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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현대사의 개자식들

by 길철현 2023. 9. 20.

쿠데타로 대통령 자리에 올라서는 
18년 동안 장기집권
급기야 부하의 총에 세상을 뜬
소위 한강의 기적을 이룬 
그 자가 개자식인가?
 
항일투사로 독립운동을 하다
북한의 지배자로
남한의 대통령보다 더욱 오래 북한을 통치하더니
위대한 인민의 수령으로 사라져 간
그 자가 개자식인가?
 
정답지를 암기한 듯 공산당이 싫어요
그렇게 외치다 살해되었다는 소년처럼
공산 치하에서 신음하는 아이들 운운하는
반공 글짓기로 당당히 초등학부 우수상을 받은
나는 개자식인가?
 
고등학교 교련 시간
금시초문인 광주민주화운동을
깡패와 건달, 거지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던 교련 선생
그 자가 개자식인가?
 
불심검문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고
대학 신입생이던 나를 
복날 개 패듯이 패던 백골단과
피지도 않는 담배를 물리며 거짓 위로를 하던 간부
그 자들이 개자식들인가?
 
6*10이라 사람들은 민주화를 목놓아 외치는데
고참이 써준 멸공통일 원고를
전부대원이 모인 강당에서
앵무새마냥 넋 놓고 읽어나간 
나는 개자식인가?
 
피 묻은 민주화 시위로 얻어낸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용지의 1번에 도장을 찍으라고 한 장교
한 마디 항의도 못하고 거기에 찍은 친구
그들은 모두 개자식인가?
 
겁쟁이로만 지낼 수 없어
시위에 따라나섰는데
정권이 금시라도 무너져 내릴 듯
거짓 선동으로 사람들을 혼란으로 내몰던 지휘부
그들도 개자식인가?
 
정권의 고문과 과오에는 일언반구도 없다가 
운동권 학생들이 다른 학생을 폭행치사하자
까무라 칠 듯 신랄하게 비난 하던
유명 시인인 대학교수
그 자도 개자식인가?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울음과 비명이 
뒤범벅된 시간을 넘어
이 땅은 민주화를 이루었고
강대국의 후원을 받던 빈국의 신세에서 벗어나
K가 자타칭 한국인 21세기로 들어왔다
 
그래, 개자식을 양산하던 어두운 시절은 가고
두려움에 어쩔 줄 모르던 나는
누구의 말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머리털 허연 장년이 되었건만
현재는 어제보다 더욱 혼란스럽기만 하다
 
반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가운데도
자신의 정체는 감춘 채
총으로 상대방의 심장을 겨누며
넌 어느 편이냐 캐묻는 자
그 자야말로 빼박 개자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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