의 말은 맞는가? 쾌락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색과 혼돈과 허전함만 춤을 출 뿐. 사랑과 섹스는 별개의, 전혀 별개의, 나는 여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또 샤워하러 욕탕으로 갔다. 초라하게 쪼그리고 앉아 있던 나는 그녀가 나오는 즉시로 목욕탕으로 가 나의 성기를 씻고, 오줌을 쌌다. 욕탕에서 나오니 그녀는 벌써 옷을 입고 있었다. 내 입에선 "이걸로 끝이에요?"하는 자조적인 말이 나왔으나, 대답은 들어보나마나였다. 그래,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을. 하지만 그녀가 나같은 숙맥을, 숙맥을 좋아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호구요, 멋 없는 데이트 상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허전함이 바닷물처럼 밀려왔다. 성병의 공포도 나를 괴롭혔다. 하나의 경험을 위해선 너무 값비싼 댓가였다. 나는 떠나고 난 그녀의 환영을 좇아 채워지지 않은 내 욕망을 용두질로 달래었다. 프로이드 박사, 프롬, 그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 나는 비겁한 놈이고 (왜 이 말이 갑자기 튀어 나올까?) 구제받기 힘든 놈이다. 더러운 성정을 가진 놈이다.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