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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한국현대시

정호승 -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by 길철현 2024. 1. 23.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정호승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해마다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여행". 창비. 2013. 

 

[감상] 자기를 낮추고, 또 낮은 곳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잘 풀어내고 있다. 다만 낙엽의 사전적인 정의는 이미 떨어진 잎, 혹은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키기 때문에 '낙엽이 떨어진다'는 표현은 부정확한 것이라는 점이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