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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여행이야기

거창 사건 희생자 박산골 학살터[경남 거창군 신원면 과정리 산66-6]/ 거창 사건 추모 공원[신차로 2924/대현리 506](20231114)

by 길철현 2023. 11. 14.

 

[거창 사건 희생자 박산골 학살터]

 

[소개] 

 

[탐방기] 아파트 내부 공사로 오전 중에 단전단수가 행해진다고 해서 엄마와 나들이에 나섰다. 머릿속에 떠오른 목적지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엔가 찾았던 곳이었다. 그 날 엄마와 코로나가 발발한 뒤 처음으로 나들이를  나섰는데, 625 전쟁의 와중에 벌어졌던 양민학살을 추모하는 공원 옆에 상당히 큰 저수지를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그 저수지가 완공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목적지를 거기로 정했던 것이다. 정확한 위치는 기억이 나지 않는 가운데 '함양'에서 들어갔던 듯했다.

 

광주대구 고속도로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데 논공휴게소를 좀 지난 지점부터 엄마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다음 휴게소까지 30km 이상 남아서 엄마가 그 때까지 견뎌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무리였지만, 기저귀를 하고 있으니 큰 걱정은 없었다. 다만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이 문제였다. 고속도로 휴게실엔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서 그걸 이용하면 되는데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야 할지, 여자화장실에 들어가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엄마가 변을 매일 보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또 나들이에 나서기 전에 대체로 용변을 보고 나서서, 엄마와 단 둘이 나섰을 때 화장실을 이용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무래도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이 쓰였던 것인데, 광주 방향 거창휴게소에는 원래 화장실 외에 새로 화장실을 지어 놓고는 일반 화장실은 폐쇄하고 장애인 화장실만 운영해서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 없이 편안하게 용변을 처리할 수 있었다(원래 있던 화장실도 내가 소변을 누러 가는 길에 살펴보니 장애인 화장실이 다행스럽게도 바깥 쪽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소 묽은 변이 엄마의 몸에 많이 묻어서 처리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 

 

찬 바람이 부는 것이 날씨가 다소 쌀쌀해서 뜨거운 캔커피(별로 따뜻하지 않은)에다 어묵과 소떡으로 허기를 달래고 목적지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가조면 주위의  독특한 분지 지형을 보고 있자니, 그것에 대해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이야기를 한 것, 그러다가 거창 양민 학살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휴게소 직원이 유홍준에게 '거창하면 뭐가 떠오르세요?'라고 물었을 때, 유홍준이 '거창 양민 학살이 떠오른다'고 하자, '거창에 다른 좋은 것도 많은데 왜 굳이 그 이야기만 하세요?'라고 반박했지)  등의 연상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아 참, 양민 학살이 거창에서 있었지. 그럼 거창IC로 빠져야 하겠네'라는 생각이 들어서 거창 쪽으로 빠졌다. 얼마를 달렸을까, 도로 옆으로 난 강(황강)이 겨울인데도 수량이 많다고 했더니 합천호가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3년이 지나긴 했지만 주변 지형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뭔가 이상했다. 신원면으로 들어서는 어귀에는 '무병장수 청정지역'이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신원면 시내를 지나자 오른쪽으로 '거창 사건 희생자 박산골 학살터'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였고, 나는 차를 그쪽으로 돌렸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산 위에는 풍력발전기가 서 있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 풍경 가운데 72년 전 어느 날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한 엄마는 차 안에 두고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실감이 잘 나지 않는 채로 노근리를 찾았을 때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조금 더 가니 아주 잘 관리된 거창 사건 추모 공원이 왼쪽에 그 모습을 드러냈고, 이곳은 도로 오른편에 있었던 3년 전의 그곳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거창 사건 추모 공원]

 

[소개]

 

[탐방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상부의 지시와, 분노에 찬 지휘관의 그릇된 판단으로 즉결처분된 사람들, 그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돌이켜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한 사건.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되고, 제주 43사건, 여순 사건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거기다 625가 발발하자 보도연맹사건(이 사건의 희생자는 전국적으로 수만 명에서 20만 명 내외라고 한다), 그리고, 빨치산 토벌을 명목으로 이곳 신원면 일대에서 719명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노근리의 피난민 총격 사건과 함께 전쟁은 군인들뿐만 아니라 막대한 민간인의 희생도 낳았고, 그 모든 일들이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따르기 마련인 최소한의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과연 그래야만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날은 너무나도 눈부시게 맑고 박산골과 마찬가지로 사방이 고요하고 평화로워 실감이 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묘지에 누워있는 영령들도 묵묵부답이었다. 또 국화 관람회까지 열리고 있어서 경내에는 국화가 만발해 있었고 국화 향기가 은은하게 코에 와닿았다. 

 

 

안쪽에서 연배가 지긋한 두 분이 걸어나오기에 나는 이곳 말고 다른 추모 공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물어보려 했더니, 그 분들은 오히려 나에게 '이곳 직원이냐?'고 물었다. 자신들도 이곳은 처음 방문했다고. 먹먹한 가슴을 안고 경내를 한 바퀴 돌고는 차를 주차해 둔 곳으로 왔다. 

 

 

인터넷으로 조사를 해보니 3년 전 내가 찾았던 곳은 '산청함양 사건 추모 공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처럼 정확한 명칭도 부여받지 못하고 지금도 사건이라고 불리는 것이 안타까운 채로 차를 돌리는데 '홍동골 어린이 시체암매장' 장소를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