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합에 처음 참가한게 언제지?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본다. 아니 다시 일지를 펼쳐본다.
일지를 보니 1992년 1월 24일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경인지구대학탁구동호인대회"에 고려대학교 탁구사랑회의 멤버로 처음 출전했구나. 그 때의 소감을 적어둔 것이 있어서 옮겨본다.
시합은 끝없는 기다림이었다. 9시 좀 넘어서 도착했는데, 오후 4시가 다 되도록 내 시합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상대는 회장까지 맡았던 유언종.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예상대로 [0대2로] 패하고 말았지만, 실력부족이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배운 대로 하려고 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단체전 복식에서는(윤재현 형이 단식 시합이 끝나자 가버렸기 때문에 손창섭과 한 조를 이뤘다) 다 지고 말았지만, 단식에서는 2승 1패를 거두었다. 단국대, 서울대 선수에게는 이기고 경희대의 이한선에게는 두 세트 다 겨우 10점을 넘었을 뿐이었다. 이한선은 개인 단식 2차전에서 윤재현 형과 시합을 했는데, 재현이 형이 15점 정도까지 올라갔던 것 같다. 이한선은 이 시합에서 4강까지 올라간 드라이브 전형의 고수였다[보충: 이 때 시합은 한 세트가 21점이었고, 서브도 2개가 아니라 5개씩 넣었다. 이한선은 드라이브 주전이 아니라 전형적인 쇼트잡이이다].
그리고, 31년이 지났다.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던 나는 이제 피부가 탄력을 잃어가는 50대 후반이다. 그렇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대체로 탁구에 매진했다. 부상이나 학업, 집안 사정 등으로 중간중간 중단한 적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탁구사랑회와의 인연도 계속 이어왔다. 열심히 활동을 하지는 못했어도 10년 정도 OB 회장도 역임했다. 대학 시합은 좌절도 많이 안겨주었으나, 내 실력 이상의 성적을 안겨주기도 했다. 거기다, 내가 동아리에 들어갈 때만 해도 최약체였던 고대가 이제 명실상부 대학 탁구의 강자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는 것도 뿌듯하다. 대학 시합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열려 지방 시합은 나들이이기도 했다. 천안, 전주, 춘천, 횡성, 정선에서 열린 시합이 기억에 남는다.
지난 몇 년 코로나로 시합이 중단되고 나 역시도 어머니의 간병 문제로 대구로 내려온 다음 탁구사랑회와의 끈이 조금 느슨해진 감이 없지 않았는데, 지난 5월 인제대회에 참가하면서 다시 후배들과 연결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 대회에서는 단체전 멤버 구성이 안 되어 개인 단복식만 뛰었는데, 안타깝게도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YB 후배들은 단체전에서 우승을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번 제천 시합은 열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바로 코앞일 줄은 몰랐는데, 다행히도 동생이 주말 동안 어머니 간병을 하는 때라 수월하게 참가할 수 있었다. 올해 봄부터 거의 매일 탁구를 치면서 레슨도 꾸준히 받았기 때문에 내심 성적에 대한 기대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시합은 OB 참가 선수가 적은 대신에 젊은 친구들과의 시합이라서 힘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이기 때문에 쉽지가 않을 터였다. 이번 대회에는 단체전 멤버도 구성이 되어 단체전 입상 또한 노려볼만 했다.
- 첫째 날
첫 날 OB시합은 개인단식만 있었고 그것도 2시에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대구에서 10시 반에 출발했다. 단양팔경휴게소에 잠시 차를 세우고 올 가을 나의 주된 탐방지가 될 충주호를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1시 좀 넘어서 체육관에 도착했다. 실내체육관이 아니라 종합운동장 쪽으로 우회전해 들어갔는데 체육관이 너무 고요해 보여 이곳이 맞는가 잠시 의아해 하기도 했다. 시간이 좀 남아 간단히 라면으로 요기도 떼우고 운전으로 굳은 몸도 풀겸 체육관 주변 산책에 나섰다.
[체육관 주변을 산책하면서]
2시가 넘어도 개인전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주최측에 물어보았더니 4시부터라고 했다. 나는 시합 일정을 다음에 있는 "전국대학탁구동호인연맹" 카페에서 보았는데, 여기에 올라와 있는 일정은 부정확했다. 나중에 보니 에어핑퐁에 정확하게 올라와 있었다.
- 개인단식
1. 예선전
예선전 상대는 서정길(단국대)과 윤여제(강원대)였는데 두 선수 모두 6부였고, 2알 핸디를 주었지만 어렵지 않게 모두 2대 0으로 이겨, 조1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2. 본선(16강)
본선 1회전은 부전승이었고, 2회전(16강) 상대는 우시경(5부 펜홀더, 세명대)이었다. 이 친구와의 게임에서는 너무 긴장했던 것인가? 아니면 플레이가 나와 상극이었던가? 나는 0대 3으로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일단 이 친구의 서브를 좀 까다롭게 리시브 못한 것이 큰 패인이었다. 내 쪽에서 보았을 때 왼쪽으로 휘는 회전 서브를 다소 밋밋하게 받아넘기니 이 친구가 강한 드라이브로 응징했고 나는 그걸 디펜스 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포핸드로 리시브를 해서 게임의 균형을 어느 정도 찾아갔으나 이 친구의 힘이 좋아 디펜스에 어려움을 겪었고, 내 공격은 이 친구의 디펜스를 뚫기에는 힘이 약했다. 전형상 내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8강전에서 신준기 관장을 만난 이 친구는 신관장의 백핸드 커트 서브와 회전 서브를 구분하지 못해 0대 3으로 완패당하는 것을 보았을 때 실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나와 좀 상극이었다는 생각이 강했다.
- 뒤풀이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고 저녁을 먹어야 해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칠미감자탕"으로 향했다. 다른 OB들은 내일 합류하기로 해서 OB는 나 혼자뿐이었다. 아직 아는 YB가 적고, YB들도 나이가 대빵 많은(이번 대회에 참가한 OB 중 최연장자) 내가 좀 불편했으리라. 하지만 OB를 대표하여 대회와 뒤풀이에 참가하였고 또 YB에게 후원도 했으니 사실 뿌듯한 시간이었다. YB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탁구사랑회의 전통이 길고, 또 고대는 탁구 명문이고, 아니 무엇보다 탁구라는 운동은 나이가 들어서도 즐길 수 있는 좋은 운동이라고 했던가?
식사를 마친 뒤 나는 신준기, 송승훈, 윤홍균과 가볍게 한 잔 하기로 했는데, 이들의 회식이 아직 끝나지 않아 내토로를 따라 30분 정도 걸었다. 나는 이 길이 시내로 이어지지 않을까 했으나 점점 시 외곽으로 나가는 느낌이었다. 이들과 연락이 닿아 '명동포차'에서 한 잔하고 송승훈의 집에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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