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현 감독의 영화는 처음 접하는데 작품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흥행적으로는 분명 성공할 만한 요소가 많이 있다. 그리고, 특히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면이 많을 듯하다. 폭행 더 나아가서는 살해의 잠재적인 위협 속에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오히려 남성을 폭행하고 죽이는 장면들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안겨 준다. 길복순이 자신이 속한 킬러 회사의 대표이자,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차민규와의 결투에서마저 승리하는 결말은 더욱 그러하다(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액션에서 여성들이 등장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타란티노의 [킬 빌]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름대로의 규칙과 체계가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존 윅] 시리즈를 연상시키지만, 탑 킬러인 여성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딸 아이는 올곧게 키우려고 한다는 점이 이 영화에 극적 긴장감과 흥미를 배가시킨다. 그리고, 영화의 비현실적인 구도를 다소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로 중화하려 애쓴 시도도 주목할 만하다.
황정민을 살해하는 첫 장면에서의 액션 신은 시작 부분이는 약간 어색하게 다가왔고, 전도연도 이제 더 이상은 젊지 않다는 생각에, 이 영화를 어떻게 끝까지 긴장과 흥미를 놓치지 않고 끌고 갈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뒤로 갈 수록 전개가 재미있었고 액션 신도 볼만 했다.
영화에 좀 더 현실적인 색채를 부여하기 위해 길복순(전도연)이 킬러가 아니라 치열한 직장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아니면 길복순의 딸 길재영 - 딸의 성 또한 길이라는 점에도 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나 관습적으로는 보기 드문 이 부분은 아버지라는 존재에 연연해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잘못 추측하듯 국정원 직원이라고 상상해도 무방할 듯하다) 싱글 맘이라고 한다면, 직장 생활에서 오는 여러 갈등에 맞서서, 또 사춘기인 딸과 좋은 관계를 맺고 또 그녀가 올바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영화로 치환해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그렇지만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킬러와, 아이를 바르게 키우고 싶어하는 엄마는 잘 매치가 되기 어렵다. 이 어려운 작업을 얼마나 잘해 내었는가에 이 작품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동진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그 아이러니한 세계, 온전히 배어들지 못한 그 쿨한 스타일'이라는 말로 이 작품이 그 작업에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본다. 그 대신에 이 영화는 유혈이 난자한 잔인한 장면과 그와 반대되는 가벼운 분위기가 엮어내는 긴장감, 늘어지지 않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스토리의 전개, 의외로 치열한 액션 장면 등이 영화를 볼만하게 만든다.
또 딸 길재영의 동성애와 그로 인해 촉발되는 사건에서 길복순이 딸을 끌어안으려 애쓰는 것과 반대로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아들을 살인청부업자에게 맡긴 남자 정치인의 모습 또한 여성을 높이고 남성에게 한 방을 먹이는 부분이다(더 나아가 길복순은 그를 살해해 버리기까지 한다. 킬러이지만 나름대로 윤리 기준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영화 그밖의영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콘크리트 유토피아 - 엄태화(20230810 전주 메가박스) (0) | 2023.08.14 |
---|---|
서부전선 이상없다 - 에드워드 버거(2022) (0) | 2023.04.09 |
나는 신이다 - 조성현(2023) (0) | 2023.04.07 |
메시아 - 마이클 페트로니(2020) (0) | 2023.04.06 |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 - 제임스 마쉬(2014) (0) | 2023.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