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쇠
김광규
삼십 년이 지나갔어도
그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이마가 넓었던 데 비하면
별로 대머리가 까진 편도 아니고
아직도 젊은 얼굴에
눈초리만 날카로워졌다
누가 무엇을 물어도 모른다고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는 귀에 익었다
받기는 했지만 돈을
먹지는 않았다고 그는
당당히 증언하기도 했다
현금을 사과 상자에 넣어서
또는 거액의 수표로
아니면 은행 구좌를 통하여
도대체 큰돈을 받은 적 없이 살아온
우리들만 변함없이 그대로 있지 않은가
변해야 산다고
역사는 결코 반복하지 않는다고
외치던 그는 이렇게 달라졌는데
김광규.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문지. 1998. 28
- ‘받기는 했지만 돈을/ 먹지는 않았다’라는 표현이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 시는 타락한 정치인을 간략한 언어로 꼬집고 있다.
'한국시 및 감상 > 김광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광규 - 어딘가 달라졌다 (0) | 2024.08.21 |
---|---|
김광규 - 끝의 한 모습 (0) | 2024.08.21 |
김광규 - [물길]. 문지. 1994. (0) | 2024.03.05 |
김광규 - 물 길 (1) | 2024.03.05 |
김광규 - 강아지 아지랑이 (0) | 2024.03.05 |