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초 - 나비의 꿈 왕궁리 오측석탑에서
잔디밭에 떠오른 흰나비를
바라보는 네 눈빛은 오늘도 깔끄막이다
그늘 속인데도 날은 무덥고
뙤약볕을 지키고 서있는
네 표정엔 바람 한 점 묻지 않았다
미륵산에 등을 보인 석탑의 시간이 허허롭기만 했으랴
백성을 먹여 살린 만경들판의 숨소리가
왕궁리에만 닿았으랴
고조선 준왕의 목소리 너머 반짝이는 춘포항의 황포 돛대며
꿈을 못 이룬 마동의 숨결이 죽창 든 농민군의 함성소리만 못했으랴
오래 된 기억에 마음 설레는
황홀한 갈증을 놔먹이며
수천 년 세월을 잊었으리
소정방 부대와 김유신 김춘추 부대에
떼죽음 당한 백제 유민들의 원혼을 몸에 두르고
석탑은 찬찬히 본적지도 지웠으리
지울수록 뼈에 사무치는
평등세상이, 마한과 백제의 무너진 꿈이
두어 점 흰나비로 떠올랐으리
깔끄막 벼랑의 방언(전남)
준왕 고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마한의 왕
춘포항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에 있었던 나루?
마동 익산 지명. 전주를 거쳐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 (아니면 무왕의 어릴 적 이름인 서동을 이렇게 쓴 것인가?)
- 시의 앞부분의 시상과 끝부분의 시상이 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오층석탑을 보면서 삼국 시대를 너머 삼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역사 의식을 반영해 보려 하고 있지만, '평등세상'이라는 말로 무리하게 묶으려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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