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마치 저 쇼 윈도에 보이는
줄줄이 꿰인 채 돌아가며 익혀지는 통닭들 같아.
우린 실은 이미 죽었는데, 죽은 채로
전기의 힘에 의해 끊임없이 회전하며 구워지는 거,
그게 우리의 삶이라는 거지. 죽음은 시시한 것이야.
왜냐하면 우린 이미 죽어있으니까.
이미 죽어 꽂혀져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으니까.
그런데 기가 막히게 그게 우리의 삶이라는 거야.
삶이 이미 죽어 있는데, 죽음이란 얼마나 시시한 것이겠어?
그건 하나님이 전기 콘센트에서 플러그를 빼버릴 때
우리 모두가 무표정하게, 일동 멈춰섯! 하는 것 뿐이야.
이런 생각을 하며 지하철역 홍대 입구에서 문지사까지
걸어가는 그 거리가 얼어붙은 서역 만리로구나.
[내 무덤, 푸르고]. 문지. 199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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