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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

세 권의 책

by 길철현 2023. 3. 29.

겨울 추위와 함께 다시 한 번 정신적 위기가 닥쳐왔다. 내 삶을 그나마 지탱해주던 것들이 마구 흔들리고 내 정신은 나의 패배를 인정하고 이 삶을 떠나고 싶은 마음만 부풀어 올랐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 종일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보내다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이 책 저 책을 읽어나갔다. 좀 가벼운 소설책을 읽다가, 인생의 힘겨움을 어떻게 이겨나갔는지가 궁금해 자전적인 책들을 택해 읽었다(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먼저 집어든 것은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졸지에 망명객 신세로 파리에서 택시운전사 생활을 해야 했던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이 분은 나보다 20살 가까이 나이가 많은데, 느슨한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는 어두웠던 우리나라의 과거와, 그 속에서 변모를 꾀하던 젊은이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불안하고 우울한 가운데에도 이 책을 흥미롭게 읽고 나서, 그 다음엔 김구의 [백범일지], 이순신의 [난중일기]도 집어 들었다. 주권회복이라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고 헌신한 김구의 자서전은 도저히 한 인물이 겪은 일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파란만장한 그것이었으며, 이순신의 일기에는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당시의 생활상, 사람들이 술을 굉장히 많이 마시고, 바둑이나 장기 등 오락을 즐기는 모습은 물론 심한 잘못에는 예외 없이 사형에 처해버리던 엄한 규율 또한 엿볼 수 있었다. 또 이순신이 강인한 인물일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잔병으로 여러 번 고생을 하는 모습도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이중 인격자인 듯 불면과 불안, 우울과 무기력이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지만, 나의 의식은, 아니면 그나마 이성적인 부분은 그러한 병적 상태에 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일상의 나를 흔들어 나는 나로부터 멀어진 그런 존재가 되어 버린 듯했으나 견디기 힘든 그러한 나 또한 부둥켜안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세 권의 책에 나오는 인물들 또한 다양한 역경과 시련을 겪고 또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김구와 이순신은 자신의 길을 나아가다가 결국 그 길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대답 없는 외침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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