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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설악산 나들이(160227)

by 길철현 2016. 3. 1.

이 날의 설악산 나들이는 별다른 감흥 없이 피로함 가운데 끝난 그런 느낌이다. 전날 학교에서 간편대출 신청을 한 도서를 찾는 것을 깜박해서 아침에 다시 학교에 들러야만 했고(이날까지 찾지 않으면 기계에 들어 있는 책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3일 내에 찾으라는 엄포가 있었으니 따르지 않으면 분명 불이익이 따를 듯) 간 김에 아침 식사도 하고, 북부 간선도로를 탄 다음 화도IC에서 경춘(서울 양양) 고속도로를 탈 예정이었는데, 카이스트 앞 북부 간선도로로 올라가는 도로는 차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어서 일반도로를 이용하였지만, 막히기는 마찬가지. (내부순환로가 안전진단으로 종암-성동 구간이 폐쇄된 데다가, 토요일 나들이 차량이 겹쳐서인가?) 이 때부터 진이 좀 빠졌던가? 고속도로도 군데군데 정체. 가평 휴게소에서 좀 쉬었다가 가려했다가 들어가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는 차들에 그냥 질주(전날 잠을 많이 못잤고, 그 전날도 수면이 부족했다). 


하이패스도 잔액이 얼마 남지 않아 현금을 지불. 동홍천 IC를 빠져나오며 10만 원 충전을 하고, 동시에 미납 요금도 납부. (설에 대구에 내려갈 때, 서울에서 서대구 터미널을 지날 때 정산이 안 된 듯)  44번 국도를 계속 달리다가 팜파스 휴게소에서 잠시 쪽잠을 잠. 평소 한산하기만 하던 이 휴게소에도 차량이 많았는데, 주유소와 휴게소 사이 직원용 차를 대는 곳인지 약간 들어간 곳에다 차를 주차하고 한 십 분 정도 잠을 잔 듯. (팜파스 휴게소에는 화장실이 카운터 안쪽에 있어서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왠지 물건을 구매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 인제에서도 차가 잠시 밀렸는데, 추돌 사고가 났기 때문으로 밝혀짐.


강원도 지방에 눈이 많이 왔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눈은 그 사이 다 녹았는지 아니면 생각보다 눈이 많이 오지 않았는지 눈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는 않음. 미시령 터널을 지나자 울산바위가 여전히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예전에 전망 장소가 있던 곳이 없어져서 - 전망 장소는 옛길에 있었던가 - 그냥 지나 옴. 차가 또 밀리길래 설악산으로 들어가는 길도 막히는 것은 아닌가 했으나 그렇지는 않았음. 주차비가 아까워서 호텔 설악 파크 아래 상가에다 주차를 하고 걷기 시작.


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올라가자 설악산의 그 멋진 산군들과 토왕성 폭포가 시야에 들어옴. 멋지게 빙폭을 이룬 토왕성 폭포.

한 이십오 분 정도 걸어서 소공원에 도착. (차에 실어 둔 접히지 않는 스틱을 꺼내 들고 걸었음. 등산 중에는 유용했으나 평지에서는 다소 걸리적. 노르딕하는 기분으로 걸어갔음.) 켄싱턴 호텔의 주차장은 그래도 좀 여유가 있었으나, 소공원 주차장에는 들어가려는 차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 잘 한 선택이라는 생각을 함.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고 입장권 구입.


곧바로 비룡폭포 방향으로 향함. 대체로 나오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 가운데 내 앞에서 걸어가던 60대 정도의 노인 한 분은 엄청나게 빨리 걸어서 곧 시야에서 놓침. 예전에 비룡폭포로 들어가던 등산로 주변에는 식당들이 꽤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철거를 했음.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려 했으나 동절기에 사용을 금지한다는 안내문과 함께, 줄이 쳐져 있어서 포기. 나중에 내려오면서 보니까 옆에 있는 간이화장실은 이용이 가능했는데 제대로 보지 못한 것.


육담 폭포까지 등산로의 눈과 얼음은 거의 녹은 상태. 육담폭포 바로 아래에는 예전에 왼쪽 편에 있던 구조물들을 철거하고  새로 출렁다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흥미거리를 제공.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던 여자가 '왜 자꾸 흔들어!'라고 두려움과 즐거움이 반쯤 섞인 목소리를 내 뱉음.




조금 더 올라가서 비룡폭포에 도착. 속으로 나는 토왕성폭포에 올라가 볼까 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왔다 갔다. 거기다 토왕성 폭포 전망대를 조성했다는데 그렇다면 토왕성폭포에 가는 것이 더욱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막상 비룡폭포에 도착하고 보니 토왕성폭포로 올라가는 길은 더욱 단단하게 폐쇄를 해놓았고 그 아래에는 감시초소까지 있어서 사실상 불가. 겨울이라서 사실 올라가는 것이 두려웠던 것도 사실. 토왕성폭포 전망대로 가는 길은 비룡폭포 오른편에 완전히 새로 길을 내놓았는데, 비룡폭포에서 400미터. 전구간이 계단을 올라야 했는데, 비룡폭포는 가볍게 무시하고 쉬지 않고 올랐더니 마지막에는 숨이 마구마구 차오름. 살을 좀 빼야겠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함. 몇몇 여자분들은 100미터 정도 오르다가 포기를 하고, 초등학생이나 그보다 더 어린 학생들은 몸이 가벼워서인지 의외로 잘 올라옴.


드디어 마주하게 된 토왕성폭포. 힘도 들고 사람들도 많은 데다 전망대는 좁아서 분잡한 느낌. 내 뒤에 걸어오던 한 남자는 다 도착했는데도 나를 추월하려고 뒤에서 마구잡이로 들이대서 기분을 나쁘게 하고. 부부와 연인들, 가족들의 나들이가 많아 나의 쓸쓸함이 특히 강하게 느껴졌음.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이 맹렬히 타올라, 옆에서 사진을 찍게 비켜달라는 말에도 금방 비켜주지는 않음.





대승폭포, 독주폭포와 함께 설악산 3대 폭포로 명성이 높은 토왕성폭포. 멀리서만 보던 이 폭포를 나는 97년도에 처음 갔었다. (물론 내가 올라간 곳은 상단 폭포까지는 아니고 하단 폭포 아래지만 내 마음에 토왕성폭포는 '별유천지 비인간'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인간사를 잊게하는 그런 곳이었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찾아간 설악산. 그리고 금기를 깨고 올라간 그 장엄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그 폭포에서는 전문 산악인들이 암벽등반을 하고 있었다.


설악산은 내 애인이고,

비룡폭포 뒤, 토성폭포?는 내 비밀의 연인이다.


Mt. Seolak is my number one amoretta.

I'll love her alway(s) and forever.


Conrad가 Heart of Darkness에서

엿본 것을 나도 오늘 토성 폭포를 오르면서 조금

맛보았다.

산다는 것, 그 지긋지긋함, 그 황홀함,

날아가고 싶었다.

폭포를 오르는 그 어디에서 죽어버리고 싶었다.


열 명의 암벽 등반객들.


난 새로이 출발할 것이다.

                                  (970707 일기)


[이 때만 해도 나는 이 폭포의 이름을 정확히 몰랐다. 권금성에 올라서 먼 발치로 보다가 비룡폭포 뒤로 올라가면 될 듯해서 과감히 올라갔었는데 내 생각이 적중했다.]


이십 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는 않으나 첫 번째 직접적인 대면의 느낌이 대단히 강렬했다는 것, 그 뒤로 나는 몇 번 더 이 토왕성 폭포를 찾았는데 한두 번은 상당히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토왕성폭포는 사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니 만큼 위험도가 상당한데, 또 그만큼의 비경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들을 보니 2007년도에 집중적으로 토왕성폭포를 찾았던 듯하다. 이 때의 에피소드 한두 개 - 폭포에 올라가기 위해 제일 아래에 형성된 폭포의 물을 그대로 맞으며 올라간 것, 그리고 97년도에 처음으로 폭포를 찾았을 때 역시 같은 곳을 - 그 때는 물이 거의 흐르지 않았는데 - 밧줄을 잡고 올라갈 때의 스릴감 등을 자세히 적어볼 수도 있을 텐데.


토왕성폭포에서 내려와 이름과는 달리 별로 아름답지 못한 비룡폭포 사진을 한두 장 찍고는 재빨리 내려와  비룡교인가 건너편에 있는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에다 막걸리 한 잔. 식당에는 토왕성폭포에서 내 사진을 찍어준 젊은 부부와 어린 두 딸들도 식사. 혼자라서 외롭지만 그래도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행동하자, 그것이 나의 모토였던가?


권금성에 올라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안 가볼 수는 없다해서 케이블카로 향함. 원래 5시 10분 케이블카를 타야했지만 혼자라서 4시 40분 것을 탈 수 있었음. (혼자라서 이익을 본 경우. 표를 산 시각은 4시 27분) 익숙한, 그래도 아름다운 장쾌한 풍경들을 즐김.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권금성에 올라가는 길은 얼음이 아직 녹지 않아 미끄러웠고, 내려오는 길에 올라오던 젊은 여자가 넘어지는 것을 봄. 권금성의 그 너른 바위 지대에는 역시나 사람들이 많았는데, 낭떠러지 근처에서 사진을 찍던 엄마를 아들이 '어이!'하고 겁을 주자, 곧바로 엄마가, '이 새끼가'라고 가벼운 욕으로 대응.


지난번에 왔을 때만 해도 - 2,3년 전인가 - 올라갔던 권금성의 끝부분에 있는 바위 봉우리는 못 올라가게 되어 있었지만 위험한 곳이 아니기에 나는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을 무시하고 올라감. 그곳에서 혼자 잠시 망중한을 즐겼구나. 울산바위며, 달마바위?, 그리고 영랑호의 풍경과 멀리 동해. 날이 흘려 자세히 보인 것은 아니지만.


매표소 근처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웠고, 누군가가 "빨리 지나가세요"하는 말이 들려 무슨 일인가 했는데, 멧돼지가 울타리 밖에 서 있었다. 아주 큰 것도, 그렇다고 작은 것도 아닌 중치 정도 크기의 제법 날렵해 보이는 멧돼지. 나는 좀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서서 그 멧돼지를 지켜보았다. 그러고보니 멧돼지와는 첫 대면인 셈이다.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대고. 사람들이 지나가길 기다리던 멧돼지는 울타리의 틈새를 빠져 나와 재빨리 길을 건넌 다음, 또 이쪽 울타리의 틈새로 들어가 개울 옆 숲쪽으로 사라졌다. (이 멧돼지는 아마도 사람들과 친숙한 모양. 사실 휴게소에서 식사를 할 때에도 뭔가 소동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이 멧돼지나 혹은 다른 멧돼지에 대한 이야기였던 듯. 사람들 앞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놈인 듯.)




내려오는 길에는 신흥사의 전신이라는 향정사의 삼층석탑(보물이란다)과 폭이 흥미로워 사진에 담았다. 사진 속의 빙폭이 토왕성폭포라는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했으나 이내 다른 무명의 빙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는 일박이일을 생각하고 왔으나 너무 노는 것같기도 하고, 또 주말 숙박비도 줄일 겸해서 곧바로 서울로 돌아왔다. 피로감과 함께 졸음이 몰려와 인제의 골목길에서 잠시 꿀잠을 자고, 다시 서울로 고고씽.


(인제 부근에 나는 큰 식당과 교회가 같이 있는 곳을 사진에 담고 그것을 글로 써볼 생각이 들었는데, 지난번에 속초로 놀러갔을 때 - 동명항과 영랑호를 찾았구나 - 찾지 못하면서, 이번에는 그곳이 홍천 부근에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과연 그곳이 맞을 지, 또 내 기억이 뭔가 장난질을 치는지, 다음에 확인할 기회가 있으리라.)


돌아오는 길은 차가 하나도 막히지 않아, 과속만을 염려하면서 달려왔구나. 월계 이마트에 들렀는데 이곳도 사람들로 넘쳐나 역시나 붐비는 시간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괜히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적개심을 드러내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