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올해 초 나에게는 다소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넘쳐 나는 책을 보관하기 위해빌렸던 책방(전세방)을 재개발로 비워 주어야 했는데, 그 전세금(7년 동안 한 번도 올리지 않고 싸게 두었지요)으로는 이제 방을 빌리기도 힘들고, 또 어차피 대부분의 책들은 읽지도 못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에 따라, 어림짐작으로 8천 권 정도 되는 책들 중 3천 권은 처분하고 - 백만 원 정도 받은 듯 -2천 권 정도는 박스에 넣어 대구 본가의 빈 방에다 두고, 또 3천 권 정도는 아파트 방 바닥에다 깔아 두었지요. 모든 일을 오로지 혼자서 해야 했기 때문에 생각 외로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엄마는 나에게 책을 사 모으고 그걸 정리하고, 또 옮기고 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고 했는데 그 말이 완전히 터무니 없는 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 권, 두 권 헌 책방 순례를 하면서 사 모은 손 때 묻은 책들을 처분하는 것은 처음엔 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이었으나, 효용성의 면이나 현실적으로 불필요해진 많은 책들(특히 사전류는 이제는 대체로 인터넷으로 대체가 되어서 헌 책방에서도 구입하지 않아 폐지값만 받고 고물상에 팔아야 했지요)을 처분하고 나니, 다른 한편으로는 이 책들이 그 동안 나에게 짐으로 작용한 면이 있다는 것도 절감하게 되었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이 과정에 있었던 일들을 한 번 적어보고 싶네요).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문득 잠에서 깨어났을 때, 여행을 떠나자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박사 논문의 주제가 잘 떠오르지 않으니, 영국을 한 번 다녀오면 좋을 듯해서, 서둘러 여행 준비를 마치고, 전세금을 받자 말자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
쉰 나이에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외국 여행인데다,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떠났기 때문에, 현지에서 계속 일정과 경로 등을 모색해야 했지요. 그렇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은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영문학을 전공해 왔고, 영어가 어느 정도 되기 때문에,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으나, 책으로 익힌 것과 실제로 부딪치는 현실은 천양지판까지는 아닐 지라도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런던의 복잡한 지하철 노선, 1페니부터 2파운드까지의 다양한 동전들.)(요즈음에 와서 부쩍 주의를 기울이게 된 어법 중 하나가, 우리가 흔히 쓰는 '틀리다'라는 말입니다. 다르다, 라고 써야 할 경우에도 우리는 '틀리다'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어법 오용의 이면에는 '다른 방식'이 가져다 주는 피로감, 힘겨움 등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각설) 국내 여행 경험은 그래도 많은 편이지만 해외 여행 경험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 어려움들을 하나 하나 헤쳐나가며 많은 자신감도 얻었답니다.
이번 영국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도 자동차를 렌트해서 운전한 것이었는데, 좌측 통행 하나만을 머리에 담고 초보처럼 운전을 했지요. 네비도 없고 지명도 모르고 그곳의 교통법규도 모르는 상황에서 다소 무모할 수도 있는 시도를 - 그나마 오토라서 다행이었네요 - 주차해 둔 차의 사이드 미러와 내 차의 사이드가 부딪히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고, 또 에딘버러에서는 신호 위반으로 (고의적으로 위반한 것은 아닙니다) 딱지를 뗄 뻔하기도 했답니다 - 그래도 무사히 마쳤을 때의 뿌듯함. 길을 몰라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돌고, 에딘버러에 갔을 때는 도시를 빠져나오는 것 자체가 큰 난관이었지요. (이번 여행기도 시간을 내서 차분하게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
사실 오늘 글을 쓰려고 한 것은 긴 휴식의 끝맺음으로 지난 일요일(21일)에 들렀던 서울 근교의 내가 자주 다니는 곳들의 풍경이었는데 배경 설명이 터무니없이 길어지고 말았네요. (어제 글을 써보려고 사진을 컴퓨터로 보는데 사진들이 선명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아서 급 좌절했는데, 노트북으로 보니 사진들이 깨끗하네요.구닥다리 컴퓨터의 해상도가 낮아서라는 것을 급 깨닫습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차를 몰아 꽤 많은 곳을 돌았네요. 제가 폭포를 좋아해서 겨울 폭포의 모습을 위주로 담았습니다.
1. 재인폭포(연천)
며칠 전에 비라도 왔는지 빙폭 위로 물이 떨어져 내리고, 넓은 웅덩이(폭호)에는 물이 가득하네요. 재인폭포와 인연을 맺은 지도 이제 20년이 다 되었네요. 재인폭포의 그 슬픈 전설은 정신분석적인 견지에서 보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살짝 변형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재인폭포는 한탄강 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새로 단장을 해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높은 위치에서 조망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답니다. (겨울철이라 계곡 아래로는 못 내려가게 굳게 철문을 닫아 두었지만 나는 가볍게 위반을 하고 말았답니다. 금지를 모두 따르다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듯해서.)
서울에서 연천으로 가는 길이 많이 좋아져서 (새로운 3번 국도가 많은 부분 개통이 되었습니다) 이날 우리 집에서 재인폭포까지는 1시간 7분만에 도착. 따로 과속을 하거나 하지 않았는데도 2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한 시간 가까이 단축이 되었네요.
(영국으로 떠나기 전날, 이번 겨울에 한파가 가장 심했던 날 밤에도 이곳을 찾았지요. 자동차에 달린 온도계는 영하 18도였던가? 아무도 없는 한 밤중의 폭포는 - 폭포 주변은 그야말로 적막 그 자체였지요 - 다소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는데, 폭포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는 순간 갑자기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에 등골이 오싹. 재인폭포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녹음 방송. 기계는 역시나 상황 판단을 잘 못하는 단점이. 하지만 우리 인간 또한 상황 판단에 항상 어려움을 겪지 않나요?)
어느 순간에 쿵하는 소리가 나서 뭔가 했는데, 빙폭의 일부가 떨어져 물과 충돌하는 소리였습니다. 그 순간은 안타깝게도 놓치고 말았네요.
2. 비둘기낭 폭포(포천)
비둘기낭 폭포는 재인폭포보다 좀 더 한탄강 상류 쪽에 있는 폭포로 분위기는 재인폭포와 비슷합니다. 두 폭포 다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지요. (재인폭포에서 한 삼십 분 정도 가면 되는데 43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그 유명한 산정호수의 반대편에 있지요.) 재인폭포보다는 높이가 좀 낮은 대신에 주변 풍광은 더 낫다고 해야 할까요? 예전에 이 폭포는 상수원 보호구역 내에 있어서 갈 수 없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몇 년 전, 비가 많이 온 날 우연찮게 들르게 되었는데 그 때의 인상이 굉장히 강렬했지요. 아쉬운 것은 안전 때문인지 아니면 보존 때문인지 폭포 바로 앞까지는 갈 수 없게 막아 놓았다는 것인데, 이 날은 단체 관광객들이 와서 문을 열어준 것을 틈 타 나도 폭포까지 내려간 다음, 이 개천이 한탄강과 만나는 합수터까지 계곡을 걸어내려가는 호사를 누렸답니다. (이 폭포는 영화 [비밀병기 활]에서 호랑이가 청나라 장수들을 물어죽이는 (어처구니 없는?) 장면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요.)
이 폭포는 많은 경우 물이 말라 버리는 건폭이고, 빙폭도 별로 볼 것은 없지만, 비가 많이 온 다음에는 또 엄청난힘과 신비로움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비둘기낭 폭포가 있는 대회산리는 43번 국도 외에는 접근이 어려운 곳이지만 중리로 이어지는 교량 공사가 끝나고 또 방골길 포장 공사도 끝나면 - 혹 끝난 것은 아닌지 - 접근이 더욱 쉬워질 듯.)
3. 삼부연 폭포(신철원 - 갈말)
삼부연 폭포는 언제부터 찾게 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 규모면에서는 서울 인근에서는 가장 큰 폭포이고 폭포 주변의 벼랑도 웅장한 느낌을 줍니다. 이 폭포는 도로 바로 옆이라 아마도 전국의 폭포 중에서 접근성이 가장 용이한 폭포일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 좋은 폭포를 이상하게도 방치하다시피 했는데, 지금은 깔끔하게 정비를 했지요. 젊은 군인들이 휴일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듯합니다. 폭포 맞은 편에는 부연사라는 작은 절이 있는데 그 절 옥상에서 바라보는 폭포의 모습도 색다르지요. 이 날은 이 절을 지키고 있는 무늬는 진돗개 종류로 보이는 나이든 흰 개(칠팔 년 전에도 보았는데)가 하도 짖어대는 바람에 절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네요.
비둘기낭 폭포에서 삼부연 폭포까지의 거리가 차로 이십 여분 남짓이라 사람들이 세트로 많이 찾는 듯합니다. 내가 도착하고 얼마 후에 비둘기낭 폭포에 왔던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리더군요. (예전에도 비둘기낭 폭포에서 본 사람을 다시 삼부연 폭포에서 만난 일이 있었지요.)
삼부연 폭포에서 용화 터널을 지나 좀 올라가면 용화 저수지가 나옵니다. 낚시가 금지된 곳인데 얼음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더군요. 저수지 가장자리의 얼음은 녹아가고 있는데도 낚시를 하는 곳은 괜찮은가 봅니다.
4. 잠곡 저수지
삼부연 폭포에서 나와서 43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좀 더 가다가(대규모 훈련이라도 있는지 휴일인데도 상당히 많은 병력과 탱크들이 반대편에서 이동. 요즈음의 남북관계를 생각하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 463번 지방도로 우회전 해서 계속 달리다 보면 오른쪽에 보이는 저수지. 제법 아름다운 곳인데 빙판은 아직 녹지 않고 잿빛 잡목들이 을씨년스러운 느낌.
5. 삼악산(춘천시 서면)
[복주산 자연 휴양림, 하오 터널을 지나 372번 지방도와 만나는 곳에서 잠시 길을 망설이다가 - 다음 목적지가 강촌이었는데 어디로 가는 것이 맞는지 잠시 헛갈림. 많이 다닌 길들이라 내비를 켜지 않고 지도만 한두 번 참조했는데 - 사창리(늘 이 부근을 지날 때 마다 하필이면 왜 이름이 사창인가 궁금해 하다가 이번에 조사를 해보니, 전국적으로 사창리가 많네요. 특히 조갑제 씨는 한글 전용의 폐해를 이야기하면서 사창리를 예로 들고 있더군요. 이곳 사창은 한자로는 역사 사, 창고(슬플) 창인데, 정확한 뜻은 인터넷 상에서는 찾기가 힘들었습니다.)쪽으로 좌회전 했다가, 곧바로 우회전을 해야 했는데 길을 놓쳐 좀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옴. 주유소 옆으로 나 있는 75번 국도를 타고 올라감. 이 길이 삼일 계곡, 화악 터널로 이어지는 길인지, 아니면 명지산으로 가는 길인지도 좀 헛갈렸음. 글을 쓰면서 삼일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은 사창리 쪽으로 좀 더 내려가서 391번 지방도로를 타야한다는 걸 재확인. 75번 국도는 포장 공사가 끝나는데 한 십 년은 넘게 걸린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완공이 되고 나서도 지나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어서 도로에는 흙먼지가 남아 있고 - 눈이 쌓였다가 녹아서인가? - 사이클을 즐기는 사람들만 텅 빈 4차선 넓은 고개를 힘겹게 올라가고. 경기도의 최고봉이라는 왼쪽의 화악산 이름이 생각이 안 나 머릿속에서 황현산, 황매산 등으로 맴을 돌고.
명지 계곡의 계곡물은 아직도 꽁꽁 얼어 붙어 있었고, 피로가 몰려와 좁은 길로 들어가 잠시 차를 주차하고 토막잠. 갑작스런 바람 소리에 잠이 깼던가?
가평에서 좌회전 해서 46번 국도를 타고 강촌을 지나 먼저 삼악산에 들름. (강촌과 삼악산이 46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는 기억과는 달리 삼악산이 좀 더 춘천쪽으로 간 곳에 있었구나. 주차비를 내지 않으려 좁은 도로의 공터 - 빈 곳이 많았음 - 에 차를 세우고 삼악산 쪽으로 걸어감.]
삼악산은 휴일을 맞아 산행에 나선 사람들로 붐볐고 다른 곳과는 달리 아직도 입장료도 지불해야 했습니다. 삼악산의 매력은 위의 사진에 나오는,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협곡과,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의암호의 전망이지요. 시간 관계 상 협곡을 지나 등선 폭포까지만 갔다가 나왔답니다.
등선 폭포는 상하 2개로 이루어진 아담한 폭포인데 이 아래에 있는 폭포는 웬일인지 얼음이 다 녹고 물이 꽤 흐르고 있더군요.
6. 다시 강촌 구곡 폭포로(춘천시 남산면)
구곡 폭포는 여름에는 언제나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었지만 - 뭔가 장쾌한 모습을 기대하고 가지만 폭포는 한 번도 힘차게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 겨울의 빙폭은 많은 사람들의 빙벽 등반 장소로 애용되는 유명한 곳이지요. 또 다시 입장권을 구입하고 15분 정도 걸어서 구곡 폭포에 도착했습니다.
빙폭이 녹아 위험하니 빙벽 등반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에도 불구하고 이 날도 많은 사람들이 등반을 즐기고 있었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더군요.
언젠가 한 번, 한밤중에 이 구곡폭포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플래쉬 하나 들고 들어갔는데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가 더욱 무섭더군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뭔가가 내 등 뒤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느낌.
7. 홍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 남면 관천리
403번 지방도를 타고 강촌 IC 쪽으로 달리다가 우회전, 남면 사무소와 보건소를 지나 홍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까지 가봅니다. 여름철만 아니면 이곳은 정말 고요합니다. 이곳도 아직 강물이 풀리지 않고 꽁꽁 얼어있네요.
(관천리에는 방하리로 이어지는 비포장 도로가 있어서 호젓이 걷기에 좋습니다. 왕복 두 시간이 좀 더 걸리나?)
아직 연초록 새싹들이 돋아나는 봄은 멀기만 한지 우중충하고 메마른 느낌.
(이곳에 헤븐스터디라는 기숙학교가 있는데요. 정말 천국 같은 공부이거나, 공부가 천국이거나 그런 곳이 있다면.)
8. 마지막 - 다산 유적지(남양주시 조안면)
[피로도 몰려오고 해서 경춘 고속도로(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오려 했는데 벌써 고속도로가 밀리더군요(4시 쯤 되었나). 설악면에서 짜장면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37번 국도를 타고 유명산 쪽으로(이 산 이름도 기억이 안 났음. 꽤 유명한 산인데 별로 볼 것은 없다는 생각을 했었나?), 원래 의도한 길은 아니었으나 이 길로도 서울에 올 수 있기 때문에 그냥 탐. 352번 지방도를 타고 중미산 천문대를 지나 내려옴.
서종면 혹은 문호리. 대학교 1학년 때, 그러니까 삼십 년 전에 이곳에 처음 놀러 왔었구나. 과 동아리 선배랑 둘이서. 지금은 없어진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양수리까지 왔다가 양수리에서 문호리까지 걸어갔지. 그 때만 해도 비포장 도로였고, 북한강변을 따라 걷는 길이 신기했지. 그것이 북한강인 줄도 그 때는 몰랐지. 3학년인 선배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라 그 강을 호수라고 했는데.]
마지막 목적지를 두물머리로 할까, 다산 유적지로 할까, 망설이다가 다산 유적지로 정했는데, 별다른 풍경을 보여주지는 못하고(양수리에서 다산 유적지로 가는 길은 좀 밀렸고), 대신에 보름 하루 전 달이 이미 떠서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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