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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이야기

2023년 탁구 이야기 - 봄날은 가고(0503)

by 길철현 2023. 5. 3.

어머니 간병에서 벗어나 일주일 간의 휴가를 얻었다. 지난 4년간 휴가 기간에는 주로 저수지 탐방을 중심으로 한 여행을 했는데, 요즈음 공이 좀 잘 맞아서 쇠도 달았을 때 두드린다는 말을 좇아 서울로 올라왔다. 첫째 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세종에 있는 동호회 후배 재욱이를 만나 한 게임을 했고(3알을 받았는데도 게임이 안 됐다), 둘째 날은 서울 구로구의 [힐링 탁구클럽] 리그전에 참석하여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하였으며(4부가 최고 고수로 3부 이상은 한 명도 없었다), 셋째 날은 역시 동호회 후배가 관장으로 있는 일산의 탁구장으로 가서 또 한 게임을 했다(선출인 관장 경태[5알 핸디]와 1부인 탁형 명심[4알 핸디]이에게 모두 져 만 원을 뜯겼다). 과도한 운동으로 온몸이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넷째 날인 이날마저 저녁에 탁구칠 약속을 잡아 둔 상태였다.
 
잠이라도 푹 자면 그나마 피로가 조금이라도 풀릴 텐데, 의욕 과잉으로 한 번 깬 다음에는 다시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이대로 계속 무리를 하다가는 몸이 탈이 날 듯하여 직원들의 마사지 솜씨가 뛰어난 길음동의 샵에 예약을 했다. 그리고 마침 그 근처에 내가 속한 동호회 회장의 직장이 있어서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다. 나보다 한 살이 많은 이 형은 점심 식사에서부터, 사우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커피까지 풀코스로 나에게 서비스를 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가 결국에는 탁구로 귀결되었다.
 
이 형(인권 보호 차원에서 실명을 밝히진 않겠다)은 펜홀더에서 셰이크로 전형을 바꾼지 한 10년 정도 되었다. 그런데, 재작년부터인가 나에게 "백핸드드라이브를 완성했으니 설명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펜홀더에서 셰이크로 바꾼지가 벌써 26년이나 되었고, 이 형이 셰이크로 전형을 바꾸었을 때 백핸드와 쇼트 등을 설명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레슨을 받으면서 계속 백핸드드라이브를 연마해 왔기 때문에 그의 말에 콧방귀를 뀌어 왔다. 거기다 이 형은 "너의 백드라이브는 드라이브가 아니야"하고, 모순어법을 써가면서까지 회전력이 약한 내 백핸드드라이브를 무시해서 내 자존심에 심히 상처를 주어왔다(내 탁구 스타일이 드라이브보다는 스트로크에 의존하는 면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말이 어느 정도는 타당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날 다시 한 번 이 형은 자신의 완성된 백핸드드라이브 이론을 나에게 펼쳐놓기 시작했다. "백드라이브는 말이야, 칼집에서 칼을 빼듯이 말이야. 그리고, 내가 연습을 해보니까 백드라이브도 포핸드드라이브와 똑같아. 거울 이미지라고 할 수 있지." 내가 별로 호응을 안 해주면서 시큰둥하게 있자, 약이 오른 이 형은 "니는 얘가 반골이라서 남의 말을 안 들어. 나도 그럼 안 가르쳐 주지"라고 말을 접어 버렸다. 형이 실전에서 회전력이 있는 백핸드드라이브를 그런대로 구사하고 있다고 해도, 셰이크 구력이 나보다 훨씬 짧은 데다 독학으로 백핸드드라이브를 익한 사람에게서, 10년 이상 백핸드드라이브 레슨을 받아온 내가 이론적인 설명까지 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일단 무엇보다 스윙이 몸 중심이 아니라 옆구리에서 나오는 것만 보아도 어설펐다. 나 역시도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셰이크를 처음 잡았을 때 습관을 잘못 들여서 옆쪽에서 스윙이 나온다). 
 
이 형의 근자감은 끝간 데를 모르고 급기야 "내 백드라이브가 우리 멤버 중에서는 명심이 다음으로 좋을 걸. 진우도 좋긴 하지만. . .(뒤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의 말을 참고 듣고 있던 나는 속으로 폭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아니, 백핸드의 대가인 승훈이와 이레는 급이 달라서 재껴놓은 거야? 지금은 활동을 안 하지만 남규는? 좋아,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구의 백핸드 달인인 성욱이는? 준기도 백핸드에서 밀린다고 하면 가만 있지 않을 텐데. 펜홀더에서  셰이크로 바꾼지는 5년  밖에 안 됐지만, 린시동의 파괴력  있는 백드라이브를 구사하려는 재욱이는? 각탁구의 대명사인 정일이는(이 친구도 백핸드를 완성했다고 그렇게 자랑을 했는데)? 정이 형도 연습량이 없어서 그렇지 백드라이브의 회전량은 만만치 않은데? 마지막으로 또 다른 근자감의 소유자 응배도 있구나.'
 
펜홀더 시절 한 때 아마추어 최강에 근접했던 이 형은 셰이크로 바꾼 뒤로는 4부로 부수를 내린 뒤에도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기미가 없더니만, 급기야 체력 저하를 이유로 시합 참가를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세월 앞에는 장사 없다고 내일이면 예순이니 당연한 귀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형과 운동을 같이 해온 지도 이럭저럭 20년이 넘었구나. 형이나 나나 봄날은 가고 아무리 콧구멍을 벌렁거려도 향기도 멀리 사라지고, 과거의 영광은 입에서만 맴돌고 있는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