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으로/플라톤 (Plato)

플라톤 - 정치가 [Plato - Statesman]

by 길철현 2016. 9. 17.

*Statesman(정치가)

 

<김태경, ‘왕도적 치자와 나눔의 방법>

*나눔에서 부분들은 형상이어야만 하며, 한가운데로 나누는 것이 한층 더 이데아에 접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다.

말하자면 동물을 인간과 짐승으로 나눈 것은 사람을 헬라스인과 이방인으로 나누는 헬라스인들의 인습적인 잘못과 같다. 헬라스인과 이방인의 나눔이 잘못된 까닭은 이방인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무한한“ ”모든 다른 종족들을 헬라스인과 대비시키기 때문이라. (55-6)

*플라톤은 신화 이전의 나눔에서 한가운데로나누는 양적인 나눔이 실재의 구조를 반영치 않은 자의적 나눔으로서 바른 정의에 이를 수 없다는 것과, 특히 이런 그릇된 나눔의 절차와 거기서 나온 엉뚱한 결과들을 통해 나눔의 부적절한 사용에 대한 주의를 주는 방법적 훈련의 예를 보여준 것 같다. (60)

 

--본문

*어떤 것의 형상이 있다면, 그것은 형상이 거기에 진술되는 대상의 부분이기도 할 게 필연적이네. 그러나 부분은 결코 형상일 필요가 없네. (105) 손님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상태로 동일하게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신적인 것들에만 어울리지만, 물질의 본성은 이런 질서에 속하지 않네. (123) 손님

*우리를 소유하고 양육한 신의 보살핌에서 분리되었을 때, 또한 성향이 거친 많은 짐승들은 야성적으로 되었지만 인간들 자신은 연약하고 무방비 상태로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짐승들에 의해 고통을 당했거니와, 저절로 생기는 양식은 없었지만 전에 그들은 아무런 필요도 느끼지 않았으므로 어떻게 그걸 마련해야 할지를 몰라 그들은 초기에도 여전히 도구도 기술도 없었기 때문이네. 이 모든 이유에서 그들은 커다란 곤경에 처했었네. 이 때문에 옛날부터 전설로 전해지는 재능들이 신들한테서 우리에게 필요한 가르침 및 교육과 함께 주어졌는데, 불은 프로메테우스한테서, 기술은 헤파이스토스와 동료 기술자인 아테나 여신한테서, 그리고 씨앗과 식물들은 다른 신들한테서 주어졌네. 그리고 이것들에서 인생을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하고많은 것들이 생겨났네. (134) 손님

*헬라스적인 사유는 주어진 것을 선용할지니라는 헬라스인들의 속담에서 단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만일 인격도 하나의 주어진 것이라면, 그 인격의 선함과 악함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이렇듯 선악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헬라스인들의 죄 개념은 기독교의 원죄와 차이를 보인다. (134) 역주

*왜냐하면 아마도 우리는 저마다 마치 꿈에서는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지만 다시금 깨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같기 때문이네. (142)

*어떤 점에서 참으로 분명한 것은 입법술이 왕도적 치술에 속한다는 것이네. 그러나 최선의 것은 법률이 아니라 지혜를 갖춘 왕도적 치자가 우세한 것이네. (188)

 

*Every one of us is like a man who sees things in a dream and thinks that he knows them perfectly and then wakes up, as it were, to find that he knows nothing. (1043)

*So long as they work on a reasoned scientific principle following essential justice and act to preserve and improve the life of the state so far may be, we must call them real statesmen according to our standards of judgment has a real constitution. (1063)

--

[소피스트]에 이어지는 이 대화편은 진정한 통치자를 어떻게 찾을까 하는 문제를 놓고, 플라톤을 대변하는 이방인과 소크라테스와 동명이인인 젊은 소크라테스 사이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화편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나눔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 나눔에 대한 관심이 플라톤의 후기 사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김태경은 나눔에서 부분들은 형상이어야만 하며, 한가운데로 나누는 것이 한층 더 이데아에 접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다(55)’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가]편에서 논의 되었던 정체에 대한 이야기도 변주된 방식으로 이번에는 이방인의 입을 빌어 논의되고 있는데, 이러한 논의에서 뚜렷하게 엿볼 수 있는 것은 플라톤 사상의 핵심은 어떻게 보다 나은 현세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로 모아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플라톤은 그러한 삶의 영위가 철인 치자에 의해 가장 잘 실현되어 진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통치에 있어서 법과, 통치술이 다 같이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통치자의 판단에 따라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 기술한 성격의 조화에 대한 설명(용맹성과 침착성)은 인간을 공격적 성향의 사람과, 수비적 성향의 사람,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누어 보는(그것은 바꾸자면 외향적 성향의 사람과 내성적 성향의 사람으로 나누는 것과 흡사할 터인데) 나의 견해와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